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 섬에 있는 서점
1.
지난 주말 <폭싹 속았수다> 16화를 모두 몰아 보았다.
너무 울어서 나중에는 기진맥진해질 지경.
현재의 화자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지난 날을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 <폭싹 속았수다>는 오로지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를 전력(?)으로 추억하고 회상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회상담과는 좀 구별되는 듯하다. (시대는 5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예컨대 애순과 금명에게는, 잠녀 이모(할머니)들과 친척들은 수두룩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친구가 없다. 그것은 관식이와 은명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그들의 삶에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것은 <응답하라>시리즈가 대학 시절 혹은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그 골목길/하숙집을 추억하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모래시계>가 80년대라는 한국 사회 자체를 회상하는 것과도 다르다.
이 드라마는 오로지 등골까지 빼내어 주는 부모의 눈물겨운 헌신만을 보여줄 뿐이다. 자식이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요구할 수도 없는.
2025년 한국 사회에서 <폭싹 속았수다>가 '명작'인 것은, 현재의 나를 설명/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일까?
90년대 동물원은 세상이 우리를 길들기 시작할 때부터 잊고 살았던 추억을 노래했다.
우주소년 아톰과 마루치 아라치, 성문종합영어와 산울림의 노래, 그리고 대학교에서 만났던 여자 친구와 새로운 세상을 위한 꿈들.
90년대의 회삼담과 2025년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꿈들은 이미 유행이 지난 이야기라고 해, 라고 중얼거리던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며 90년대의 나는 늘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다. 이미 한참이나 지난 유행을 뒤쫓아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데 지난 주말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는 마음이 서늘해졌해졌다. 나의 자식들은 나를 어떻게 추억할까. 배는커녕 팔아줄 집 한 칸도 없으면서 심지어 성실하지도 않은 이 애비를....
2.
게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엄일녀 번역, 문학동네, 2017
지난주 짬짬이 읽은 책.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은 책이라 기대하고 읽었는데 중간 쯤 읽다가 포기함.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엘리스섬의 아일랜드 서점 주인의 이야기.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서점을 꾸려가다가 우연히 아이를 입약하게 되고, 출판사 영업 사원가 연애를 하는....
책에 대한 책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
다만, 미국 문학에 대한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그 매력이 내게는 거의 전달되지 못함.
주인공이 연애하는 대목에서는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서 읽기를 포기함.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 반납하며 장강명의 <표백>>,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대출.
3.
2019년 입사 후 첫 방학을 맞았다는 느낌.
우선 예정된 발표가 없다. 몇달 내에 써야할 논문이 없다.
최소한 이번달은 놀아볼 작정인데 될지 모르겠다.
방학에는 뭘 해야 할지 깜깜하다.
2025.06.1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