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

pourm 2004. 9. 15. 15:59



여름휴가 기간(8.27~9.2), 지리산 여행을 다녀와 유종호 선생의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를 읽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가소롭게도 나는 어느 때인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무엇은 기억되고 무엇은 잊혀지는가, 기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였을 터이다. 아마 술먹은 다음날 끊어진 필름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맞추다가 문뜩,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기억은 분열의 소산이다, 라는 게 그날의 생뚱맞은 결론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의 행동을 치어다 봤을 때 기억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 생각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어제의 행동이 분열되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의 행위였다고 자위할 수 있게 해 주는 편리한 방법이었다.

가소롭기도 하고 생뚱맞기도 한 이날이 결론은 그러나 전사(前史)가 있다. 내 기억 중 비교적 이른 것일 텐데, 일고여덟 살 무렵 어머니 심부름으로 아파트 연쇄점(체인점의 번역어임에 틀림없을 이 말로 그때는 슈퍼를 지칭했다)에 다녀오던 나는 소년한국일보를 읽고 있었다. 대략 네 면짜리의, 만화나 소년기자들의 볼품없는 기사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을’ 그 신문을 나는 길을 걸어가면서, 그것도 활짝 편 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기억의 화면에는 신문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약 45도 각도로 뒤쪽에서 카메라로 잡은 듯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신문과 내 손만이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에는 신문 보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의 행위를 보았을 때 기억은 발생한다. 고로 기억은 분열의 소산이다.

대학 2학년 때 쯤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벤야민 관련 책에는 그 자신이 유년을 회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불과 서너 살 때의 일을 너무나도 선명히 기억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심한 이물감 같은 것을 느꼈다. 여서일곱 살 때까지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에게 콤플렉스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게 당연하다. 그러나 기억은 분열의 소산이라는 가소롭고 생뚱맞은 그 어느 날의 깨달음은 그런 콤플렉스를 연민으로 바꾸어 주었다. 아주 어린 시기부터 분열된 삶을 살았다니, 벤야민 그의 삶은 정말 우울했을 것이다.

유종호 선생의 [나의 해방 전후]는 그가 국민학교를 입한한 1940년부터 중학교를 졸업한 1949년까지의 10년간에 대한 기억이다. 그의 기억력에 정말 경의를 표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동급생의 이름을 거의 몽땅 기억해 내는 부분인데, 창씨개명한 이름과 그 후에 우리식으로 다시 바뀐 이름을 모두 기억해 내고 있다. 국민학교 6년 동안의 모든 선생님들(중간에 바뀐 선생, 옆반 선생, 교장 선생 등등을 포함하면 열댓 명이 훌쩍 넘어간다. 나는 우선 국민학교 일한년 때 담임선생의 이름은 물론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은 대체로 2학년 때부터 시작된다)의 이름과 성향, 학교 주위의 여러 풍경들, 해방 되던 날과 그 며칠간의 상황들... 이런 것들 모두가 그의 기억에는 아직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다.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해방 되던 날 전후의 이야기다. ‘좋다, 좋아’하던 첫날에서 ‘만세, 만세’로 구호가 바뀐 것 같은 류의 시내 쪽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어제까지 일본이름으로 불리고 일본식 내용의 수업을 하던 선생이 오늘 내 이름은 사실은 김 아무개다, 앞으로는 이렇게 불러다오....하는 학교 쪽의 이야기였다. 유종호 선생은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했다. 그걸 일본말로 했는지, 조선말로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면서. 요즘의 친일 청산 문제와 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너무 쉽게 친일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이 책에는 내 고향이자 저자의 고향인 충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실은 그래서 더 이 책을 샀게 되었을 터이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교 은사인 이 양반의 글은 언제나 그렇지만, 단정하고 세련된 품격을 자랑한다. 예전, 한울에서 나온 [아름다운 성찰]에 실려 있던 신경림, 박완서의 글을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가졌다, 읽는 내내. 나도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글로 옮겨 보련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