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作字說
1.
지난해 이맘 때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숨죽이며 읽다가,
급기야는 숨이 멎을 뻔했던 기억 잊을 수 없다.
'자율적 경제'라는 관념이 얼마나 새로운 것이며
'등가 교환'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폴라니는 문화인류학과 정치학과 역사학을 넘나들며 풍부한 사례를 제시했다.
그의 요점을 앞에 내세워 몇 쪽짜리 짧은 글을 썼고,
그것을 이번 금요일에 어느 작은 모임에서 발표하려고 한다.
1년 만에 그것을 다시 꺼내 든 것은 그동안 큰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서둘러야 할 때가 된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지난 연말 배부른 아내와 시내에 나갔다가, 교보문고에서 두 권의 책을 샀다.
신동훈, <세계민담전집 -한국편>, 황금가지
미야자키 이치사다,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 다른세계
민담은 잠자리에서 한 편 씩 읊조릴 요량으로 샀으나, 역시 마음 같이 안 된다.
이오덕 선생이 보면 한 소리 했을 '-었다'식 종결어미로 끝나 읽는 맛이 영 안 난다.
그래서 나중에 <옛이야기 보따리>라는 책을 샀으나, 너무 인위적인 구연체라 이것 역시 어색하다.
대부분의 민담/이야기는 이 두 책에 공히 등장하는데 <민담전집> 쪽이 훨씬 짜임새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른의 입장에서다.
아이들은, 봄이는 무얼 좋아할까.
일본의 중국사 전공자가 40년 내공으로 쓴 <사기> 해설서는 대만족이다.
본기 세가 열전 등등을 액기스로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물론 시대착오적 언급, 예컨대 '자유' '도시' 등의 용어를 고대 중국이 아닌 근대적 감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사기의 구조를 촘촘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작년 마지막날, 처갓집 한 구석에서 이걸 읽는다고, 진상을 떨었다.
3.
사실 나는 이 일본학자의 사기 관련 저술을 읽으며 내 字를 생각해 냈다. 倡優.
한 자는 내 이름 '문'이 뜻하는 주나라 문왕의 이름 '창'에서 땄고,
다른 한 자는 주시경이 <국문강의> 발문에서 '나는 국문의 어릿광대 노릇이나 하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 가져왔다.
물론 주 문왕의 이름은 사람 인변이 없는 '昌'이지만,
감히 그대로 쓰지 못하고 인변을 붙여 광대임을 더욱 분명히 했다.
'창우'란 말 자체가 중국 고대의 광대를 뜻한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기 힘든사기의 몇몇 구절이 바로,
이 광대들의 실감나는 연극을 근거로 한 부분이라는 게 미야자키 선생의 설명이다.)
자는 본래 이름과 관련지어 짓는다.
할아버지가 '병'이라는 돌림자에다가 손자들에게 '문/무/주/공' 한 자씩을 붙여 이름을 지으셨는데,
그 '문'이 바로 주 문왕을 뜻하는 것이니 '창' 한자를 그의 이름에서 가져오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터.
'국문의 어릿광대'가 되고자 했던 주시경을 공부하고 있으니, 광대의 뜻이 있는 優를 가져 오는 것도 웃음거리는 아닐 듯.
내 이름이 너무 점잖은 느낌이 나서 그런지,
강한 소리의 '창우'가 맘에 든다.
너무 찢어지는 소리가 아닌가 싶어 '우창'을 생각해 봤다. 나쁘지 않다.
다만, '김우창'이란 큰 나무가 있으니, 조심스럽다.
4.
구내서점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강화>1(심경호 역)을 샀다.
언제가 일본에서 만지작 거리던 책인데, 반가웠다.
시라카와 선생의 책은 <중국의 신화>(일본어판)과 <한자의 세계>(번역본) 이후 몇 년 만이다.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와 함께 읽었다.
서예를 하기 위해서는 갑골학을 위시한 문자학과 경학에 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시라카와 선생의 책을 읽으면 한자는 모두 주술적인 배치 속에서 읽힌다.
예컨대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名을 저녁(夕)이 되어 얼굴이 보이지 않으므로 입으로(口) 이름을 부른다, 라고 풀이했다. 어쩐지 문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시라카와 선생은 갑골을 들이대며, 夕처럼 보이는 것은 제사지낼 때 쓰는 고기이고
지금 口로 된 것은 원래 축문을 놓는 그릇이었다고 한다.
즉 이름을 지어 조상에 제사 지내 허락 받는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名은.
그럴 것이다. 문자라는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신전과 왕/부족장의 테두리에서 시작되었을 것.
그러나 그렇다고 허신의 <설문해자>가 그 권위를 잃는 일은 없을 것.
한자의 첫 형태와 처음 뜻은 놓쳤을지 모르나(갑골을 본 적 없는 그에게 이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동아시아의 모든 문자학은 <설문해자>에서 번저나간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5.
새벽마다 한두 시간씩 짬을 내어 <한자학-설문해자의 세계>(심경호 역)를 읽고 있다. 역시 일본 학자의 노작.
許愼의 字는 叔重이다. '숙'은 형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고(셋째 아들인가 보다), '중'이 이름 '신'과 연결된다.
愼은 물론 '삼가고 조심하다'의 뜻. 이름과 합치면 '신중하다'의 '신중'이 된다.
고문경학에 바탕을 두고 금문경학까지 통한 그를 <후한서>에서는 '五經無雙허숙중'이라고 했단다.
경서 해석에서는 그에게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일 터.
이름 대신 字를 짓는 것은 대개 성인이 되는 의례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시스카와 선생의 갑골학에서는 字가 '아이(子)를 사당(宀)에 데려가 조상께 인사시킨다'는 뜻이라고 하나,
대개 20세 전후 치르던 관례 때이름 대신 지어준 것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字의 의미다.
<설문해자>에서는 乳와 관련 있는 것으로, 즉 아이에게 집에서 젖을 먹이는, 자손이 번성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字는 상형이나 지사로 이루어진 文이 회의나 형성의 원리로 한없이 늘어나 만들어지는 글자들을 뜻하게 된다.
<설문해자>란 바로 文을 '설'명하고, 字를 '해'석한 책.
물론 갑골에서 文은 죽은 자에게 다른 잡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심장 부근에 문신하는 것이라고, 시스카와 선생은 설명하고 있지만 말이다.
작년에 결혼을 했으니, 또 봄이면 애아빠가 되니, 싫든 좋든 나는 이제 더이상 애가 아니다.
공부에서도, 인생에서도 아직 갈피를 못잡고 있는 걸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그래서 마음을 다잡아 먹는다.
이제 또 다시, 시작이다.
辛卯年 立春之節 自作字而附其說
倡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