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너는 어떻게 사는고

pourm 2007. 7. 6. 17:06

1.

데리다를 읽지 않은 이유는 좌파적 착취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말과 사물>에서는 맑스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으나후기 저작들에서는 맑스를제법 긍정적으로 평가했던푸코나, 아예 공산당원이었던 알튀세(<맑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같은 저작은 스탈린주의와 대결한, 우리에게 또다른 맑스가 있음을 알려준 책들이었다), 가타리를 만나며 크게 좌익화된 들뢰즈(<앙티오이디푸스>의 부제는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이다)는 는거부감이 없었던 반면에 데리다는 온전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버터 바른 철학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모든 해체는 전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물론 들뢰즈나 푸코와 달리 내가 아는 한 그의 전복은 텍스트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뱅뱅 돌뿐. 말꼬리 잡기.)

더구나 위의 셋(, 아 그리고 라캉!)과 더둘어 언어 또는 언어 이론에관심을 가졌던탈구조주의자들 중에서 데리다를 빼놓을 수 없다. (프로이드를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한 라캉을 읽게 된 것은 알튀세가 그에 기댔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지젝의 이름이 간간히 그를 통해 들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언어에 대해서 좀더 직접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를 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

김규항을 읽다가 우울해졌다.

현존하는 작가의 글 중에 내가 제일 찾아 읽는 것은 고종석의 글이다.

그러나제일 크게 동의하면서 읽는 글은 김규항의 글이다.

<나는 왜 불온한가>라는 제목의 책을 읽다가,

그의 글에 너무나도 동의하기 때문에 우울해졌다.

그의 글과 거기에 담겨 있는 그의 삶이 나에게 아픈 질문을한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3,

평창이 동계 올림픽 유치에 두 번째 실패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온 나라가 각종 국제 운동 대회나 박람회 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자 혈안이다.

국제 스포츠 경기의 정치경제학을 분석한 글을 읽었으면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글은 얻어걸리지 않았고,

유치했으면 현재의 모순을 덮어버릴 뻔 했음을 지적하는 글을 만나 아쉬운 대로 링크를 걸어 둔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70519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