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언어 · 헤게모니 · 권력』서평 (3)

pourm 2018. 1. 4. 17:03

언어적 근대의 극복을 위하여

– 가스야 게스케의 언어 · 헤게모니 · 권력(고영진 · 형진의 옮김소명출판, 2016) 서평 (3)


3. ‘국어의 사상과 언어의 존재론이라는 문제 - 전체론적 언어상의 형성

3.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스야는 이 책의 제12장에서 다이글로시아 개념을 통해 국어발생론을 매우 요령 있게 정리하고 있다. 다이글로시아란 물론 어떤 사회에서 한 언어의 두 변종, 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이들의 사용 영역이 공식적인 공간과 일상적인 공간으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현상을 말한다.

편의상 두 개의 변종, 혹은 언어를 상층어와 하층어로 나눌 때 상층어는 그 공동체의 가치의 원천이 되는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전통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고 따라서 고도로 규범화되어 있다. 반면에 하층어는 상층어에 비해 그 위신이 대단히 낮으며 문자로 적히는 일조차 드물다. 하층어는 대체로 그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모어인데 비해 상층어는 교육 기관 등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결국 다이글로시아란 공/, /, /말이라는 이분법에 따라서, 두 개의 언어 변종이 엄격한 계층제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33) 물론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은 대체로 이러한 다이글로시아 상태를 극복하고 국어로 상징되는 단일 언어 사회의 구축과 궤를 같이한다.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던 성스러운 글말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 입말로밖에는 사용하지 않던 세속어를 전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격상시킨 것이다.

계층적이기는 해도 서로 다른 변종이 각자 자신의 영역을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다이글로시아가 분리에 의한 지배라면(상층어는 절대로 하층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의 변종이 모든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국어에 의한 단일언어 사회는 동화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35)

그리고 이때의 동화에 의한 지배는 법적 제도적 강제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작동하는 헤게모니 장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게스야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의 핵심임은 앞서 강조한 바와 같다.

사실 언어적 근대를 중세적 보편 문어에서 세속어로의 전환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제 상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전환의 성격과 양상이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주목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스야의 논의가 갖는 의미는 물론 근대 사회의 특수한 권력 작동 양식을 통해 그것을 선명히 제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스야의 국어 발생론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국어의 사상적 의미를 따지기 위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힘, 즉 서로 뒤얽혀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개의 힘을 고찰할 것을 주문한다.

그 두 개의 힘은 각각 개별주의적인 방향과 보편주의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인데, 개별주의적으로 향하는 힘이란 물론 고전 라틴어 아랍어 한문과 같은 초지역적인 문명어의 문어 규범에서 개별 민족어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적이고 음성중심주의적 언어관이다.

그 이전의 다이글로시아 상황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의 수련을 거쳐 획득한 언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언어였지만, 이제 모든 화자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습득하는 것이라야 진정한 언어가 된다. 언어의 본질은 문자가 아니라 소리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음성중심주의 역시 문어로만 존재하는 초지역적인 공통어가 아니라 실제 발화로 살아 생동하는세속어만을 진정한 언어로 보는 이 개별주의적인 힘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국어의 발생에 관여하는 또 다른 힘은 보편주의적 방향으로 향하는 것인데, 이때의 보편주의적 방향성이란 다이글로시아에서와는 달리 각각의 개별 언어가 가질 수 있는 표상 기능과 대상 영역이 끝없이 확대되어 간다는 특성을 말하다.(40)

다이글로시아 상태에서는 고전 라틴어 아랍어 한문 등의 지배 언어가 세상의 진리를 독점하고 있었으며 이들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세상의 진리를 획득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다이글로시아가 무너진다는 것은 특정 언어에 의한 진리의 독점이 더 이상 불가능해짐을 의미하며 국어로 격상된 세속어로도 보편적 지식의 획득이 가능하다는 언어 인식의 성립을 뜻한다.

가스야는 이러한 국어에서의 보편주의적 방향이 세계의 모든 요소를 스스로의 내부에 거두어 들여, 자족하는 폐쇄된 영역을 만들어내려는 언어의 운동이라고 결론짓고 있다.(42) 다른 언어나 변종과의 영역 분담을 불허하는 국어의 이런 특성이 바로 소수어의 멸절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국어이후의 언어 인식을 모색하는 데 반드시 참조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3.2.

그런데 국어의 발생과 결부되어 있는 이 두 가지 방향의 힘은, 비록 가스야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전체론적인 언어상의 형성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론적인 언어상이란 특정한 언어, “‘X라는 언어 전체가 불가분의 통일체를 이루고, 그 근저에는 일관된 원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 그에 의하면 언어에 대한 이런 관념이 출현하는 시기는 근대 유럽의 국민어 형성 과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50-51)

화자는 자신이 어떤 개별 언어, 즉 한국어나 일본어, 또는 영어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개별 언어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스야에 따르면, ‘내가 어떤 언어를 말한다는 명제는 특정한 신념의 표현일 뿐이며, 그 신념을 진리로 간주하게 될 때 비로소 그 X어라는 대상이 사회적으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X라는 대상의 자명성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언어학을 포함한 ‘X에 대한 허다한 담론들이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X어의 등질성이라는 관념 역시 “X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제 담론의 등질성이 낳는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 가스야의 주장이다.(183)

그리고 이러한 전체론적인 언어상의 형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가스야가 지목하는 것이 바로 각각의 언어는 고유의 영토에 토착한다는 의식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균질적 주권이 빈틈없이 작용하는 영토와 그 경계가 전에 없이 중요해진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특정한 영토와 그 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언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의식은 확실히 근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언어를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에 할당하는 이러한 식의 사고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언어 지도의 작성이다. 예컨대 1800년대 초반 프랑스 내무성의 통계국은 프랑스의 전 국토를 아우르는 언어 조사를 단행하였는데, 가스야에 따르면 이 조사의 특징은 농산물 지도의 작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 구분의 기준을 정치적 행정 구역이 아니라 지질학적 토양의 패턴이나 지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언어와 농산물을 아날로지, 즉 유추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음을 뜻하는데, 마치 농산물의 산출이 자연적인 조건에 의존하는 것처럼 언어 역시 그것이 사용되는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149-157) 그리고 언어가 특정한 영토에 토착하는 것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영토의 동질성언어의 동질성을 보증한다는, 또는 그래야만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32언어공동체 개념 재고에서 가스야가 제기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라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은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이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단일한 언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곤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언어가 특정한 영토에 토착한다는 이 근대적 언어 인식은 매우 문제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토(국토)를 매개로 언어(국어)와 공동체(국민)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시켜 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은 결국 동일한 영토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일체성이라는 관념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각각의 언어가 그 고유한 영토에 토착한다는 의식, 그리고 그 언어는 불가분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이른바 전체론적 언어상의 형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의 국민어 형성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는 물론 근대 유럽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가장 이른 시기에 국어문법을 집필한 이들 가운데 하나인 주시경은 아래에서와 같이 영토=공통체=언어의 의식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其域其種其種其言一境一種一種一種케함이라. …… 我國亞細亞洲 東方 溫帶으로 靈明長白山東西南으로 溫和三海半島此域我人種祖産土音하매 此人族此音此域言語하니 檀祖開國後로만 여도 四千餘年傳用我韓國語天然特性으로 獨立되는 니라 국어음전음학(1908), 자국언문(自國言文)


여기서 주시경은 조선이 백두산과 삼면의 바다로 경계 지어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이 일정한 경계 안에 특정한 종()의 사람을 살게 하며 그 사람들로 하여금 독립의 표가 되는 국어를 말하게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시경은 대한제국 시기 학부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는 백두산 이북의 아무르 강, 쑹화 강, 랴오허 강 주변의 낮은 땅들이 아주 먼 옛날에는 모두 바다였기 때문에 결국 조선 반도가 아시아 대륙과 단절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대범한 상상을 펼치는데 이 역시 우리의 고유한 언어가 이 강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난갈, 짬듬갈같은 나름의 개념과 범주들을 통해 국어의 일관되고 통일된 모습을 가시화하려 했던 주시경의 시도는 이와 같이 언어=영토=공동체라는 관점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3

그런데 언어가 그 고유한 영토에 토착하는 것이라는 의식과 함께 전체론적 언어상이 근대에 비로소 형성되었다고 보는 가스야의 주장은 사회언어학을 포함한 기존의 언어학에 대한 자못 심각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개별적이고 독립된 언어들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어 존재한다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러한 상식에 기반하여 (영어학, 독어학, 일본어학, 한국어학과 같은) 개별 언어학이 성립함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은 정작 그 개별 언어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컨대 영어학은 영어의 음운이나 통사, 어휘와 같은 각각의 층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이루는 제 요소와 그 기능이 무엇인지 논할 수 있지만, 그런 제 요소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영어 그 자체에 관해서는, 그것을 언급하는 순간 그러한 행위는 언어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된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 프랑스어가 라틴어나 그리스어보다 훨씬 우월한 이성적인 언어임을 내세우며 명석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고 했던 리바롤의 선언(프랑스어의 보편성에 대하여, 1784)은 이제 최소한 언어학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가스야가 제기하고 있듯이 언어학이 고유명사로서의 ‘X를 언어 연구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어 내적 사실에 집착하는 경우이든 사회언어학과 같이 언어 외적 사실에 주목하는 경우이든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촘스키는 고유명사로서의 ‘X라는 상식적인개념은 사회정치적인 차원을 가지므로 과학적 접근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사회언어학에서도 수많은 변종들이 연구 대상이 될 뿐 하나의 단일한 개별 언어는 현실에 기인하지 않는 임시구조물에 불과하다고 치부될 뿐이다.(16-19) 물론 가스야가 제기하는 문제는 리바롤과 같은 유의 시대착오적 관점을 언어학에 다시 부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근대에 들어 전체론적 언어상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근대 국민국가의 언어 정책 역시 그에 기반해이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언어학에서는 불가분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그 ‘X라는 개별 언어 전체에 대한 논의 자체가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언어학이 언어의 존재 그 자체를 지탱하는 사회적 권력의 작용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사정을 분명히 하기 위해 소개하는 개념이 바로 언어의 전체 기능이라는 것이다.

 

프라하 학파의 보가트이료프와 호탈렉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언어의 전체 기능이란 개념은 각각의 층위나 그것을 이루는 요소의 기능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새로운 기능을 뜻하는 것으로서, 개별 언어에 전체성을 부여하고 언어에서의 우리의식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스야에 따르면 이 전체 기능언어적 사실과 사회적 사실의 경계에 있고, 이 양쪽에서 야기되는 복합적 역학 관계에 의해 그 강도와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전체 기능이란 것이 언어 쪽에서 보면 사회적인 것으로 보이고 사회 쪽에서 보면 언어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언어와 사회라는 두 개의 힘의 접촉면에서 성립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냐 언어적인 것이냐를 따지는 물음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며 중요한 것은 그 전체 기능을 결정하는 복합적인 역학 관계라는 것이다.(21-22)

그러나 ‘X가 그 고유한 영토에서 토착하여 아무런 인위적 개입 없이 자연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거기에 가해지는 어떠한 개입도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언어 의식에서는 위와 같은 의미의, ‘복합적인 역학 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전체 기능이란 것 자체가 인식 불가능의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언어학에서 ‘X라는 개별 언어 전체에 대한 논의 자체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이와 같은 언어에 대한 자연주의, 자유주의에 입각한 접근은 그러나 소수 언어의 멸절과 같은 문제에 대해, 그것에 어떠한 정치적 법률적 강제가 개입되어 있지 않는 한, 자연스러운 언어의 자연사(自然死)’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