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상과 이름에 얽힌 추억, 말글과 나(1)

말, 중얼거리기 2005. 3. 8. 10:29

1.
나는 돌상에서 붓을 집어 들었다. 붓을 든 오른손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는 만 한 살의 내 모습은 그야말로 우습다. 지가 붓이 뭔지나 알고 저러나 싶다. 분명 누군가가 아마 아버지나 어머니이었겠지만, 붓이나 공책을 제일 가까운 곳에 두었을 게다. 아니 아예 손에 쥐어 주었을 수도 있다. 물론 어머니는 여적 내가 붓을 덥석 집어 들었다고 흐뭇해하시지만. 하지만 내 이름 석자를 생각해 보면 돌상에서 붓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인위적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2.
내 돌림자는 병(炳)이다. 불화 변이다. 아버지는 식(植)자로 나무목 변을, 할아버지는 홍(洪)자로 물수 변을, 증조할아버지는 흠(欽)자로 쇠금 변을 쓰셨다. 내 아래 항렬은 배(培)자로 흙토 변을 써야 한다. 어느 집안의 돌림자나 마찬가지겠지만,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따르고 있다. 성이 집안을, 돌림자가 항렬을 뜻한다면 나머지 한 자가 이름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일 터인데, 나는 나머지 한 자마저 사촌과 그 의미를 나누어가졌다.

한학을 하셨다는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문무주공’이라는 네 자를 ‘내려’ 주셨고, 이는 아들을 넷을 낳아 돌림자 옆에 하나씩 붙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허나 두 남매만을 두셨고 결국 나는 이 네 자를 사촌들이랑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글월을 밝게 빛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돌상에서 붓을 들고 흔들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터.

3.
그러나 허망하게도, 혹은 부모님의 그런 기대와 바람이 무색하게시리 나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글을 일년 정도는 늦게 깨쳤다. 국가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 첫 단계,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는 대개 한글을 떼기 마련이지만, 나는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꽉꽉 언 학교 운동장에 섰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플라타너스의 우왁스런 매미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도 글이라는 것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보는 받아쓰기 시험은 두세 개라도 맞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얼마 전 유치원도 아닌 어린이집을 졸업한(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이전에도 몇 년씩 양질!의 사교육을 받는단다) 고종사촌 동생이 천자문을 줄줄 읽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다(심술궂게도 몇 구절의 뜻을 물어 보았으나 역시 그건 무리였다. 그러나 옥이 여수에서 나고 금이 곤강에서 난다는, 또 복희와 신농에 얽힌 중국 설화나 신화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무에 필요할꼬).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도, 산수도, 게다가 한자가 이제는 기본인 게다.


가끔 내가 글자를 배울 때를 매우 재밌어하며 회상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다른 애들은 글자를 다 아는데 나만 모른다며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세계에서 자기만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은 어린 마음에도 조급증을 불러일으켰을 게다. 지금도 뭔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곤 하지만, 그때도 부모님탓을 했다고 한다. 나를 안 가르쳐서 그렇다고 말이다. 그러나 중등학교에서 국어과로 교편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그냥 자식을 마냥 방치했을 리 만무다.

당시로는 최신식 시각자료를 동원했으니, 카세트테이프가 구비된 세계명작동화집이 그것이었다. 지금도 <요셉우화>,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 <소공자> 등등을 읽어 주던 성우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저도 모르게 (물론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그냥 글을 깨쳤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배운 두 살 터울의 동생도(거의 나와 동시에) 한글을 줄줄 읽게 되었고. 하지만 그때 공정상의 몇 부분을 빼먹고 글자 수업을 마쳤는지, 나는 그 후로도 아주 오랜 동안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를 예사로 했다. 물론 그건 지금도 그렇다. 국문과를 나와 출판사에서 남의 글에 빨간 볼펜으로 볼썽사나운 흔적을 남기는 지금도 말이다.

한글날 아침에...딸기와 깍두기, 그리고 한글과 우리말

말, 중얼거리기 2004. 10. 9. 09:30

한 육칠 년 전에 삐삐밴드라는, 요즘 말로 엽기적인 밴드가 있었습니다. 여성 보컬의 독특한 창법과 기발한 가사가 한동안 장안의 화제였지요. 그 밴드의 1집 앨범 '문화혁명'(!) 중에는 '딸기가 좋아 딸기가 좋아. 좋아좋아 좋아좋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그 '딸기'라는 노래만 들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 가지 떠오르곤 합니다.


저희 집이 충북 제원군(현재는 제천시) 백운면에서 충주라는 실로 엄청난 대도시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니까 여섯 살 전후의 일인가 봅니다. 초여름의 햇볕이 빼뚜름히 내리 쬐는 어느 날 오후, 저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공설시장에 장을 보러 갔었습니다. 제가 살던 백운에서는 구경도 못했던 신기한 것들에 눈이 휘둥그레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저는 어느 과일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 본 과일 하나가 제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빠알갛게 올망졸망한 것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그렇게 먹음직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저는 어머니께 이렇게 졸랐습니다.


"어엄마 나두 저, 깍두기 사줘-. 까악두기 사달란 말이야- "


물론 눈치 채셨겠지만 그 '깍두기'는 다름 아닌 딸기였습니다. 처음 보는 딸기가 먹고는 싶은데 그걸 뭐라고 부를 수가 없으니 제 딴에는 제일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이 깍두기가 생각났던 것이지요. 물론 그때 제가 그 '깍두기'를 얻어 먹었는지 입맛만 다셨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참 후에야 그 '깍두기'를 사람들은 딸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딸기와 깍두기를 구별하지 못한 저의 경우는 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쓰면서 우리는 구분해야 할 단어들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그 단어가 의미하는 대상이나 개념을 혼동하는 결과가 될 텐데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달 9일은 한글날입니다. 일년 내내 별 고민도, 준비도 없다가 한글날만 되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합니다. '이번 한글날은 어째 제대로 된 행사 하나 없냐. 이래서 되겠냐' 하고 말입니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고 근엄하게.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자세히 듣다 보면 '한글'과 '우리말(한국어)'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글날의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인 '국어를 순화하자, 외래어를 쓰지 말고 고유어를 살려 쓰자, 한글은 우수한 글자인데 왜 외래어를 섞어 쓰냐', 이런 따위의 말들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국어, 고유어는 당연히 '말'을 뜻하지만, 한글은 그 말을 적는 '글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과 글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인데 이들을 섞어 사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야! 잘 못 알아 듣겠으니까 한글로 좀 이야기해!'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여 쓴 경우입니다. 영어와 대(對)를 이루는 것은 한글이 아니라 우리말(한국어, 국어)입니다. 한글과 대(對)를 이루는 것은 물론 알파벳일 테고요.


또 우리말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세종대왕을 들먹거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는 예입니다. 당연히 우리말은 한글(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 지역에서 사용되던 '말'이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그 말에 맞게 글자를 지어냈던 것이니까요.


어떤 언어를 제대로 사용한다는 것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거기에는 단어 하나하나의 용법과 그 개념들을 적절하고도 분명하게 구분하여 쓰는 것도 포함됩니다. 딸기와 깍두기를 구분하지 못한 촌놈의 경험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 직장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맞춤법에 대한 이해 2. 세목 1) 용법에 따른 구별

말, 중얼거리기 2004. 9. 6. 17:09

2. 맞춤법에 대한 이해

1) 용법에 따라 구별해서 표기해야 하는 것

여기에서 설명되는 것은 그 자체로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어디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옳은 것이 될 수도 있는 표기들이다.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 구조 등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올바른 표기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되/돼>

‘돼’는 ‘되어’의 준말. 따라서 어미 ‘-어’가 어간 ‘되-’에 연결되어야 할 곳에서는 ‘돼’로,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되’로 써야 한다.
그런데 이 둘의 발음을 구별하기가 어렵고, 또 ‘돼’가 ‘되어’로 되돌아가기 어색할 정도로 굳어진 것들이 많아서 제대로 쓰기가 쉽지는 않다. 이럴 때는 다른 용언으로 대치시켜 보면 (‘하다’가 제일 적당한 듯) ‘-어’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곧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번역이 잘) ‘돼?’인지 ‘되?’인지 잘 모르겠으면, 다른 동사가 의문형일 때 ‘-어’를 필요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된다. 즉 ‘하?’ 하지 않고 ‘해(하+어)?’ 하기 때문에 당연히 ‘번역 잘 되?’가 아니라 ‘번역 잘 되어(돼)?’가 된다.
단, ’눈은 오되, 바람은 불지 않는다’의 ‘-되’는 연결어미로 위의 동사 ‘되다’와는 당연히 다른 것이며, 항상 ‘-되’로만 쓰인다.

# 너 자꾸 먹으면 안 돼! 살찐단 말이야. (cf. 나 오늘 일 안 해!)
# 일이 되고 안 되고는 돈에 달려 있다. (cf. 하고 안 하고)


<안/않>

‘않-’은 ‘아니(안) 하-’의 준말이다. 용언 ‘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뒤에 다른 용언, 즉 동사나 형용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안’은 ‘아니’가 줄어든 부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뒤에 용언이 와야 한다.
형태적으로 보면 ‘안 + 용언’, ‘용언어간-지 + 않다’의 형태가 된다. 내용적으로는 ‘안’은 뒤의 용언을, ‘않-’은 앞의 용언을 부정하는 역할을 한다.

# 어머! 이러시면 안 돼요.
# 죽지 않을 만큼만 맞아봐라.


<있다가/이따가>

‘이따가’는 ‘조금 뒤에’의 뜻인 부사이고 ‘있다가’는 용언 ‘있다’의 활용이다. 따라서 ‘이따가’는 서술어를 수식해 주고, ‘있다가’는 주어나 부사어를 이끄는 서술어가 된다.

# 이따가 먹어라.
# 너 어제 집에 있다가 내 수첩 뒤져봤지?


<던/든>

‘-던’은 과거시제 선어말어미 ‘-더-’가 들어 있다. 따라서 ‘-던’은 기본적으로 과거 회상의 뜻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든’은 ‘이거든, 저거든’의 선택의 뜻을 나타낸다.

# 그 인간 어찌나 색을 밝히던지….
# 니가 먹든지 말든지 나는 관계치 않겠다.


<데/대 (종결어미)>

‘-데’는 본인이 경험한 것을 회상하는 ‘-더라’로 바꿔쓸 수 있고, ‘-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다고 해’가 줄어든 말이다.

# 그날 보니까 당신네 회사도 실적이 꽤 좋데. (좋더라)
# 진수가 올 가을에 결혼한대. (결혼한다고 해)


<그러다/그렇다>

‘그러다’는 동사이고‘그렇다’는 형용사다. 따라서 ‘그러다’는 앞에서 말한 행위나 행동을 받고, ‘그렇다’는 대개 상태 등을 표현한다.
또 ‘그러/그렇-’ 뒤에 연결되는 ‘-고, -지, -게, -다’ 등의 자음이 거센소리로 바뀌냐 안 바뀌냐로 구분할 수 있다.

#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서서히 무르팍이 저려왔다/ 그러고도 니가 사람이냐?
# 네 사정이 정 그렇다면,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라/ 그 둘 그렇고 그런 관계라며?


<부치다/붙이다>

‘붙다’와 의미적 연관성이 있는 것만 ‘붙이다’로 쓴다. 즉 ‘-을 부치다/붙이다’의 문장이 ‘-이 붙다’로 바뀔 수 있으면 ‘붙이다’가 옳고, 그렇지 않으면 ‘부치다’가 옳다. (‘-을 부치다/붙이다’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무조건 ‘부치다’)

# 우표를 붙이다/ 불을 붙이다/ 조건을 붙이다/ 별명을 붙이다
# 논밭을 부치다/ 빈대떡을 부치다/ 편지를 부치다/ 힘이 부치다


<받히다/바치다/받치다>

‘받히다’는 ‘차로 전봇대를 들이받았다’에 쓰이는 ‘받다’의 피동형임을 생각하면 금방 구별해 낼 수 있다. ‘바치다’는 ‘웃어른에게 선물 등을 올리는 행위’의 의미. 그 외에는 ‘받치다’로 생각하면 된다. (‘받히다’의 ‘-히-‘는 피동 접사이고 ‘받치다’의 ‘-치-’는 강세 접사)

# 그는 천장에 매달린 메주에 이마를 받힐세라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갔다.
# 나는 너에게 나의 모든 걸 바쳤어.
# 남방에 흰 티셔츠를 받쳐 입다/ 쟁반에 커피를 받쳐 들다/ 허리에 베개를 받치다


<벌이다/벌리다>

‘오므리다, 닫다, 줄이다’ 등의 반대말이 될 수 있는 것은 ‘벌리다’. 그 외의 것은 ‘벌이다’
(단, ‘벌다’의 피동 ‘벌리다’는 예외)

# 입을 벌리다/ 밤송이를 벌려 밤을 꺼내다/ 자루를 벌리다
# 싸움을 벌이다/ 사업을 벌이다/ 화투짝을 벌여 놓다


<썩이다/썩히다>

‘속을 썩이다’ 이외의 것은 모두 ‘썩히다’

# 여보 밤낮 당신 속만 썩여 미안하오.
# 너의 재주를 썩히는 건 국가적 손해야.


<맞히다/맞추다>

이 둘은 ’맞다’의 사동형이다. 그런데 ‘맞다’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ㄱ. 나는 김 팀장이 던진 신발에 맞았다.
ㄴ. 내가 푼 모든 문제가 다 맞았다는 말을 들었다.
ㄷ. 우리 팀은 호흡이 잘 맞는다.
이 문장들을 사동형으로 바꿀 때 ㄱ.과 ㄴ.은 ‘맞히다’로, ㄷ.은 ‘맞추다’로 표기한다.
ㄹ. 신발로 나를 맞히다.
ㅁ. 모든 문제를 맞히다.
ㅂ. 호흡을 맞추다.
즉 ‘사물의 크기나 위치, 상태 등을 일치시키거나 비교하는 행위’의 뜻일 경우에는 ‘맞추다’가 되고 그 외에는 ‘맞히다’로 생각하면 된다.

# 비를 맞히다/ 주사를 맞히다/ 과녁을 맞히다
# 정답을 맞히다/ 이번 우승 팀을 맞혔다
# 발을 맞추어 걷는다/ 음식의 간을 맞춘다/ 정답지와 자신의 답안을 맞추어 보다


<띠다/띄다>

‘띄다’는
ㄱ. 글자를 띄(우)다, 두 사물의 거리를 벌리다.
ㄴ. 눈에 보이다.
‘띠다’는
ㄷ. 어떤 색이나 상태 등을 나타내다, 간직하다
의 의미. 이 중 ㄱ.은 구별이 쉽다. 문제는 ㄴ.과 ㄷ.인데, 앞에 ‘-에’가 오면 ‘띄다’, ‘-를’이 오면 ‘띠다’로 쓰면 대개 맞다.

# 한 칸 띄어 써라.
# 그는 어디 가나 눈에 띄는 편이다/ 요즘 눈에 띄게 얼굴이 수척해졌다.
# 미소를 띠다/ 붉은색을 띠다/ 사명을 띠고 태어나다.


<어떡해/어떻게>

‘어떡해’는 ‘어떻게 해’의 준말로 문장 끝에 오지만 ‘어떻게‘는 뒤에 서술어가 온다.

# 난 이제 어떡해,
# 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체/채>

‘체’는 ‘척하다’와 의미가 같은 보조동사 ‘체하다’의 일부, ‘채’는 ‘-한 상태(로)’의 의존 명사. ‘째’는 ‘그대로 몽땅’의 의미인 접미사.

# 아 그 놈 되게 잘난 체하네.
# 급했던지 신랑은 신발을 신은 채로 뛰어들어 갔다.
# 껍질째/ 통째


<오/요>

‘-오’는 종결형 어미, ‘-요’는 종결형 어미에 붙는 조사. 따라서 빼버려도 단어가 성립되면 ‘-요’, 안 되면 ‘-오’로 보면 된다.

# 공사 중이니 돌아가 주십시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오
# 밥을 잘 먹어(요)/ 아니(요), 조금 더 해야 돼(요)


<-함으로/하므로>

‘-함으로’는 ‘-함(명사형)+으로(조사)’이고 ‘-하므로’는 ‘-하(용언어간)+(으)므로(어미).
‘-써’가 붙을 수 있으면 ‘-함으로’, ‘-때문에’로 바꿔 쓸 수 있으면 ‘-하므로’.

# 그는 공부함으로(써) 삶의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 그는 열심히 공부하므로, 아마도 올해 꼭 졸업할 것이다.


<왠지/웬>

‘왜인지’의 준말인 ‘왠지’에서는 ‘왠-‘이고, ‘어찌 된, 어떠한’의 의미인 경우에는 ‘웬’(관형사)이다.

# 오늘은 왠지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웬 놈이냐?.

맞춤법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위해 1. 총론

말, 중얼거리기 2004. 9. 6. 16:52

다음의 글은 제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입니다.

몇 회에 걸쳐 나눠 싣겠습니다.

----------------------------------------

■ 맞춤법 규정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위해

1. 총론에 대한 이해

<표준어를 대상으로 한다>
표준어는 여러 방언(사투리) 중에서 하나의 방언(우리는 서울 방언)을 선택해 표준으로 정한 것인 데 반해, 맞춤법 규정은 이 선택된 표준어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정한 규범이다.
따라서 표준어가 아닌 방언은 원칙적으로 표기법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아래의 두 표기 중 무엇이 맞춤법 규정에 맞는가 하는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다.


# 고마 해라. 마이 무가따 아이가.
# 고만 해라. 만이 묵았다 아이가.

<소리 나는 대로, 어법에 맞게 적는다>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따라서 그 표기법도 기본적으로 소리를 반영하고 있으나 소리 나는 대로만 적을 경우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예컨대 ‘읽-(讀)’의 경우 이 동사를 활용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

# [익따, 익씁니다, 일꼬, 일그니, 잉는…]

즉 모두 같은 ‘읽-’인데도 환경에 따라 ‘[익-, 일-, 잉-]’으로 발음된다. 이를 그대로 표기하면 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여러 형태들을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 형태를 ‘읽-‘으로 정하여 이를 고정시켜 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예가 바로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적는다”라는 규정이 의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