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윤소영이 번역한 솔로몬의 베토벤을 (거의 다) 읽었다. 나중에 박홍규가 쓴 베토벤 평전을 읽다 알았지만,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쓴 유일한 베토벤 관련서가 이것이라고 한다. 97년 처음 샀을 때는, 물론 부록 ‘피디의 진실2’를 읽기 위해 산 것이기도 했지만, 어렵고 투박하게만느껴졌었는데, (물론 여전히 힘겹기는 하다. 이는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내가 서양음악의 습속에 전혀 익숙하지가 않을 뿐더러 그것을 다시 맑스-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도 역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이제 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이 책이 꽤 잘 짜여진 구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역자가 이것저것을 들춰보면서 적성한 연보의 완성도가 높다. 물론 베토벤의 삶과 그의 음악을 충분히 아는 상황에서 보아야 이해할 정도로 상세하고 깊이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이 책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완역이 아니고 음악 부분만 번역되었다고 하는, 이 책의 본 텍스트는 초기(본 시기, 비엔나에서의 초반), 중기, 후기로 나누어 베토벤의 음악을 해설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곡이 작곡되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음악적 특성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박홍규는 과도하게 정신분석학적으로 기술되고 있다고 했으나 나로서는 무어라 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텍스트다. 이는 근본적으로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서양 고전 음악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다만 ‘과도’할 정도로 정신분석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또 딱히 맑스주의적 해석이라 하기도 어렵다. 후원 제도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이 베토벤의 삶 및 음악과 연관되어 기술되는 몇몇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맑스주의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낯간지럽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지못할 이유도 없지만.
그리고는 보유 부분이다. 우선 베토벤의 작품 목록이 작품 번호 순으로, 또 장르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적당한 연주자를 소개해 준다. 초심자가 선택할 음반 추천에도 인색하지 않다. 예상 가격까지 들먹여 가며. 오디오 선택에도 도움되는 한 말씀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뒤에 내가 밑줄 쳐 가며 읽었던 ‘피디의 진실 2’가 조금은 생뚱맞게 배치되어 있다. 맑스주의를 스피노자와 접합시켜 새롭게 전화해 내야 한다는 윤소영 특유의 그 장광설. 그때 밑줄 친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옆에 내가 무어라고 적어놓은 문장들도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레닌과 베토벤’인가 하는 열대여섯 매 정도 되는 짧은 글이 놓여 있다. 레닌이 혁명 후 고리키에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57번을 듣고 나서 ‘열정은 나를 항상 극심한 파토스로 몰아넣는다. ... 이제 이런 음악을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는 조금은 시덥지않은 이야기.
여러모로 구색을 잘 갖춘 책이라 생각된다. 육칠 년 전 이 책을 처음 샀을 때는 이런 괴팍한 책이 다 있나 하며 내동댕이쳤는데, 지금은 잘 편집해서 원서를 그대로 번역해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읽기에 너무 뻑뻑하다. 윤소영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온갖 비문과 영어식 문장으로 나의 베토벤 읽기를 방해했고, 편집도 번역 못지않게 독자를 배려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워 좀 아쉽다.
솔로몬의 책을 읽다가(뒷부분의 초심자 추천 코스를 먼저 들춰보고) 지지난주 주말 교보 문고에 가서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교향곡 9번(53년, 라이브)과 길렐스가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106번 함머클라이비어(이 시디에는 101번도 함께 들어 있다)를 샀다. 한 일주일 이상 들었는데 아직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특히 함머클라이비어는 좀 어렵다. 그래도 두 곡 모두 좀 익숙해진 편이다. 아직 뭐라고 이빨을 까댈 정도는 안 되지만. 지난주 주중에는 신촌의 신나라 레코드점에서 예의 그, 레닌이 뿅갔다는 57번 열정 소나타를 샀다(이 안에는 53번, 81a번도 포함되어 있다). 앞의 두 곡보다는 훨씬 필이 꽂히는 곡이다.
지난 주말 교보에서 박홍규 교수의 베토벤 평전을 사 읽었다. 윤소영의 책보다 한 면의 행이 10행 가까이나 적은 책이기 때문이었는지 또 음악 용어가 벨로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워낙 저자가 글을 잘 써서인지(사실 저자의 글이 대부분 신통치 않아서 걱정을 했었는데 기우였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악문으로 악명 높은 그런 글은 아니었다), 금방 읽었다.
노동자를 위한 베토벤 평전이라고는 했으나 특별이 노동자를 위해 배려했다거나 어떤 계급적 관점에 입각했다는 느낌은 안 든다. 물론 억지로 잘난 척 하지 않았다는 점(문투에서나 글의 내용에서나)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당시 본과 빈의 상황 더 나가서는 유럽의 상황(윤소영 번역의 책이 읽기 곤란했던 이유에는 이 부분에 관련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는 것도 포함된다)이 베토벤과 엮여 잘 기술되어 있다. 다만 (물론 내가 그런 것까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출전과 근거가 애매하다. 내가 읽은 유일한 베토벤 관련 문헌(물론 솔로몬이 쓰고 윤소영이 번역한 앞의 책)에서 (아무 언급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부분들도 눈에 띈다. 윤소영이 레닌을 이야기 하면서 소련의 사전, 북한의 사전을 인용한 것도 거의 그대로 이 책에 보인다. 곡 해설 부분도 솔로몬의 평이 어른거리는 꼭지들이 몇 개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랴... 내가 비분강개할 일도 아니건만.
(2003.12.3. 일기)
덧붙임: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윤소영이 부분 번역한 솔로몬의 책이 완역본으로 한길사에서 곧 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