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그리고 <아함경>

삶읽기 2018. 10. 8. 18:53

1.

뜨거운 여름이었다.

40도를 넘나들던 2018년 8월.

마흔다섯의 생일을 전후로 열흘 남짓.

왠지, 나는 내 인생의 반환점을 그때 돈 것만 같다.


2.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 이상은 버틸수가 없다, 고 중얼거렸다.

아내에게 사표를 내겠다고 말한 후, 출근해 보니 이미 10시가 넘은 상황. 예정된 부서회의가 있었고 회의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부장 책상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다.


부장, 실장과 몇차례 메일을 주고 받았고

처장이 집앞으로 찾아왔다. 꺼진 전화기에는 많은 동료들이 걱정의 말들을 남겼다.

괜히 눈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다시 회사에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다짐만 굳어졌다.

부이사장이 불렀을 때도, 한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손을 잡고 내 어깨를 잡고 내 팔뚝을 부여잡은 그이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라며 그래도 버티던 내게 그는 '건방진 소리 하지 말라'고 단 한번 언성을 높였다.


사표를 내고 열흘 남짓 만에 출근했고, 그로부터 한달하고도 보름이 더 지났다.

상황은 나아진 것이 '전혀' 없고, 더 심각하기만 하다. 아득하다.

내 딴에는 지난 2년 몸을 던졌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보다.


3.

뜨거운 여름, <아함경>을 읽었다. 일테면 <화엄경>의 그 광대 무변한 세계(아, 그 감당 안 되는 장광설이여)와는 구별되는 <아함경>의 담백함. 그 뜨거운 여름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고타마를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보리수 아래서 얻은 깨달음은 연기의 법칙이다. 

그 어떤 것도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의 깨달음으로부터 후기구조주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이진경이 걸출한 책 한권을 제출했다)


늘 그렇듯, 삶은 오리무중이고, 갈 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자, 다시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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