『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해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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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근대계몽기에 ‘국문, 국어’와 관련된 담론들이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또 일반화되었는가 하는 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에 이 『역주 국문론집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가 ‘다시 한 번’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데에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지 않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형성했던 그 대상과 개념과 주체 등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민수․고영근 편의 『국문론집성』에서 출발한다. 1880년대부터 1910년에까지 신문 잡지에 실린 ‘국문, 국어’ 관련 글을 모은 『국문론집성』이 처음 나온 것은 1985년으로 국어학계에서도 이른바 ‘개회기’가 주목받던 때이다. 당시 주시경의 저술을 중심으로 초기 국어학 관련 문헌들을 현대 언어학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그러한 흐름은 쇠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0년대 앞서거니 뒤서가니 세워졌던 주시경연구소와 한힌샘연구소가 모두 9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을 접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바로 그 90년대 중후반부터 문학, 역사학, 철학, 사회학 등에서 근대성 문제가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 받으면서 동시에 ‘언어적 근대’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으며 특히 문학에서는 관련한 연구 성과들이 꾸준히 제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문학 연구자들이 근대 초기의 언어학적 문헌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일일 터이다. 30년대만 하더라도 제법 전문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또 초기 황성신문 등에 실리는 국문 관련 논설에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언어학인 성운학의 술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언어적 근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당시의 문헌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시 한 번’ 국어학계에서 ‘언어적 근대’의 문제가 주목의 대상이 되어, 결과적으로 언어학과 다른 인문학자들이 소통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사실 당시의 문헌은 국어학 전공자들이 읽기에도 버거운 부분이 많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문장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글들이 많아 아예 글 전체가 한문 문장이거나, 국한문 혼용이라 하더라도 현토체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문학적 지식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어려운 글들이 태반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책의 체제는 『국문론집성』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해당 글의 원문만 제공되었던 『국문론집성』과는 달리 각각의 글에서 먼저 원문을 제시한 다음 이를 현대어로 옮겼다. 현대어로 푸는 과정에 각종 고사나 전고 등은 가급적 각주에서 상세히 풀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저자와 그 글이 실린 매체에 대한 해제를 달았으며 마지막으로는 해당 글에서 나타나는, 당시로서는 새로웠을 근대적 개념어들을 정리하였다.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글을 쓴 사람과 그 글이 실린 매체를 아울러 참고하도록 한 것인데, 국어학 전공자나 그 밖의 인문학 전공자나 모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싣고자 했다. 물론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실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여러 전공자들을 위해 배려하는 차원이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이 책이 애초에 기획된 것은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의 HK사업단 담론역사 팀의 세미나 과정에서였다. 근대기 ‘국어, 국문’ 담론의 실체에 접근해 보자는 취지로 2010년 여름부터 『국문론집성』을 읽기 시작했고, 읽는 작업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를 역주 형식의 책으로 다시 출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여기에 실린 글 외에도 더 많은 문헌을 뒤져 새로운 글들을 싣기로 하고 각자 매체를 나누어 맡기도 했다. 그러나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국문론집성』에 실린 글들을 새로 풀어쓰는 것만으로도 역주자들에게는 벅찬 작업임을 알았다. 또 애초의 편자들에 의해 모아진 자료 외에 새로운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HK사업단의 연구교수(정대성, 손희연), 연구보조원(김병문, 김수경, 박지연, 이수진, 주향아, 최지연) 등이 나누어 번역하고 해제를 썼으며 서로 토론을 통해 윤문했다. 특히 마지막에는 한문학을 전공하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의 김기완 선생이 한문 문장의 번역을 일일이 확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사와 전고 등에 관해 주석을 달아 주었다.
근대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근대가 성취의 대상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면에서는 근대가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의 성립 과정을 꼼꼼히 짚어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일 터이다. 언어에 대한 현재 우리의 관념이 정말 있는 그대로의 ‘말’을 제대로 ‘표상’해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 역주자들의 의문인데, 이는 아마도 언어학과 여타의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인문언어학’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언어학과 여타의 인문학이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부디 많은 분들의 질정 있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2012. 5. 25.
역주자들을 대신하여 김병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