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 오르다

산행기 2004. 9. 6. 16:04


청계산을 올랐다.
호섭, 정상, 주동, 정환과 함께. 경석이는 늦잠을 자서 오지 못했다. 병일이도 온다고 했었는데 연락이 안됐다. 양재동에서 만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78-1번 버스를 타고 옛골에서 내렸다. 원래 원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종점인 옛골까지 갔다. 원터에선 등산객들도 거의 내리지 않아 초행길인 우리는 눈치를 살피다 내리지 못했다.

산행을 시작한건 한 10시 20분 쯤,
한 이십분쯤 평탄한 길을 걷다 보니 가파른 경사가 한 삼십분 계속되었다. 중간에 한번 쉬어 땀을 닦았다. 며칠 전에 북한산에 오를 때처럼 땀이 많이 났다. 그 비탈을 오르고 나니, 그 후로는 평이한 길이었다. 그렇게 한 20분 걷다 보니 이수봉 정상이었다. 518미터였다. 그즈음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재촉했다. 사실 아래 산행 지도에서 봤을 때는 그 이수봉에서 6백 몇미터의 또다른 봉우리로 다시 올라가는 코스를 점찍었는데 길을 걷다보니 이미 우리는 청계사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시야가 확 트인 곳이 나왔다. 과천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그 한참 멀리로는 관악산이 보였다. 10월 관악에 올라 이쪽을 바라봤었는데 이제는 반대쪽에서 관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옆으로 펼쳐진 겨울 산수가 일품이었다. 발 아래로는 절벽처럼 경사가 급했고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말고는 좌우로 큰산이 없어 눈이 그리고 가슴이 시원했다.


저기가 정부청사다, 여기가 놀이공원이다, 경마장이다 저마다 한 두마디씩 거들었다. 저 앞의 관악산에서 했던 이야기들이랑 매한가지다. 다른 방향에서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10월의 산과 12월의 산은 제법 달랐다. 12월의 산은 갈색의 가지 사이로 흙을,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흙은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색과 감촉 모두. 그 흙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인 나뭇가지들은 좀더 진한 색이었다. 푸르름을 속으로 감춘 그런 진함.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 급했다. 고비를 넘는가 싶더니 다시 배가 아팠다. 사람들만 적었어도 나는 아마 그 부드러운 흙에 나의 척척함을 보탰을 거다. 청계사 방향은,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인지, 길이 좋지 않았다.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 같지가 않았다. 중간 이후로는 거의 뛰어 내려오다시피 했다.

청계사에 도착해서는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담배를 빌려 물었는데 젊고 건장한 스님이 담배를 꺼달라고 하셔서 황급히 흙에 부볐다. 장초를. 호섭이의 제안으로 절밥을 얻어먹었다. 후배들이 내가 먹은 그릇을 씻어 주었다. 어찌보면 제가 먹은 밥주발은 제가 씻으라는 불문의 가르침을 사뭇 거스르는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별로 찔리지 않았다. 내 내면에도 역시나 위계와 서열의 파씨즘, (이 말은 좀 부담스러우니 유사-파씨즘으로 해두자)이 내재해 있는가 보다.

내려오며 핸드폰의 벨소리를 내려 받느라고 떠들썩했다. 이규찬의 감기, 별의 12월 32일 등등의 노래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

한참 내려오다 의왕으로 가는 요금 500원의 정체 모를 버스를 탔다.. 의왕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양재동으로 왔다. 야구 연습장이 있어 방망이를 휘둘러 보았다. 역시 빗맞은 공이 반, 안 맞은 공이 4분의 1이었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다음 산행 일정을 잠시 얘기했다.

산행모임은 여기까지. 조금 엉성하기도 했고, 지난 두 번의 벼리 산행에 비하면 조금은 덜 흥겨웠던 산행이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2002. 12. 8.일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야간산행(2004.9.17)  (3) 2004.09.22
휴가 막날 북한산엘 오르다  (0) 200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