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2012년 대선에 대한 단상

pourm 2012. 12. 20. 14:40

대학 때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지지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대학 1학년 시절. “아아, 민주정부 사천만의 희망이여~ 살아도 죽어도 피우리라 꽃피우리라” 운운의 노래를 즐겨 부르기는 했어도 이것이 비판적 지지 노선의 엔엘 노래지 ‘우리’ 노래는 아니라고 속으로 되내이곤 했다. 대신 더 후지고 촌스럽기는 해도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권력은 민중에게’라는 구호로 시작하는 ‘민중권력 쟁취가’가 ‘우리’ 노래임을 곱씹곤 했다.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일 수밖에 없는 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계급 정당의 건설이 당면 과제였고, 오세철 선생을 중심으로 한 민정련이나 노회찬을 앞세운 진정추가 그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97년 국민승리 21이라는 가설정당이 생기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으로 발전하면서 ‘비판적 지지’는 더더구나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운동판의 NL과 유시민류의 자유주의 세력은 번번이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되살려냈지만, 단 한 번도 그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비판적 지지의 적자(엔엘 운동권과 유시민류의 자유주의 정치 분파)들이 진보정당으로 합류했고 바로 그들이 87년 대선부터 시작된 독자후보 전술을 완전히 와해시켜 버렸다. 아이러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노선을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낸 것이다. 비판적 지지의 거의 완전한 실현!

 

지난 토요일 아침. 뒷산을 오르며 마음이 심란했다.

새벽에 일어나 확인한 기사에는 문재인이 부산에서 부산갈매기를 부르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PK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고도 했다. 임기 내내 고향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던 노무현의 그림자가 보였다. 답답했다.

그러나 선뜻 김소연 김순자 후보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비판적지지 노선 때문이 아니다.

그들(물론 후보 본인이 아니라 그 세력들) 역시 나에게는 심판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김순자 후보는 당의 결정을 깨고 출마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진보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진보신당 내의 사회당 출신들의 분파주의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김소연 후보는 진보신당에도 참여하지 않은 변혁모임이라는 극좌파의 후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좌익 모험주의가 우려스러웠다. 결과적으로 20년 진보정당 운동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단 말인가. 왜 무소속인가.

 

진보정당의 몰락과 안철수의 등장은 거의 같은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이 두 사건은 한국정치를 우경화했다.

박근혜마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은 진보정당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으로 박근혜는 김종인을 버려도 됐고(안철수보다 김종인이 더 과격하다!), 민주당은 왼쪽으로 옮기던 걸음을 오른쪽으로 선회했다.(안철수 지지층을 잡아라!)

안철수는 여전히 상수다. 그리고 그는 한국정치를 끊임없이 오른쪽으로 밀고 갈 것이다.

진보정치 앞에 놓인 미래는 20년 전보다 더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