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막날 북한산엘 오르다

산행기 2004. 9. 6. 16:12

휴가 막날 북한산엘 오르다

휴가가 다 끝나 간다는 아쉬움에, 몸상태가 안 좋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어이 어제 아침 북한산엘 올랐다.
혼자 갈 때 의례 그렇듯이 이북5도청 쪽에서 비봉 능선(대남문 방향)을 탔다.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쉬지 않으려 했으나 중간에 포즈를 취해 주는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나 사진을 찍느라,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다. 사모바위에서 잠시 앉아 오이 반쪽을 오물거리고는 이내 대남문쪽으로 향했다.

안전사고 다발 지역. 매우 위험하니 우회하시오...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처음으로 호기롭게도 문수봉 코스를 잡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아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는 때가 분명히 있다. 다른 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쉬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같은데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좁기는 했으나 평범한 경사길이었다. 콧노래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위를 이리 저리 더듬어 보아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발을 잘 못 놓기라도 하면, 세칫말로 '골'로 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저씨 둘에 이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스치듯 오르고, 또다른 이저씨 두 분이 성큼성큼 내려 온다.

난 그들이 오르내린 중간쯤에 퍼져 앉았다. 맥주를 마시며 일산이며 인천이며, 또 서울 시내를 바라 본다. 전망은 좋으나 꿀꿀하다. 내려갈 엄두도 안 나고, 그렇다고 오르지는 더더욱 못 할 때, 할 수 있는 건 땅바닥에 또르르 굴러내린 김밥 몇덩이를 흔들어 보는 일.


죄없는 맥주캔만 밟아 우그러뜨리고는 엉금엉금 내려와 청수동 암문, 예의 그 길로 힘겹게 오른다. 한 시간을 헤맸더니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길이 거의 절망스러울 정도로 지루하다. 대남문 앞(뒤라고 해야 할까? 안쪽이라는 말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의 폐쇄된, 아니 식수부적합 판정의 샘 옆에 벌렁 자빠졌을 땐 이미 싸가지고 간 먹을 거리라고는 포도 한송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여차하면 백운대까지 내달려 보려 했으나, 맘 같이 되는 일이 없다.안개가 자뜩 찌어 1미터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2002년 초겨울의 비봉 언저리와 그 즈음의 내 인생이 생각났다. 구기동 매표소쪽으로 내려오는 내내.


휴가가 다 끝나 간다는 아쉬움에, 몸상태가 안 좋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어이 그날 저녁 어머니와 통닭을 튀겨 난지천 공원엘 다녀왔다. (올해 여름 휴가는 8월 27일부터 9월 2일까지였고, 북한산과 난지천 공원에서 서성인 건 9월2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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