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고 -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서 길을 잃다

pourm 2014. 5. 15. 16:56

 

 

 

 

얼마 전 사전 편찬 과정을 담은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배를 엮다(船を編む)”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사전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아니 쓰여지고 제작될 수 있다는 문화적 풍토에 놀랐다. 일본 사정에 밝은 어느 연극 연출가로부터 국어사전 편찬에 관한 연극도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역시 일본은 사전을 잘도 만들 뿐 아니라 사전 작업의 의미를 사회적으로도 꽤 인정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척, 하고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문화와는 분명 다른 데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 ‘성실’을 뜻하는 ‘마지메’라는 것은 사전 작업의 고단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텐데, 이런 영화나 연극 같은 것이 사전 편찬자들의 수고로움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준다는 표현인 것 같아 부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선 현실과 달리 사전 편찬 작업이 너무나 아름답게‘만’ 묘사되고 있다. 물론 작가의 취재가 치밀했던 듯 표제어 선정에서부터 뜻풀이 문제까지 꼼꼼히 묘사했고, 더 나아가 종이의 촉감까지 섬세하게 고려하는 장면들은 실제 사전 편찬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과정에서 작업자들 간의 갈등이나 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 말을 표제어로 올릴지 말지, 그 말의 뜻풀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모든 문제에 관해 현실의 집필자, 교정자들은 제각각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하는 그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로 모아가는 작업이 바로 사전 편찬의 일일 텐데, 이 영화에서는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면 도무지 이견이란 게 없고 모두가 흔쾌히 동의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사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성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개 고집스럽기도 하다.

 

물론 어느 출판사에도 더 이상 사전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사전 만들기’를 아름답게만 그렸다고 시비를 건다는 게 공연한 트집잡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뭔가 나를 불편하게 했던 건 영화에서 언급되는 한 단어의 뜻풀이 문제였다. 새로운 편집자가 필요했던 사전팀은 영업부의 ‘괴짜’ 마지메를 붙잡고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풀이해보라고 즉석 질문을 던진다. 당황한 표정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쳐다보며 들었다 놨다 허둥대던 마지메는 “서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북쪽에 해당하는 쪽?”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언어학을 전공했다는 주인공은 이로써 사전팀에 합류할 수 있게 되는데, ‘大渡海’라는 이름이 붙은 새 사전의 편찬 과정에서도 ‘오른쪽’의 뜻풀이가 다시 한 번 거론된다. ‘이 사전을 펼쳤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이라고 한 사전도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원로 편집자가 제안한 ‘10을 썼을 때 0이 있는 쪽’이라는 안이 모두의 탄성과 함께 받아들여진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는 영어권의 한 사전에서는 ‘심장이 뛰는 쪽’을 왼쪽 오른쪽의 기준으로 삼았다고도 했는데, 그러나 딴에는 말석에서나마 사전 만드는 일을 거들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뜻풀이들이 뭔가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책상에 앉자마자 우리 국어사전들을 들춰보았다. 이럴 수가!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대』)과 『우리말큰사전』, 『금성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물론이고 북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에 이르기까지 괴짜 신입부원 미지메 군과 같은 식으로 ‘오른쪽’을 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현상의 사소한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네 사전은 모두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이라고 하고 있었다. 『동아새국어사전』과 『연세한국어사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남쪽’에 해당한다고 해서 기준이 바뀌었을 뿐 역시 같은 방식으로 풀이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저작권’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국어사전 『広辞苑』에서도 “남을 향했을 때 서에 해당하는 방향”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대한제국의 국문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했던 이능화가 1906년 「국문일정법의견서(國文一定法意見書)」에서 일본의 『言泉』을 본받아 우리도 국어사전을 만들자고 했던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왼족, 오른쪽’이라는 낱말의 뜻풀이에 느닷없이 동서남북의 방위가 등장하는 이런 식의 뜻풀이에 과연 문제는 없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오른쪽’이라는 말을 ‘북쪽을 향해 섰을 때 동쪽에 해당하는 방향’과 같은 의미로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어’라는 낱말을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표대』)이라고 풀이했을 때, 뜻풀이에 사용된 ‘나라, 국민, 쓰다, 말’과 같은 단어들은 ‘국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것들이고 거꾸로 그러한 낱말들의 의미가 모여 ‘국어’라는 단어의 의미가 구성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라는 낱말을 ‘어떤 기준보다 높은 쪽’(『표대』)이라고 풀이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른쪽’과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북쪽, 향하다, 때, 동쪽’이라는 낱말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여기서 ‘오른쪽’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챌 수는 없다. 다만 북쪽을 보고 실제로 (또는 가상으로) 서서 동쪽이 어디인지 나침판 같은 것으로 확인해 본다면, 다시 말해 마치 매뉴얼처럼 적용해서 실행해 본다면 오른쪽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다. ‘사전을 펼쳤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 ‘10을 썼을 때 0이 있는 쪽’과 같은 따위도 모두 그렇다. 사전의 일반적인 뜻풀이가 어떤 어휘를 다른 말들의 의미를 가지고 풀이하는 것인 데 비해, 이런 것들은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해보거나 관련된 다른 지식을 동원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마치 말을 설명하기 위해 말 밖으로 뛰쳐나가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어떠한 개념이나 사물을 정의하거나 규정하는 것과 낱말을 ‘뜻풀이’하는 것은 같은 듯하지만 실은 구별되는 일이다.

 

영화에서 ‘오른쪽’을 뜻풀이해 보려고 애썼던 이들은 대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또 들었다 놨다 한다. 우리가 ‘오른쪽, 왼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가장 가까운 말은 아마 ‘오른손 왼손’일 것이다. 그러나 순환적인 뜻풀이를 배제한다는 근대 사전 편찬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른쪽’의 풀이에 ‘오른손’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다. 여러 사전들에서 난데없이 북쪽 혹은 동쪽을 바라보고 일단 한번 서보라고 제안 아닌 제안을 하고 있는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말이 아니라 글자를 풀이하는 것이긴 하나,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순환적 뜻풀이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골이 해독되기 전까지 근 2000년 동안 한자의 뜻풀이에서 『설문해자』의 권위가 의심된 적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오른쪽’은 ‘오른손’으로, ‘오른손’은 ‘오른쪽’으로 뜻풀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에게 뜬금없이 북쪽이나 동쪽에 서 보라고 권하는 식의 풀이 방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 사이로 『言泉』, 『言海』, 『広辞苑』, 『大辞林』 같은 일본 유수의 사전들이 배경처럼 등장한다. 한결같이 ‘○○사전’이라는 이름뿐인 우리와 달리 말이 샘솟아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는, 그리고 급기야는 그 말의 바다를 건넌다는 은유(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전의 이름은 ‘大渡海’다), 또는 말의 큰 정원이나 숲이라는 은유가 멋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말의 바다에서 혹은 숲에서 왼쪽과 오른쪽도 분간 못하고 헤매는 조난자가 된 기분이다. 잔잔하고 편안한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본 이래 아직까지 마음이 불편하고 개운치 않은 것은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