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장치란 무엇인가?>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책일기 2024. 3. 2. 18:52

1. 
2월부터 읽고 있는 책들
녹색평론 184호, 2023년 겨울호
김덕영,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길, 2007
조르조 아감멘, 장치란 무엇인가, 난장, 2010
민태기,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위즈덤하우스, 2023
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미지북스, 2013
장기영, 보란듯한 몸, 초과되는 말들: 베리어컨셔스 공연, 이안재, 2023

2.
<녹색평론>을 다시, 읽다.
김종철 선생의 돌아간 뒤에 왠지 <녹색평론>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걸려 오는 전화에 응원의 말들을 엊어드리기는 했으나, 왠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가끔씩 펼쳐 들어도, 오히려 김종철 선생이 만들던 때와 너무 똑같아, 예컨대 권두언의 문체마저 그대로라서 책장을 덮었던 적도 있다.
마음 먹고 다 늦은 겨울호를, 그렇다 이제 계간지가 된 <녹색평론> 겨울호를 펴들었다.
여전히 내 삶을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글들과 현 정세를 넓은 안목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글, 
그리고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새로운 삶의 형태와 공존의 모습을 구체적인 일상으로 그리는 문장에 눈길을 멈추었다. 
마지막 광고란에서, 원주지역 독자모임을 제안합니다, 라는 문구를 읽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설렜다. 

3.
조르조 아감멘의 <장치란 무엇인가?>.  
김진해 선생의 글을 읽다가 만난 책. 푸코의 담론 형성체 개념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말과 사물>에서 담론 외적 요소를 완전히 도외시 했던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비담론적 요소를 도입한다. 그리고 <감시와 처벌>에서부터  규율 사회, 지식과 권력이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다.
예컨대 근대적인 형법학이라는 담론은 감옥이라는 비담론적 요소와 결합하여 근대적인 죄-처벌의 개념을 형성하고 또 근대적인 의미의 수감자, 죄인을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정신의학이라는 담론은 정신병원이라는 비담론적 요소와 결합하여 근대적인 정신병의 개념(의학적 치료의 대상인 병증으로서의 광기)을 형성하고 또 근대적인 의미의 정신질환자를 생산한다.
장치로서의 한국어학, 한국학이 결합하는 것은 어떤 비담론적 요소이며, 그렇게 해서 작동하게 되는 장치는 어떤 근대적 개념과 주체를 생산하는가?
무언가 생각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4.
김덕영의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김덕영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계발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책에서는 게오르그 짐멜과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이들을 통해 짐멜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니체(노예의 도덕=근대 비판)와 베버(탈주술화, 과학, 합리성으로서의 근대)의 사이에 있다는 짐멜의 위치가 흥미로웠고,
자연과학적 요소가 강한 칸트의 철학을 상징체계에 적용한 카시러 등의 신칸트학파와의 대조를 통해서도 새롭게 알게된 바가 많았다.
다만, 짐멜의 가치이론을 한계효용학파의 그것에 가깝다고 하면서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본 고전경제학과 대조한 것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대주의(한계효용학파)와 절대주의(아담 스미스, 맑스)의 대립 구도를 세운 것인데,
맑스의 정치경제학에서 '가치'는 단순히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도 아니다. 
노동도 상품의 가치도 모두 사회=시장에서의 교환에 의해서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다. 소쉬르의 랑그가 그렇듯이. 사용가치와 구체노동, 그리고 파롤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가치, 즉 교환가치와 추상노동, 그리고 랑그만이 정치경제학/일반언어학의 진정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가라타지 고진은 정치경제학의 이런 특성에 대해 쇼펜하우어를 빗대어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정치경제학, 인류학, 언어학에서의 가치 이론. 맑스와 마르셀 모스(혹은 칼 폴라니), 그리고 소쉬르. 이들의 상관관계는 내게 여전히 해명의 대상이다. 
(2024.03.29)

조국은 나의 사표

삶읽기 2024. 2. 3. 19:17

조국은 나의 사표(師表)!
사람들은 조국 전 장관, 수석, 교수를 사법개혁의 화신이라고도 하고
천하의 인간 쓰레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는 평험한 시민이었다. 우리의 평균적 욕망이 투여된.
명백한 불법이나 사기가 아니라면 수익율 좋은 투자처에다가 돈을 굴려서 강남에 건물을 사고 싶었다. 너나 없이 그렇듯이.
어떻게든 내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였다.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사회의식이 넘쳐나서 보수꼴통들의 몹쓸짓을 언제나 준엄하게 심판하는 민주인사였다. 게다가 그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사노맹'의 맹원이었다지 않은가.

아마 누군가 이명박을 꿈꾸었다면, 나는 조국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말도 할 수 없이, 너무나도 멋진.
그리하여 그는 나의 사표다.

이름하야 '조국 사태' 뒤에,
나는 먼저 입바른 소리를 삼가기로 했다.
그 무슨 민주인사라도 되는양 사회 문제에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을 땐, 조국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내 자식을 통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되돌아 본다.
아마 아비로서의 바람이나 욕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때마다 조국은 나의 사표가 되어줄 것이다.
은행잔고와 아파트 전세가의 등락에 여전히 전전긍긍할 터이지만, 전단지에 실려오는 교외의 목좋은 부동산 소식에 흔들릴 때면 조국을 되돌아보리라.

법과 원치, 정의의 화신 윤석열은 도무지 내 삶과는 무관한 이다.
우주 끝까지 쫓아가 악당을 무찌르는 그는 방금 만화영화를 찣고 우리 앞에 나선 정의의 용사이다.
그가 물리친 박근혜와 이명박, 그리고 이제 그가 거꾸러트리기로 작정한 문재인의 구별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미완)
(2020.12.8)

<하이데거 극장>, <휘어진 시대>

책일기 2024. 2. 3. 16:25

1.
한달에 한번 정도 "책일기 삶읽기"를 쓰도록 한다.

지난 연말부터 새벽 시간이나 잠자기 전 짬을 내 세 종의 책을 읽고 있다.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1,2, 한길사, 2023
남영, <휘어진 시대>1,2,3, 궁리, 2023
박희병, <한국고전문학사 강의>1,2,3, 돌베개, 2023

연말 연초 대학원생들과 세미나에서 읽은 책
개리 거팅, <미셸 푸꼬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 훙은영 박상우 옮김, 백의, 1999

주시경의 저작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채로 <주시경전서> 3권에 수록된 <고등국어문전>의 정체를 (비로소 이제야!) 파악하기 위해 1908~1910년 사이에 발표된, <국어문전음학>, <국문연구>, <국어문법>의 내용과 교차 검토 중. 


2.
<하이데거 극장>을 시작한 것은 12월 초인 듯.
자브란스키의 <하이데거: 독일의 철학 거장과 그의 시대>를 읽다가 그의 장광설에 질려 버린 경험에 반신반의. 
한겨레 신문에서 읽던 고명섭의 글은 언제나 미적지극한 느낌이었기에 역시 반신반의.
그러나 하이데거의 거의 전 저작을 차례로 읽어주는 그의 진중함과 성실함에 감탄함.
후설 현상학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딜타이의 해석학, 신학생 시절의 신학에 이르까지 그의 사상에 녹아든 당대의 지적 흐름을 상세히 설명.
야스퍼스와의 관계, 한나 아렌트와의 밀회, 카시러와의 다보스 결투 등도 흥미있게 펼쳐진다.
물론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 취임과 더불어 시작되는 독일국가사회주의당과의 관계, 유대인에 대한 그의 발언 역시 가감없이 복원한다. 하이데거를 변호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좀 안쓰럽기는 하지만.
2권 중반 정도까지 읽다가 한쪽으로 치워놓은 상태. 
제2차 세계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치와 결별한 하이데거는, 그러나 여전히 독일민족을 근대가 망쳐놓은 세계사를 구원할 현존재로 굳게 믿고 있다.

3.
하이데거 극장>과 함께 사 두었던 <휘어진 시대>를 읽기 시작한 것은 부산출장을 앞두고서이다.
이거라도 읽으면 1박 2일 출장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 가기전에 1권을 마치고 2권을 기찻간에서 읽으려 했으나, 출장길에 겨우 1권을 다 읽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부의 '과학혁명'을 다룬다. 물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원자폭탄이 주요 주제.
그러나 전제적인 얼개로 보았을 때 주인공은 양자역학. 1권은 양자역학이 나오기 위한 이론적 배경, 2권은 양자역학의 탄생, 3권은 양자역학과 전쟁,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극적 결말.
유럽 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 화학자들을 종횡무진 탐사하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에 혀를 내두름.
영국의 톰슨/레더퍼드, 독일의 막스 프랑크/아인슈타인(베르린)과 힐베르트(괴팅겐), 프랑스의 퀴리 부부과 랑주뱅(이상은 1권의 주요 인물), 그리고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슈레딩거....
현대 물리학의 혁명적 변화를 내 초보적인 과학 지식으로는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치열한 토론과 경쟁, 연대감으로 형성되는 과학자들의 공동체, 그리고 양차 대전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설명은 당시의 분위기를 어려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그들의 뜨거운 의지, 연대의식이 전쟁 앞에서 여지없이 조국애로 수렴되어 갈갈이 찢겨 나가는 모습은 그런 면에서 더욱 씁쓸하다. 
2권 중반부를 읽고 있음.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세상에 내놓을 찰라.


4.
일반 상대성 이론은 물론이거니와 방사선의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여 원자론을 거쳐 양자역학의 성립에 이르는 길은 말할 것도 없이 고전 물리학의 붕괴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이론은 뉴턴 역학을 완전히 대체한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가정 대신, 질량을 가진 물체의 주위가 휘어져 버린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우주의 운행을 설명한다는 것의 의미. 행성은 인력 때문에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 운동하고 있지만, 태양의 중력장 안에서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회전하는 것일 뿐이다. 
중력장은 물론 자기장과 전기장에서 받은 영감에 의한 것이다. 무질서하게 놓여 있던 쇳가루가 자석의 주위로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는 놀라운 이미지를 우리는 모두 갖고 있다. 부르디외를 비롯한 사회과학의 장 이론 역시 중력장이라는 개념과 무관치 않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떤 (사회적) 힘에 의해 형성된 중력장 안에서 그 중력장이 허락한 형태로 말하고 행동할 뿐이라는 것
무엇보다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시공간 개념, 따라서 칸트의 철학적 세계관, 유크리드 기하학을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실현되는 제한적인 것으로 보게 다. 
아인슈타인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지만,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제출된 양자역학은 더욱 근본적이다. 추체에 의한 관찰 대상의 간섭. 관찰자의 관찰과 무관하게 대상은 거기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거기에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확률상으로 계산해 낼 수 있을 뿐, 전자의 명확한 위치와 운동량(질량*속도)은 알 수 없다. 운동량을 알려하면 위치가 모호해지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운동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확실성 원리의 기본 가정이다. 
관찰 행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바로 이러한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된 유명한 사고 실험이다.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자를 열러 보는 관찰자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바로 그 시대에 유사한 공간에서 제출된 하이데거의 철학은 어떠한가?
그가 추구한 존재의 진리는 '세계-내-존재'인 현존재에서 비로소 개시(開示), 즉 열려 보여진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진리란 대상과의 일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존재의 진리론은 전형적인 주체 철학인 것이 아닐까?
현존재, 즉 인간에게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사태는, 예컨대 죽음이라는 현사실성 앞에선 현존재의 결단, 기투에 의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인의 공공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역시 바로 그때이다.
더구나 1930년대 현존재가 개인에서 도약하여 (게르만) 민족으로 화하는 장면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비슷한 시기 식민지 조선의 지식이 정인보가 기본적으로 개인이라는 단위에서 논의될 수 있는 '양지(良知)'를 겨레의 '얼'이라는 개념으로 도약하는 장면과 겹친다. 이런 과정은 사실 신채호와 박은식이 국수, 국혼이라는 개념을 제출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양지가 그렇듯이 혼백의 혼은 당연히 개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양지와, 혼, 그리고 현존재가 네이션과 결합하는 대목은 징후적인 현상으로 읽힌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물론 근대 극복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합리, 이성, 과학, 탈주술화에 대한 그의 비판 자체가 18세기 낭만주의에 젖줄을 대고 있는, 근대성의 또 다른 면모는 아닐까. 근대의 극복을 논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하이데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후기 하이데거가 거듭 다루는 훨덜린을 빼놓고 18세기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지젝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나치즘에 바로 연결시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 내재한 어떤 점이 나치즘과 친연관계에 있었는가 하는 분석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철학적 과제일 터.
이는 교토학파의 근대초극론을 검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사항일 것.


5.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한 일은 결국 근대 비판일지도 모른다.
그는 근대철학이 주체의 경험과 선험, 코기토와 비사유,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와 되돌아옴을 진자처럼 반복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반과학이라고 보았던 탈주체의 정신분석과 문화인류학이 과연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얼마나 온전히 정초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야에서 보았을 때 하이데거의 철학이 근대의 에피스테메 안에 놓여 있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푸코가 바랐던 것처럼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넘어서기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분명할 터. 다만 언어에 대한 그 새로운 이론은 더 이상 언어학이 어닐 것이다. 그것은 '의미'와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룰줄 아는 새로운 담론일 것이다.

(2024.1.1.)

‘사회언어학’을 찾아서- 언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사회언어학

책일기 2021. 5. 25. 09:44

1.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가장 난감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질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상황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저 “국문과 나왔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로 대답이 가능할 수도 있다. 또 역사나 철학, 문학 전공자의 질문이라면 ‘어학’이라는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예컨대 국어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내 대답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때는 ‘사회언어학 전공’이라는 대답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 적도 있다. 처음 학술발표를 한 곳도 한국사회언어학회였고, 난생 처음 학술논문을 게재한 곳 역시 <<사회언어학>>󰡕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내 전공이 과연 사회언어학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또 사회언어학 전공을 자임하는 분들한테서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언어학은 고사하고 그 상위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언어학의 세부 전공 어디에서도 내 공부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낭패감에 휩싸였던 적이 여러 번이다.

석사 논문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나의 문제의식은 근대적인 언어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데에 있었다. 물론 이 테마를 풀어내기 위해 주로 살핀 곳은 한반도 안쪽이었으나 때로는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서구 유럽의 ‘근대성(modernity)’이란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시경을 비롯해서 대체로 전문적인 한국어 연구자와 그들의 저술을 연구 대상으로 했지만, 당대의 주요한 역사 문학 철학 텍스트 역시 검토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석박사 두 번의 학위논문 심사 때마다 가장 대응하기 힘들었던 지적은 사회학, 역사학, 문학 전공의 심사위원들이 하는 문제제기가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어학 논문인지를 설득해보라’는 어학 전공 심사자들의 요구였다. 사회언어학이 내 전공이라는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언어학은 고사하고 ‘어학’인지도 의심스러운 내 연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관심사는 ‘언어’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언어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담론과 인식의 문제였다.

 

2.

이제 막 공부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석사 과정 시절,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내 전공은 사회언어학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작 그것이 어떤 학문인지도 잘 모르면서, 음운론이나 통사론은 물론이고, 의미론이나 화용론보다도 더 진보적인 학문이라며 으스댔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어느 세미나 자리에서 그러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평소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선배 하나가 아주 냉소적인 어투로 ‘대체 사회언어학이란 게 뭐냐?’고 내게 물었다. 일관된 연구 대상과 방법론이 부재한 사회언어학이 과연 제대로 된 학문이기나 하냐는 힐난이었는데, 지금이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반박을 했겠지만, 달랑 번역된 두 권의 개론서를 읽은 것 말고는 사회언어학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었던 나로서는, 분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워드워프(Wardhaugh)와 파솔드(Fasold)의 개론서를 읽으며 나 역시 여러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논의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테면 2014년과 2020년에 한국사회언어학회에서 출간한 총서 1, 2권을 읽어보면 한국의 사회언어학 연구가 얼마나 깊이 있고 수준 높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루어진 10개 내외의 주제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연구 방법론이나 대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일정한 연관성은 있고, 그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임즈(Hymes)가 구별한 것과 같은 방식의 분류(Socially Realistic Linguistics, Socially Constituted Linguistics, Social as well as Linguistics)가 아마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지역이나 계층에 따른 변이 연구와 의사소통 민족지학, 그리고 이중(다중)언어 상황 및 언어계획의 문제 등이 그 구체적 주제일 텐데, 여기에는 상호작용 이론에 근거한 대화분석 같은 것이 추가되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너 가지의 분야로 정리한다고 해서 사회언어학의 일관된 연구 방법론이나 대상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의 학문적 배경이나 관점의 상이함이 도드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공통점을 아예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균질적 언어공동체’라는 가상의 실체를 전제하고 있는, 이른바 ‘순수 언어학’에 대한 문제제기. 이것이 바로 모든 사회언어학적 연구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아닐까?

 

3.

비판적 담화분석의 이론가로 잘 알려진 페어클라우프(Fairclough)는 소쉬르의 ‘랑그’라는 개념이 ‘국어(national language)’의 신화가 정점에 달한 20세기 초에 등장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겠는가, 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순수 언어학’은 지역과 계층과 세대와 젠더의 차이에 따른 무수한 변이와 변종을 간단히 무시하고 ‘균질적 언어공동체’를 가정한다. 그리고 그 ‘균질적 언어공동체’라는 이론적 가정은 의도치 않게 근대 ‘국민국가(nation-state)’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소쉬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자연과학적 모델에 입각했던 선배 세대와는 달리 ‘사회’라는 관점을 언어 연구에 도입한 인물이다. 그가 ‘사회적 사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학을 정초한 뒤르켐(Durkheim)의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소쉬르의 ‘사회’를 간단히 ‘민족’ 혹은 ‘국가’와 등치시켰던 그의 후예들에게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와 젠더에 따른 다양한 ‘사회’와 그 수만큼의 다양한 ‘랑그’의 존재를 언어학은 짐짓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가.

사회언어학은 단지 언어학을 보완하거나 보조하는 학문이 아니라, 기존 언어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불온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음운론과 형태론, 통사론과 의미론의 옆에 얌전히 앉아 언어학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언어학의 근본 가정을 의문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사회언어학의 역할이 아닐까.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했던 공동체에 내재한 차이와 이질성의 확인,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랑그’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다양성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는 데에까지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언어학은 ‘순수 언어학’에 대한 비판 정신 못지않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언어 연구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성찰, 그 자체를 사회언어학의 한 분야로 설정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전공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나도 더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

(<사회언어학회소식지>57호. 2021/5/24)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탈출기

책일기 2020. 8. 11. 11:36

서평. 백승주,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탈출기>, 은행나무, 2019.

1.

그는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의 최전선에 있었던 언어교육학자이다.

그리고 기호학과 언어심리학, 혹은 심리언어학에 조예가 깊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특히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지 않은 타자의 입장에서 겪은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학자로서 상하이에서 보낸 1년을 소개한다.

상하이의 뒷골목과 박물관, 백화점을 걷던 그는 느닷없이 신촌의 지하철과 이대역 근처의 자취방, 그리고 제주의 풍광과 역사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오와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국가주의를 되돌아보게 하고, 상하이에 만난 기괴한 건축물을 통해 그의 일가가 겪은 4.3의 비극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2.

그와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휴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강의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우리는, 96년 '연대 사태' 덕에 지어진 건물을 빠져나와 뒷산의 오솔길로 산책을 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별로 기억에 없다.

다만, 선배도 동기도 모두가 떠나고 없던 그 대학원에서, 가끔 만나 술한잔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는 기억은 선명하다.

그의 결혼식에 갔고, 얼마 후 술취한 그를 이끌고 그의 신혼방에까지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난입했고, 그의 딸 이현이의 돌잔치에 (맨정신으로) 갔댔다.

이제 그는 광주에 나는 원주에 있다.

전화로 가끔 안부를 묻는다.

3

그는 언어학자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내 공부는 언어학자들이 벌여놓은 일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언어학이 기본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정치학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물론 실제로는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이상적으로나마 평등하다고 믿게끔하는 여러가지 정치적 이데올로기/제도/장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어학이라고 생각한다. (촘스키)

민족의 구성원은 물론 현실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공유한다고 가정하는 '국어문법'은 그들의 평등성을 가상적으로 입증한다. (주시경/최현배)

나는 내 공부의 의미를 (옳고 그름을 떠나)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공부를 이해한다고 믿고, 심지어 내 공부를 지지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가 그이다.

물론 그 이해와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특히 그가 종종인용하는 진화생물학(에 기반한 심리학)을 우려하는 편이다.

그러나 오랜 동안 그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래 그를 '동지'로 생각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4.

작년 여름에 받은 책을 이제서야 다 읽고 한두마디 적어둔다.

페이스북에서 대략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펼쳐 읽다보니, 새롭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때론 날렵하고, 때론 시니컬한 그의 문장은 매혹적이다.

술자리에서의 그처럼.

원주통신: 제2신

원주통신 2020. 7. 17. 16:58

민주제와 열린사회의 적들을 다시 생각한다

1.
작년 11월 정태춘의 <날자, 오리배> 원주 공연이 있었다. 여름쯤 그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티켓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10월부터는 공연을 관람할 수 없는 어떤 불가피한 일을 만들고만 싶어졌다. 다행히도(?) 어머니가 잡은 김장 날이 공교롭게도 바로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고, 그날 우리 가족은 충주에서 저녁까지 먹고 밤늦게 원주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공연장에서는 정태춘의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 처음은 93년 가을 경희대 농민대회였고, 마지막은 2002년 대선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가을께 연대 노천에서였던 것 같다. 정태춘의 노래를 객석에 앉아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그 공연 며칠 후에 난 원주 기독병원에 7일간 입원을 해야 했다.

알고 보니, 오랜 동안 정태춘은 원주의 부론에 주말이면 내려와 지냈다고 한다. 그런 원주에서의 생활을 바로 작년에 정리했다고 하니, 역시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지만, 왠지 엇갈리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나와 그 사이에. 더군다나 작년 참으로 오랜만에 낸 앨범에는 그가 연남동 근처를 거닐며 만든 노래가 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그곳을 그는 지금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그의 원주 공연을 극구 피했을까. 언젠가는 짤막한 정태춘론을 쓰겠다는 다짐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지만, 2019년의 앨범에서 다시 88년의 <무진 새노래>, 그러니까 <아 대한민국>과, <92년 종로 장마>의 전혀 새로운 정태춘을 불러낸 그 전주곡 같은 것을 새 앨범에서도 발견했다며 흥분한 게 지난해 봄이 아니던가.


 바람아 너는 어딨니 / 내 연을 날려줘 / 저 들가에  저 들가에 눈 내리기 전에 / 그 외딴 집 굴뚝 위로 / 흰 연기 오르니 /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 그 아이네 집 하늘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 내 연을 날려줘 / 저 먼 산에 저 먼산에 달 떠오르기 전에 / 아이는 자전거 타고 / 산 쪽으로 가는데 /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 저 어스름 동산으로 (정태춘, <들 가운데서> 중)

 
물론 새 앨범은 다시 2집, 3집, 5집으로 되돌아간 것이긴 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를 겪은 그의 음악은 그저 과거의 음악으로 되돌아갈 수만은 없다. 어린 시절, <북한강에서>를 엘피로 사서 전축에다 얹어 놓고 목소리 높여 따라 부르던 때는 알 수 없었던 <들 가운데서>가 이제사 내 귀에 들어오는 것처럼.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2.
올 4월 15일. 웨딩홀 마당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줄을 서서 투표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내내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이미 원내의 이른바 진보정당은 나의 선택지 밖에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조국 사태'에서의 실망감이 컸기 때문.

결국 기표소에 들어갈 때까지도 두 당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김종철과 홍세화를 떠올리고는 어렵사리 한 곳에 투표할 수 있었다. 나중에 결과를 보니, 두 당의 득표율은 0.12%와 0.21%.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가 전 국민의 0.33%, 무려 10만에 육박한는 사실에 아주 잠시 뿌듯했고 곧 씁쓸했다.

지난 해 가을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이 죽창가 등을 언급하며 반일의 선봉에 섰을 때만 해도 그저 총선을 친일 반일의 프레임으로 치른다더니 과연 그렇군, 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여기에 세련된 논객들이 하나둘 조국을 응원하고 나설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급기야 그 조국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어 벌어진 혼란 속에서, 그 역시 기득권에 안착한 입바른 386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서글펐고, 내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이들이 온갖 논리로 조국을 옹호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최서원과 박근혜에게 했던 대로 똑같은 '짓'을 하던 윤석열과 손석희가 공적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었고,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최서원과 박근혜에 대해 판단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재판도 하기 전에 탄핵당했다는 저 태극기 부대의 억울함에 대해서도.

 그리하여 민주제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민회에서의 활동을 거부한, 소크라테스를 다시 생각했다. 당대의 귀족파와 민주파의 갈등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고, 의회와 재판정에서의 논리 싸움과 '민주적' 투표는 삶과 죽음을 갈랐다. 지금의 진영 논리는 인류사의 찬란한 자랑인 저 그리스 민주주의가 원조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 귀족파와 민주파의 갈등 사이에서 소크라테스 역시 죽임을 당했다. 그는 물론 귀족파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민주파도 아니었다. 당시 그리스의 대외 관계에서 귀족파는 오히려 스파르타와의 협상을 원하는 쪽이었고, 호전적인 것은 민주파였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역시 민주파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나는 호전적 민주파를 오늘 이 땅에서 다시 본다.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그들 앞에서 그저 입을 다물 뿐이다. 말 그대로 대화가 불가능하다.  의회에서의 공적 활동은 그리스인에게 특권이자 의무였지만, 소크라테스는 의회에서의 활동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공적 활동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연설의 방식으로 데마고그들이 장악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변증술이라는 전혀 다른 대화의 방식으로 공적 활동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설과 민주주의가 장악한 의회가 아니라 변증술/대화가 가능한 광장에서였다. 소크라테스의 고민을 오늘 다시 되살리고자 하는 이유이다.

 3.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상대에게 길게 말하지 말고 짧은 대화로 논의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반복한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경우가 후기 텍스트로 갈수록 많아지지만,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서로 주고받는 대화로 구성된다. 결론이 난 건지 아닌지도 애매한 마무리 역시 많다.

소크라테스의 목적은 단 하나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전제가 실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특정한 목표를 향해 상대를 설득해 나가거나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게 하려는 의도는 애초부터 소크라테스에게 없었다. 당신이 그토록 신념해 마지않는 것이 사실은 헛된 망상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라. 상대와의 대화는 비로소 그때 가능해질 터.

플라톤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피스트와 수사학에 대단히 적대적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적대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의회의 연설을 통한 '민주적' 방식으로 스승 소크라테스는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다수에 의해 지배되는 민주주의도, 다수에 의한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장치인 의회와 재판정에서의 연설, 그리고 그 연설 방법을 가르치는 교과(수사학)와 선생(소피스트)이 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스승은 바로 소피스트라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선생을 소피스트라는 누명에서 구출하고 소피스트를 거짓을 파는 사기꾼으로 매도하는 일이 사실은 하나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는 소피스트와 철학자를 대비한다. 그리고 감각적인 적인 것과 진리, 이데아를 대비한다. 이 이분법이 물론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이분법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닐까?

 가라타니 고진은 소크라테스가 비록 무의식적인 형태이긴 했지만,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실현해 보고자 했다고 해석한다. 즉 공과 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에 기초한 아테네의 민주정이 다수에 의한 지배라면, 자연철학을 가능하게 했던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는 그러한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 무지배의 상태였다는 것.

플라톤이 민주정/수사학을 거부하고 철인왕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를 꿈꾸며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다면, 정작 소크라테스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민주정/수사학을 전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진영 논리에 짓눌린 한국의 '민주주의'에 회의하며 오늘 소크라테스를 생각한다.

 4.
아뿔싸! 기표소에 들어선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당 투표에만 골몰해 왔었지, 지역구 후보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 생경한 이름들이 나열된 투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기표를 포기하고 투표용지를 그냥 반으로 접었다. 투표용지 맨 윗줄에는 왕년에 어떤 분의 오른팔이었다든가 왼팔이었다든가 하는 이의 이름이 있었건만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당선만 되면 단숨에 대권후보의 반열에 오르리라던 그는 영 무소식이다.

원주에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처음 나온 것은 아마도 이창복 전국연합 의장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무려 갑, 을 두개의 선거구이고 두 곳 모두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시장 역시 민주당 출신. 원주는 이제 지학순, 장일순 시절의 야성을 회복한 것인가? 그러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그리고 남원주역 개발과 부동산 시세의 상관관계를 들뜬 마음으로 따져 보는 원주는 작은 서울일 뿐이고 아직 '환멸의 90년대'에 머물러 있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 /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 국산 자동차들이 앞 뒤로 꼬리를 물고 /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 이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정태춘, <건너간다> 중)


 5.
누군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문체/글쓰기와 함께 온다고 했다. 새로운 문체는 새로운 수사학이 그 배경이 될 터. 칼 포퍼는 플라톤을 열린사회의 적이라고 몰아 부치며 그가 표음문자로 인해 비롯된 탈부족사회에 극구 저항한 이라고 했다. 그러나 패권주의와 식민주의에 기반한 그리스의 민주정 역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아니다. 어쩌면 그 민주정은 이미 여기에 충분히 실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예와 식민지의 피눈물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던 민주주의.

 플라톤의 <국가>는 민주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살해한 그리스의 정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게 나라인가?’ 라고. 그러나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철인왕'이라는 아이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위당, 민주집중제, 수령의 개념과 유사하다. 칼 포퍼가 현대사회의 열린사회의 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을 지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플라톤의 대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도대체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소피스트와 그들의 수사학/연설과는 다른 길을 찾고자 했던 플라톤의 문제의식은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보다는 소피스트에 더 가까웠다. 그는 희극의 풍자 대상이 될 정도로 당대에 유명 인사였고 대중들은 그를 소피스트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물론 소피스트들과는 사뭇 달랐다. 소피스트는 의회에서 대중을 선동/설득할 연설 기법을 가르쳤으나, 그는 의회에서의 활동 자체를 거부했다.

플라톤이 보여주지 않은 소크라테스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힌트는 새로운 수사학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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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과 고립, 그리고 40일

삶읽기 2020. 3. 27. 12:13

검역, 격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quarantine이 있다. 
40을 뜻하는 quarante(불어), quaranta(이탈리아어)에서 온 말이다.
중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전염병 전파를 우려해 입항한 선박에서 40일간 선원의 하선을 금지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루즈선에서의 하선을 금지했던 일본 정부는 아마 저 중세의 전염병 대책을 본땄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문뜩 지금 우리 모두는 간절히 땅을 밟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갇혀있는 그런 신세가 아닌가 생각했다.
'31번 환자'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달 20일 전후였으니, 그리고 나서 심각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고 자발적/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 모두를 규율하기 시작했으니, 각자의 배 안에 갇힌 지 한달쯤 된 것 같다.
연기된 개학일 4월 6일은 '신천지'로 온 언론이 도배된 시점으로부터  40일쯤 되는 날이지 않을까.

40일이 지난다고 이 배에서 내리는 것이 허락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학교도 학원도 교회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고립된 아이들에게 개통해 준 핸드폰 덕에 처음으로 가족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예정대로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배우고 있었을 둘째는 아직 한글을 못깨쳤고 글도 모르며 단톡방에서 맹활약중이다.
컴퓨터 화면과 마이크를 상대로 한 독백의 강의는 벌써 3주차 녹화/녹음을 마쳤다.

노아의 방주를 타고 살아남은 이들은 비둘기를 통해 바깥이 안전한 줄을 알고 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고립된 배에서 내리겠지.
그러나 이 고립을 견디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향해 반갑게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붙잡고, 얼싸안을 수 있을까?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환대할 수 있을까?
아마 중세의 저 40일을 견단 이들은 분명 그랬으리라. 
우리의 고립이 우울한 것은 지금의 고립감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가 더 무섭기 때문은 아닐까.

녹색당/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관련 결정에 부쳐

삶읽기 2020. 3. 16. 12:15

녹색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정의당의 선겨연합정당 불참 결정을 듣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원 투표 끝에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하여 유시민+이정희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한 투표.
누군가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투표.
선거연합정당의 명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지하는 이에게 투표하고 싶다.
심지어 선거연합정당은 사실상 촛불을 앞세워 집권한 이들이 주도하고 있고, 그들은 견재 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주요한 정치세력이지 않은가? 이명박-박근혜가 다시 돌아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이 이상한 정당, 가설정당의 정당성은 충족되는 것인가?

그러나 아,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여전히 강고하다.
아니,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비판적 지지, 이명박근혜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녹색당이 원내정당이 된다면? 이 정부의 실책을 가리는 역할을 할 민주연합론에 가담하여 녹색당이 의회에 진입하게 된다면?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녹색당까지 저들의 전리품이나 악세사리가 될 것인가?

정세에 따라서는 전선을 긋고 거기에 제 세력이 결합하는 운동은 물론 가능하다.
그런데 전선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정부, 집권여당이 있는 그런 정세는 배우지 못했다.
단순한 정부여당이 아니라 거기에는 재벌과 자본이 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박근혜와도 거래했지만, 문재인과도 한배를 탔다.
지배블록 내의 지분 싸움에 진보정당이 개입하며 오히려 전선을 완전히 착각하게 하고, 그리하여 결국 지배블록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게 하는 형국 아닌가?
이 정권은 검찰과의 요란한 내전을 치루는 것으로 개혁 의지를 뽐냈지만, 그런 힘의 반에 반도 재벌 개혁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선은 다시 그어져야 한다.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은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 정당의 하위 종속변수로 자신을 위치 지우면서 생존해 왔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그 진보정당의 운동이 오늘 파국에 처했음을 본다.
지배블록의 한 편에 섰을 때에만이 생존이 가능한 진보정당이란, 더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깨고 나간 이래, 거의 한번도 심상정(과 노회찬)을 응원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정의당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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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통신: 제1신

원주통신 2019. 11. 26. 12:22

원주세브란스에서의 일주일

 

1.

지난주 금요일(11/15).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대학 동기들과 잠깐 만났다. 대학 때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놈들인데 이제 서울서 창원서 원주서 제각각이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모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토요일(11/16)에는 김장을 하러 어머니가 계시는 충주엘 갔다. 이모와 이모부님이 벌써 영동에서 와 계셨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제 일을 찾아서 모두 분주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일요일 하루 종일 쉬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에 살펴보니 오른쪽 고환이 꽤 붓고 딱딱해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방광염 때문에 몇차례 다녔던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비뇨기과를 찾았다. 의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방광염이 다른 곳으로 옮아서 염증이 생겼을 수 있다며 항생제, 소염 진통제를 처방하고 5일 후에 보자고 했다. 그러나 화요일 아침에는 상태가 더욱 심해져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짜증을 내며 2, 3일 정도는 지나야 나아진다고 했다. 내가 차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하자 그럼 큰 병원으로 가야지 뭐.” 하며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진료의뢰서를 떼주며 나를 내보냈다.

원주세브란스는 지난 여름 건강검진을 하고 처음이었다. 업무과에서 접수를 했더니 오후 4시 10분에 오란다. 학교에 들어와서 요즘 읽던 최남선의 <살만교차기>를 얼마간 읽고 요약했다. 수업준비를 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확인했다. 점심으로 싸온 고구마와 김치를 먹고 수업에 들어갔다. 몸이 몹시 좋지 않았는지, 두 시간 수업이 끝나고 아주 녹초가 됐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3시 40분. 5시가 될 때까지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거의 맨 마지막으로 만난 비뇨기과 담당 의사는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고민을 한 끝에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4시경에 와서 입원을 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엘 들어가는데 그 전부터 묵직한 게 미심쩍었던 배가 말썽을 일으켰다.

엄청난 복통이었다. 약을 간신히 타서 택시를 탔지만, 택시에서 거의 데굴데굴 구르는 수준으로 몸음 가눌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 안방에 누웠는데 산통 하는 여인처럼 연신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지켜보던 아내는 당장 응급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애들은 알고 지내던 집에 맡기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응급실로 가는 길 내내 뒤로 젖힌 의자에서 복통으로 찢어지는 듯한 배를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했다. 응급실을 거쳐 52병동에 입원했다. 역시 복통으로 잠을 자지 못했고 진통제를 맞아도 누워있기가 힘들어 병동 복도를 밤새 배회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간호실에 가서 진통제를 더 놔달라고 했지만, 두 번에 한 번은 ‘아직 시간이 안 됐어요. 한두 시간 더 있다 오세요.’ 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결국 금요일(11/21) 오전. 의사로부터 들은 진단명은 부고환염과 장염. 부고환염은 고환 뒤쪽의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통증이 극심하고 치료 기간도 최대 4주까지 간다고 한다. 게다가 장염이 심하게 와서 장폐색 수준이고 CT 촬영 결과 대장이 부어있다는 것. 심한 복통도 이 때문이었다. 담당 의사말로는 장염이 먼저였을 것이라는데 순서가 무엇이 중요하랴. 직접적인 원인은 단지 불을 붙인 부싯돌 같은 것일 뿐, 불이 붙을 환경을 조성한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금요일 저녁. 병원에 입원한 화요일 저녁부터 아홉 끼를 거르고 열 끼 만에 금식이 해제되어 죽을 먹는 순간을 그야말로 감개무량. 생각만큼 먹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흰죽이 그렇게 맛있는 줄음 미처 몰랐다.

 2.

이 병원은 강원도 전역, 제천 단양 충주 같은 충북 북부, 영주를 비롯한 경북 북부권 방언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금요일 오후까지 있던 병실은 주로 대장암 등 소화기 계통의 수술 환자들이 있던 8인실이었는데, 아주 친근한 고향 사투리를 밤낮 들을 수 있었고(충주에서 들을 때는 제천 말이 강원도 말처럼 들렸는데 강원도에서 들으니 제천 말은 영락없는 내 고향 말이었다), 아직은 귀에 선 강원도 영동 사투리도 물론 들렸다. 강원도의 병실에서도 익숙한 경북 말은 서울에서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충남이나 호남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아픈 배를 부여잡고 누워 있는 동안에도 다채로운 말의 향연에 귀가 쫑끗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든 노인과 젊은 여성 간호사 간의 듣기에도 아슬아슬한 반말 대화며(반말은 대체로 노인이 먼저 시작하고 이에 대응하는 간호사는 대체로 ‘하셔’ 꼴의 명령형을 사용해 소변량을 체크하라는 둥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이것저것 시키고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노부부의 싸우는 것인지 상의하는 것인지 모를 긴장감 넘치는 대화에서(할아버지는 혼내는 것 같은데, 그걸 받는 할머니는 전혀 혼나는 것이 아닌 태연자약하고 여유로운 말투다), 그리고 다 큰 고등학생 아들과 그 엄마, 그리고 누나 삼자의 <82년생 김지영> 감상평 토론회 같은 지역은 도저히 알 수 없고(분명 서울말과 구별되지 않았다. 서울말로는 화자의 지역을 알 수 없다.) 연령대와 세계관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대화까지, 그리고 간병인 ‘여사님’과 70대 후반의 남성 노인 간에 벌어지는 어색한 첫인사와 바로 이루어지는 깊숙한 생활상의 필수적 대화까지. 게다가 단정한 표정에 감추어진 간호사들의 엄격한 위계가 드러나는 정담까지. 8인실 병동에서의 말의 향연은 어지간한 진통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3. 

박경리 선생은 3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여 내려온 원주에서 원주통신이라는 글을 썼다. 나는 25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올해 초 느닷없이 원주로 내려오는 바람에 고향에서보다 오래 산 서울, 신촌 생활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 스무 살 이후의 나의 삶은 늘 오리무중의 안개 속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몇 가지 방향이나 경향성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믿겨지지 않지만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중년의 나이. 그간의 내 삶, 생활, 습속을 한번쯤 점검해 봐야 할 때가 온 것도 같는 생각을 원주 기독교 병원의 침상에 누워서 하게 되었다.

푸코를 엉터리라도 읽은 이상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병원이 역시 ‘정상인’ 혹은 ‘일반인’을 만든다는 점에서 학교, 교도소와 사회적으로는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물론 의사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 염증 수치에 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 이후의 삶, 서울 생활 25년에 그대로 포개지는 이 시절의 삶을 줄곧 생각했다. 특히 섭생의 문제에 대해 돌아봤다. 스트레스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푼 것은 아닌지, 결국 그래서 몸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지.

푸코는 권력의 특성이 ‘억압’이 아니라 ‘양생’이라고 했다. 욕망을 일정한 배치 안에 가두고 일정한 흐름으로 규격화한다는 것. 그러나 이 권력에 균열을 내는 것 역시 삶의 의지, 욕망. 물론 이는 삶 자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좋은 삶’ 혹은 ‘윤리적인 삶’에 대한 성찰에 기반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일 터. 마침 늘 나에게 계발적 관점을 주는 작가 김태권의 신작 <먹히는 것들에 대한 예의>라는 책을 소개 받는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육식 문화사라고 한다.

이제 일요일(11/24) 아침. 아마 내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리라. 하지만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4주간 금주(禁酒)>라는 듣도 보도 못했고 스무 살 이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형별. 그러나 퇴원하는 월요일이면 이미 지난주 화요일부터 6박 7일의 절식 및 금주 훈련을 마친 상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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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구분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동안,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운 좋게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혹독한 여름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겠지.
(201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