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근대어문 연구의 쟁점_토론문
1.
우선 근대 어문연구에 관한 여러 논의를 정리하는 이 귀중한 자리에, 아직 공부가 모자란 저를 토론자로 불러 주신 근대한국학연구소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토론의 형식은, 미쓰이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중에 떠오르는 의문점 두어 가지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 언어운동 및 언어정책과 관련해서 제가 기왕에 가지고 있던 고민을 여쭙는 방식으로 할까 합니다.
2.
선생님의 오늘 발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첫 부분은 식민지 시기 조선어문의 규범화 문제에 관한 개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선생님께서는 이 주제에 상당한 기간 천착해 오셨고, 또 좋은 글로 국내 연구자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 계십니다. (종래의 연구는 조선어학회가 주도한 언어운동적 측면에 주로 주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이 규범화 문제의 전모를 옳게 밝히기 위해서는 식민지 당국이 주도한 언어정책적 차원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해 오셨습니다.) 소위 ‘한글파’나 ‘정음파’ 모두 총독부가 설정한 정책적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이 정책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오늘 선생님의 말씀에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발표의 뒷부분은 최근 문학전공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식민지 시기 한글운동에 관한 재평가를 비판적으로 정리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선생님께서는 두 분 연구자의 논문을 지적하셨는데, 이 두 글이 모두 식민지 당국의 조선어교육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운동적 차원만 강조했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협력’을 요청한 정책의 논리는 외면되고, 마치 조선어연구회가 이 ‘협력’을 주도 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도리어 저항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되돌아 가 버린 것도 역시 운동과 정책의 관계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런 지적은 기존의 선생님께서 취하시던 입장을 감안하면 아주 자연스럽고 또 합당한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를 위한 방법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셨습니다. 이 제언들은 식민지시기 언어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연구자들이 귀담아야 할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주목하고 있는 저 역시 선생님의 제언을 깊이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3.
3.1 그런데 저희에게 주신 이 제언 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첫 번째 것, 즉 정책과 운동의 “다이너미즘”을 상세히 검토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오늘 발표 내용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부분으로 너무나 합당하고 옳은 지적이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합당하고 옳은 만큼 그것이 조금은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기존의 연구들이 이 두 가지 면 중 하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나머지 측면만 다룬 적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만 연구 목적에 따라 무엇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는가 하는 점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또 언문철자법 등을 비롯해 총독부의 조선어정책에 관한 관심과 연구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두 글에서는 정책적 측면이 간과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 글들은 당시 언어 운동의 특정한 성격을 얼마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균질적 교환매체라는 인식하에국가 시스템을 요구했다’는 분석, 그리고 ‘제국으로부터 민족을 분절해 냈다’는 지적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논의가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이 연구들을 평가하는 데에는, 정책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음을 지적하기에 앞서, 오히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바로 이 핵심적 명제들의 적실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당시의 한글운동이 화폐나 도량형과 같은 균질적 교환의 매체로 언어를 바라보았다는, 이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는 검토해 볼 필요가 여지가 있습니다. 아직은 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단순한 교환의 매체라고만 보았다면, ‘민족’의 ‘갱생’, ‘문화/문명’을 외치며 그들이 조선어 운동에 그렇게 정렬을 쏟아 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선적 화폐’나 ‘조선적 도량형’의 보전 발전을 도모하려는 운동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저로서는 한글운동 당사자들이 언어/문자를 화폐나 도량형과 같은 균질적 매체로만 보았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두 언어가 공존하는 비균질적 상황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고, 이 비균질적 상황을 어떤 면에서는 당연시 여기고 심지어 이런 상황을 유지하려고 했던 게 바로 한글운동 당사자들의 의도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오늘 발표를 들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점은, 선생님께서 비판적으로 검토하신 이 두 글이 과연 함께 묶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한글운동’이 ‘국가적 시스템을 요청했다’는 명제와 ‘제국으로부터 민족을 분절해 냈다’는 명제는 오히려 상호모순적이지 않나 하는 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쪽은 ‘끊임없이 국가를 염두에 두면서 이와 긴장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쪽은 ‘아예 국가의 문제를 논외로 했다’는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3.2 두 번째는, 식민지 시기 언어정책 및 언어운동에 관한 연구가 좀 더 시야를 확대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소견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시야를 확대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그 전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함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으로 시야를 확대하는 것입니다만, 당시 일본의 식민 또는 반식민 상황에 놓여 있던 다른 여러 지역과 조선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국문연구소가 설치 운용되었던 대한제국 말기의 상황, 즉 그때의 운동과 정책은 어떠한 긴장 및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것이 30년대의 상황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때 역시 국가적 차원의 규범화 필요성이 제기되던 차에, 민간의 여러 문제 제기를 수용해 국가 기구에서 언어규범화에 나선 경우인지라, 일견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상황과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를 밝혀낸다면 식민지 시기의 규범화 문제가 더욱 명료히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일 사항은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가 그 연원을 대고 있다고 하는 조선언문회(배달말글모듬)의 성격 규명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연원을 연구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이 조선언문회가 고려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기존 한글운동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주시경과 그 후예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조선언문회가 고려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선어학회의 성격 평가에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조선어 운동 및 정책 간의 관계를 옳게 구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뿐만 아니라, 앞서 말씀다린 바와 같이 당시 제국 일본의 전체 언어 정책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일본 국내의 언어정책과 식민지 각국에서의 정책이 어떠했는지를 비교 검토한다면, 한글운동 및 조선어교육정책의 성격이 더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선생님께서는 대만어 규범화의 역사적 맥락과 조선어 규범화를 비교하신 바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둘 간에 어떠한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주신다면 식민지 시기 조선어 규범화 문제를 좀더 분명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발표 말미에 언급하신 야스다 도시아키 선생님의 주장에 관한 것입니다. 야스다 선생님의 연구는 요사이 국내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편입니다. 일본과 식민지 대만, 조선의 상황을 하나로 묶어 ‘국민국가적 언어편제’로, 만주와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상황을 ‘제국적 언어편제’로 갈라 설명하신 부분이 흥미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서 나름의 연구 성과를 내신 미쓰이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설명 방법이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3.3 마지막으로, (이 발표회의 전체 취지와도 관련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을 선생님께 여쭈어 보는 것으로 토론을 마칠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식민지 조선에서의 ‘언어적 근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규범화, 운동, 정책’ 같은 개념도 모두 이 큰 틀에서 논의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줄 압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기존 국어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제에 무관심했고, 실상 이를 다룰 마땅한 개념적 틀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근대 국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이때의 ‘근대’는 정치, 사회, 역사적인 함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근대 국어’ 연구에 관한 내용은 다음 발표에서 다루어질 것이므로 제가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적절히 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의견을 한 마디만 말씀드린다면, ‘언어에 내재하는 규칙’을 찾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는 현재의 주류 언어학으로서는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언어적 근대’의 문제에 특별한 입장을 내놓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언어학 이외의 영역에서, ‘근대’의 문제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언어적 근대’에 대해 일정한 발언을 하시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그 중 몇몇 논의들이 소위 ‘식민지근대화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가장 크게 우려하신 바도 아마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합니다. 즉, 식민지 당국의 목적과 의도를 분석하지 않고 운동만을 강조하다 보면 소위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시혜적 논리를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목적과 이유에서 식민지 당국이 조선어의 규범화, 근대화를 추진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식민지근대화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식민지수탈론’에서라면 그 이유를 ‘수탈, 착취’에서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짧은 소견으로는 ‘근대’와 ‘착취’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닌 듯합니다. 저는 ‘근대적 착취’라는 말에서 어떤 개념적 불합리성도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식민지수탈론’으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가 이쯤 되면 풋내기 언어학도인 저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역사를 전공하시고, 또 언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선생님께 여쭈어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합니다. ‘식민지근대화론’과 관련하여, 식민지 조선에서의 ‘언어적 근대’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일 근대어문연구의 쟁점1,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한연구소 주체 학술대회,토론문. 2008.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