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해제1
1.
손금이나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삶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손금의 모양이나 얼굴의 생김새에 ‘표상’되어 있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사주팔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사주에 한 사람의 운명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기호를 해석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듯, 사주팔자를 해석해 내면 그의 인생이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이름을 적절히 지어 사주에서 음양오행상 모자란 기운은 보충하고 너무 과한 기운은 눌러 줄 수도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는 모두 ‘목화토금수’의 오행 가운데 하나에 배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한자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적’이기로는 그 상대가 없을 것 같은 훈민정음도 예외가 아니다. 아(牙, ㄱ) - 설(舌, ㄷ) - 순(脣, ㅂ) - 치(齒, ㅅ)- 후(喉, ㅇ)는 각각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그리고 방위(동-남-중-서-북)에, 계절(춘-하-계하-추-동)에 색깔(청-적-황-백-흑)에, 심지어 신체의 장기(간-심-비-폐-신)에까지 빈틈없이 대응된다는 것이 훈민정음 창제자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손금이나 관상, 사주를 통해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려 들고, 또 글자/소리가 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단순히 비과학적인 넌센스로 치부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최소한 공식적인 담론에서는 위와 같은 생각이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과학과 비과학의 이분법으로는 현재의 관점만을 특권화할 뿐 과거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근대 이전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위의 예들에서 우리는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과는 다른 표상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현재의 관점에서는 원칙적으로 표상된 것(대상)과 그것을 표상하는 것(기호)이 질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지만, 원칙적으로 ‘태극기라는 깃발’과 ‘대한민국’(또는 그 구성원)은 질적으로 서로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의 이름은 그저 그를 표상할 뿐 그와 실제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금이나 관상, 사주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사이에 질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오행에 입각한 적절한 작명(作名)을 통해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너무 성(盛)한 것을 눌러줄 수 있다는 인식은, 기호가 그 대상과 표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상 대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우리가 기호의 대표적인 예로 드는 언어, 문자 역시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소리의 표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된다. ‘문(文)’이 세계의 원리인 ‘도(道)’와 분리될 수 없다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전통적인 관념은 이러한 담론 체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와 문자, 더 나아가 기호와 표상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 시점은 언제부터이고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친 것인가?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15세기 이후 유럽의 지성사라는 맥락 속에서 언어-기호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 푸코는 유사성의 에피스테메로 특징지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 개념이 성립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부의 분석, 자연사, 일반문법과 같은 당시에 통용되던 학문의 분석을 통해 분명히 한다. 예컨대 화폐의 가치가 금이나 은 같은 화폐(주화) 자체의 내적인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표상’하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식이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화폐를 구성하는 물질적 실체는 이제 그것이 표상하는 가치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기호와 그것이 표상하는 대상이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듯이.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이러한 기호와 표상에 대한 인식이 특정한 시기에 발생한 특수한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코가 이를 보여주기 위해 문서고를 뒤져가며 서구의 근대적 담론 구조를 분석해 나갔듯이, 우리 역시 이른바 근대계몽기에 쏟아져 나온 각종 문헌들을 뒤져가며 당시의 담론이 어떤 지형을 이루고 있었는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풀어쓰는 국문론집성』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하기 위한 기초 자료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