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야간산행(2004.9.17)

산행기 2004. 9. 22. 17:12

백운대에서바라본 서울의야경(http://gallery.naver.com/read.php?did=28&bid=1&imgid=690)

집근처의 안산에 몇번 오른 것 말고는 밤 산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북한산 야간산행이 하 좋다길래 벌써부터 맘을 먹고 있었지만, 실행이 여의치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불켠듯 생각이 나 퇴근후 볼 것도 없이 구기동으로 향했다.
다음날이 놀토가 아닌관계로 비봉매표소-비봉-사모바위-청수동암문-대남문의 짧은 코스를 예정하고 8시반, 매표소 근처의 화장실에서 나의 흔적을 남긴 채 밤북한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봉 능선 전까지는 랜턴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앞이 잘 보였다.
역시 서울의 밤은 밝았다. 함성이라도 지르는 듯 대단한 서울의 불빛을 뒤로 하고 능선에 오르니, 아풀싸! 불광동쪽에서 안개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미 능선은 점령당한 상태였고 벌써 구기동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최승호 시인의 말마따나 마치 '계엄군' 같았다.)
순식간에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안개가 서울의 대단한 불빛을 숨죽여 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안개 자체가 앞을 가리고 있었다. 랜턴을 켜도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발'에 익은 길이었기에 망정이지, 한걸음한걸음 걷는 게 고역이었다.

걷는듯, 기는듯 능선을 탔다. 사모바위 부근에서 잠시 앉아 보았으나 바닥이 젖기도 했으려니와 우선 겁이나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엉긍엉금 문수봉 우회길로 접어 들었다. 여기서 암문까지만 오르면 그래도 길이 좀 나아지리라.
그러나 마음만 급해 제대로 길을 찾지 목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고마운 아저씨 두분을 만나 간신히 암문, 그리고 대남문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김밤 두줄에 맥주, 그리고 포도랑 배 반쪽까지 싸왔지만,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남문에서 내려다본 아랫길도 아득했다. 말 그대로 앞길이 캄캄, 암담했다.
사모바위 근처부터 내린 비는 조금 긋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분나쁘게 부슬거리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10시 50분.

대남문까지 같이 온 아저씨들과 함께 한 하산길에 한차례 넘어져 오른 팔과 왼 다리를 갈았다.
머리에 달았던 랜턴을 손에 옮겨쥐고 아랫녘을 밝히자 좀 걷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아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진정한 공포만을 가지고 1시간을 엉금엉금 걸었다.

앞에가던 두 양반과는 거의 다 내려와서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서 끝내 마지막 인사는 못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아마 그양반들이 없었으면, 더 힘들었으리라. 몇마디라도 나눈 이야기가 그렇게 힘이 될 줄이야.

하산 완료시간 12시 30분. 예상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
집에 오는 길에 또 맥주를 샀으나(가지고 간 것이미지근해져서), 몸이 약간 차가워진 게따뜻한 걸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라면을 끌였고 소주 반병을 맑은 글라스에 따랐다.


손전등을 사가지고 수일 내에 다시 밤북한에 오르리....
불은 면발을 후후 불며, 코를 훌쩍거리며 다짐했다.

소주가 넘어가자 속은 훈훈해졌고, 다짐은 (아주 조금)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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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막날 북한산엘 오르다

산행기 2004. 9. 6. 16:12

휴가 막날 북한산엘 오르다

휴가가 다 끝나 간다는 아쉬움에, 몸상태가 안 좋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어이 어제 아침 북한산엘 올랐다.
혼자 갈 때 의례 그렇듯이 이북5도청 쪽에서 비봉 능선(대남문 방향)을 탔다.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쉬지 않으려 했으나 중간에 포즈를 취해 주는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나 사진을 찍느라,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다. 사모바위에서 잠시 앉아 오이 반쪽을 오물거리고는 이내 대남문쪽으로 향했다.

안전사고 다발 지역. 매우 위험하니 우회하시오...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처음으로 호기롭게도 문수봉 코스를 잡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아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는 때가 분명히 있다. 다른 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쉬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같은데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좁기는 했으나 평범한 경사길이었다. 콧노래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위를 이리 저리 더듬어 보아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발을 잘 못 놓기라도 하면, 세칫말로 '골'로 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저씨 둘에 이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스치듯 오르고, 또다른 이저씨 두 분이 성큼성큼 내려 온다.

난 그들이 오르내린 중간쯤에 퍼져 앉았다. 맥주를 마시며 일산이며 인천이며, 또 서울 시내를 바라 본다. 전망은 좋으나 꿀꿀하다. 내려갈 엄두도 안 나고, 그렇다고 오르지는 더더욱 못 할 때, 할 수 있는 건 땅바닥에 또르르 굴러내린 김밥 몇덩이를 흔들어 보는 일.


죄없는 맥주캔만 밟아 우그러뜨리고는 엉금엉금 내려와 청수동 암문, 예의 그 길로 힘겹게 오른다. 한 시간을 헤맸더니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길이 거의 절망스러울 정도로 지루하다. 대남문 앞(뒤라고 해야 할까? 안쪽이라는 말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의 폐쇄된, 아니 식수부적합 판정의 샘 옆에 벌렁 자빠졌을 땐 이미 싸가지고 간 먹을 거리라고는 포도 한송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여차하면 백운대까지 내달려 보려 했으나, 맘 같이 되는 일이 없다.안개가 자뜩 찌어 1미터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2002년 초겨울의 비봉 언저리와 그 즈음의 내 인생이 생각났다. 구기동 매표소쪽으로 내려오는 내내.


휴가가 다 끝나 간다는 아쉬움에, 몸상태가 안 좋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어이 그날 저녁 어머니와 통닭을 튀겨 난지천 공원엘 다녀왔다. (올해 여름 휴가는 8월 27일부터 9월 2일까지였고, 북한산과 난지천 공원에서 서성인 건 9월2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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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에 오르다

산행기 2004. 9. 6. 16:04


청계산을 올랐다.
호섭, 정상, 주동, 정환과 함께. 경석이는 늦잠을 자서 오지 못했다. 병일이도 온다고 했었는데 연락이 안됐다. 양재동에서 만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78-1번 버스를 타고 옛골에서 내렸다. 원래 원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종점인 옛골까지 갔다. 원터에선 등산객들도 거의 내리지 않아 초행길인 우리는 눈치를 살피다 내리지 못했다.

산행을 시작한건 한 10시 20분 쯤,
한 이십분쯤 평탄한 길을 걷다 보니 가파른 경사가 한 삼십분 계속되었다. 중간에 한번 쉬어 땀을 닦았다. 며칠 전에 북한산에 오를 때처럼 땀이 많이 났다. 그 비탈을 오르고 나니, 그 후로는 평이한 길이었다. 그렇게 한 20분 걷다 보니 이수봉 정상이었다. 518미터였다. 그즈음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재촉했다. 사실 아래 산행 지도에서 봤을 때는 그 이수봉에서 6백 몇미터의 또다른 봉우리로 다시 올라가는 코스를 점찍었는데 길을 걷다보니 이미 우리는 청계사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시야가 확 트인 곳이 나왔다. 과천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그 한참 멀리로는 관악산이 보였다. 10월 관악에 올라 이쪽을 바라봤었는데 이제는 반대쪽에서 관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옆으로 펼쳐진 겨울 산수가 일품이었다. 발 아래로는 절벽처럼 경사가 급했고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말고는 좌우로 큰산이 없어 눈이 그리고 가슴이 시원했다.


저기가 정부청사다, 여기가 놀이공원이다, 경마장이다 저마다 한 두마디씩 거들었다. 저 앞의 관악산에서 했던 이야기들이랑 매한가지다. 다른 방향에서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10월의 산과 12월의 산은 제법 달랐다. 12월의 산은 갈색의 가지 사이로 흙을,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흙은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색과 감촉 모두. 그 흙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인 나뭇가지들은 좀더 진한 색이었다. 푸르름을 속으로 감춘 그런 진함.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 급했다. 고비를 넘는가 싶더니 다시 배가 아팠다. 사람들만 적었어도 나는 아마 그 부드러운 흙에 나의 척척함을 보탰을 거다. 청계사 방향은,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인지, 길이 좋지 않았다.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 같지가 않았다. 중간 이후로는 거의 뛰어 내려오다시피 했다.

청계사에 도착해서는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담배를 빌려 물었는데 젊고 건장한 스님이 담배를 꺼달라고 하셔서 황급히 흙에 부볐다. 장초를. 호섭이의 제안으로 절밥을 얻어먹었다. 후배들이 내가 먹은 그릇을 씻어 주었다. 어찌보면 제가 먹은 밥주발은 제가 씻으라는 불문의 가르침을 사뭇 거스르는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별로 찔리지 않았다. 내 내면에도 역시나 위계와 서열의 파씨즘, (이 말은 좀 부담스러우니 유사-파씨즘으로 해두자)이 내재해 있는가 보다.

내려오며 핸드폰의 벨소리를 내려 받느라고 떠들썩했다. 이규찬의 감기, 별의 12월 32일 등등의 노래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

한참 내려오다 의왕으로 가는 요금 500원의 정체 모를 버스를 탔다.. 의왕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양재동으로 왔다. 야구 연습장이 있어 방망이를 휘둘러 보았다. 역시 빗맞은 공이 반, 안 맞은 공이 4분의 1이었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다음 산행 일정을 잠시 얘기했다.

산행모임은 여기까지. 조금 엉성하기도 했고, 지난 두 번의 벼리 산행에 비하면 조금은 덜 흥겨웠던 산행이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2002. 12. 8.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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