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잡지 잡감

pourm 2010. 11. 30. 15:18

1.

1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인가 보다.

누군가 호기롭게도 지난 세월과 당대의 면면을 이렇게 정리한적이 있다.


70년대가 백낙청의 시대이고
80년대가 박현채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이재현의 시대라고.
(<<현대사상>> 주간 김성기가 했던 말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70년대는 창비가 대표하는 문학의 시대였고
80년대는 사구체 논쟁이 웅변하는 사회과학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문화평론가들이 날리던 문화의 시대라는 말이였을 터.


정말 90년대엔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은 너도나도 문화평론가라는 생소한 직함을 가지고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얼굴을 비추었댔다.
문학평론하다가 만화, 영화, 시사 등등을 섭렵하며이름깨나 날리던,
말도 글도 모두재기가 넘치고 날렵했던 이재현은 정말 어디 숨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90년대를 그에게 돌렸던 김성기의 소식도 알 수가 없으니...

2.

엊저녁 무슨 바람이 불어선지, 옛날에 보던 잡지들을 떠들쳐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기다리던 잡지가 있었고, 만나면 반가운 잡지가 한두 개씩은 있었다.

<<이론>>은 투박한 운동권 단어와 조잡한 팜플렛에 푸념하던 내게 뭔가 고급스러운 아우라를 풍기며다가왔고,
<<창비>>는 '한때' 정돈된 교양의 냄새로 나를 홀렸다.
이제하나 이청준 같은 이들을 찾아 <<작가세계>>를 모았고
도정일의 신화 시리즈를 얻기 위해 <<문학동네>>를 찾았던 적도 있다.

무심코 집어든 <<역비>>에서 '근대'에 대한 통찰을 엿보기도 했다면,
<<현대사상>>에서 내던 부록 <지식인리포트>를 읽으며는 공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답 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90년대, 저 문화평론의 시대에 <<리뷰>>는 대중문화도 고급 담론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지막까지 사모으던 잡지는 알튀세를 거쳐 들뢰즈로 향하던 시절의 <<문화과학>>이었는데,

그 촌스런 분홍색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2호가 여적 생각난다.(2호의 특집은 '언어'였다!)

그러고 보니 참여정부 때까지도 제법 잘 보이던<문화연대> 사람들의 이름이 요즘엔 통 뜸하다.


3.
2010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2000년대는 무슨 시대였을까? 무슨 시대는 시대이기나 했을까?
아마 다음이나 프리첼, 아니면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의 시대쯤이라고 해 두면 될까?

수업 시간에 나눠 줄 요량으로 <<녹색평론>> 몇 꼭지를 복사해서 올라오다 만난 철학과 후배는

이런 걸 읽히냐며 핀잔이다.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잡지의 시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시대'를 살고 있기는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