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죄의식

pourm 2010. 2. 16. 10:47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실은 유쾌한 일이며 감상(感傷)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렌트의 말이란다.

한참 지난 <당대비평>을 읽다가 어느 일본 학자의 이 말에 시선이 멈췄고,

후에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용산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내가 양심적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고 ‘상상’되는 남들에 대한 우월 의식을 ‘즐거이’ 맛보려 했던 것일까?

혹시 그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정당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그것은 나 역시 가담하고 있는 욕망으로 인해 빚어진 참극이었으므로

내가 마땅히 죄의식을 가지고 반성/참회해야 하는 일이었던가.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당한 관점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마 독일 지식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가지는 감정에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던

아렌트의 말을 가져 온 것일 텐데,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근대와 식민주의는 같은 기원을 가지는 쌍둥이이고,

근대가 끝나지 않는 이상 식민주의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요즘의 내 생각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멀리도 갈 것 없이, 나는 나 스스로 어떠한 생활 양식을,

누추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돌아갈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한없이 동경하고 이상화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떤 욕망을 식민화 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산’이고,

그것은 ‘고향’이고,

그것은 ‘시골’이고,

그것은 ‘어머니’이고, 그것은 ‘살아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서 '상호 부조와 호혜의 공동체'는 얼마나 멀리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