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스토아 학파, 워프

책일기 2016. 7. 1. 12:22

1.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프로이드는 최면 요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환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최면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최면에서 깨어난 환자가 그 문제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적 난점이 있다. 그래서 그가 나아간 길은 자유연상법이다. 특정 증상에 대해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고 남김없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분석가는 그 자유연상이 이어지도록 도우면서, 환자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증상이 사실은 (의식적으로는) 차마 인정할 수 없어 스스로 억압한 어떤 소망이 몸을 통해 이상 발현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견딜 수 없는 어느 부위의 통증이 사실은 형제, 혹은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소망에 대해 스스로 내린 형벌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통증이나 강박적 이상 행위는 멈추어진다. 프로이트가 분석하고 소개한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읽다보면 신비롭기까지 할 지경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언어는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신분석과 언어의 관계라면 물론 야콥슨을 경유한 라캉의 테제, 즉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선언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프로이드가 인식했던 무의식의 특징이 아니다. 그보다 프로이드의 실제 분석 사례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소리나 형태적 유사성으로 인해 문제의 대상이 다른 단어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경우들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언어의 역할이 핵심적이라는 점은 이와는 전혀 다른 관점과 차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 언어와 무의식이 모두 구조화되어 있다거나 분석 과정에서 단어의 소리나 형태적 유사성을 이용한다는 사실 같은 것은 차라리 부차적이거나 지엽적인 것일 수 있다. 정신분석은 대화와 이야기의 구성을 통해 환자의 증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즉 환자가 자신도 모른 채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없기에 억눌린 무의싱 상태에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동시에 그 대화와 이야기를 통해, 즉 환자 스스로 구성한 서사를 통해 치유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화행이다. 다시 말해 프로이드의 분석과 치유는 바로 <대화><이야기의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증상이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언인가를 알아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정신분석의 방법론은 히스테리 환자의 치유에서 시작해서 꿈과 실수, 그리고 농담의 해석을 거쳐 급기야는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종교와 인류 문명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까지 이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서 인류 문명의 전개 자체를 설명하려는 과도한 이론화는 프로이드를 정신분석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지만, <프로이드의 환자들>의 저자 말마따나 프로이드의 진가는 이론이 아니라 사례 분석에 있을 터.

김서영, <프로이드의 환자들>, 프로네시스, 2010. 2016.1.31~2.16.)

 

2.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예외적 사건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화와 역사가 뒤엉킨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시대와 비교하는 것은 물론 무의미하겠지만, 공간을 이동하여 동시대의 페르시아를 비롯한 전제군주제를 떠올리더라도 그리스 민회와 배심원에 의한 재판 같은 것은 하나의 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특히 델로스 동맹 이후 거의 전적으로 주변 지역에 대한 가혹한 식민 지배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공화정으로 이어진 이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이정표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제국과 그 식민지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그리스에만 있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의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설득, 논증과 변증으로 대표되는 말의 힘이다

귀족 아닌 평민까지 정치 행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불분명하다. 보통 밀집방진(팔랑크스)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이야기하지만, 평민 가운데 일부만이 필요 장비를 갖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 팔랑크스와 민주주의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유가 어디에 있든 다수의 정치 행위자가 존재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설득과 논리의 힘을 극대화한다. 에게 해 연안의 철학 역시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헬레니즘 철학은 로고스라는 말로 집약된다고들 한다. 로고스는 말이기도 하고 이성이기도 하고 빛이기도 하다. 말을 이성적으로 전개했을 때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춘 것처럼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요한 복음의 테제는 따라서 헬레니즘 문화와의 교섭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신약성경, 이라는 시도는 애초에 누가 복음과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가지고 유대교의 경전이라는 옛 계약(구약)을 대체할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새 계약이 성립되면 그 이전의 계약은 자동 파기 아닌가!) 물론 갈리아 사람 예수에 집중했던 마르코 복음이 시기상으로 가장 먼저고 유대인을 염두에 둔 마태오 복음(그래서 구약과의 대응에 집착했던)과 유대 사회가 아닌 그 외부인을 염두에 둔 누가 복음이 흔히 Q 문서라고 하는 미지의 텍스트와 마르코 복음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요한 복음은 이들 텍스트가 성립된 뒤에 씌어졌으나 헬레니즘 문화에 깊이 영향 받은 그 저자에게 마태오나 누가가 집작했던 예수의 족보나 처녀 잉태 같은 것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이 곧 하느님이며 어둠을 비추는 빛이었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예수의 족보를 읊어야할 이유도, 그러면서 그 어미를 굳이 처녀라고 강변할 필요도 요한 복음의 저자에게는 없었다. 그에게는 로고스라는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를 지배한 철학은 로마의 황제까지 배출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학파이다. 온갖 관습을 거부하고 말 그대로 개같이 생활했다는 견유학파(키니코스학파)나 금욕적 쾌락주의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달리 현실 참여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세계를 물체와 물체 아닌 것으로 나누었는데, 비물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말로 표현되는 것>을 꼽았다. <말로 표현되는 것>이란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아마 <사건>이나 <의미>가 될 것이다. 그와 내가 만난 사건, 그리고 그 의미(우애의 형성, 혹은 갈등의 촉발)는 분명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지만, 물체는 아니다. 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만 비로소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말소리나 글자는 물체일 뿐이다. 스토아학파의 위대한 점은 그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존속하는 말로밖에는 표현될 수 없는 사건과 그 의미를, 그러니까 바로 로고스를 개념화했다는 데 있다.

의미론 내지 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장치나 방법론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이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다. 그의 <오르가논>(범주론/명제론/분석론/변증론)은 전통적인 논리학과 의미론의 기본 개념을 대부분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정립한 자연학(퓌직스)과 형이상학(메타퓌직스)의 도구였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 해도 전달할 수 없다.>(고르기아스)라는 소피스트들의 해체적 명제에 의해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된 자연철학을, 그리고 탈레스 이래의 자연철학이 도달했던 궁극적인 결론(파르메니데스 <생성도 소멸도 없는 부동의 일자>)을 보란 듯이 재건한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라는 개념을 통해 천상에 있던 이 스승의 철학을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자연학/형이상학이라는 이 거대하고 체계적인 그의 지적 담론은 <오르가논>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세계에는 <사건의 의미>가 자리할 곳이 없었다. 이를 테면 공과 그 운동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금 안에 떨어지느냐 금 밖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평범한 파울, 한 시즌의 승자를 결정하는 홈런)를 가지게 되는 어떤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공의 <형상>이라는 개념으로는 그런 것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물이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을 질료와 형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런 사건/의미는 바로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 그것이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점을 개념화한 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이다. 전통적인 논리학과 의미론의 완성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으나, =로고스=빛을 논리적으로 해명한 공로를 스토아 학파에게 돌려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볼프강 코른, 조경수 옮김, <트로이의 비밀>, 돌베개, 2015(2015.12.23.~2016.1.2.)

토머스 R. 마틴, 이종인 옮김, <고대그리스사>, 책과함께, 2015(2016.1.3.~1.21.)

김용옥, <기독교성서의 이해>, 통나무, 2007(2015.12.23~12.31)

이정우, <세계철학사1 - 지중해세계의 철학>, 도서출판 길, 2011 (2016.1.3~1.31.)

 

3.

작년 초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 어쩌면 일종의 허위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자의식에서 내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주잠깐이긴 했지만, 한때 가졌던 <운동하는 사람>라는 자의식을 밀어치우고 거의 20년 동안 나를 지배한 것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알량한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물론 공부를 전혀 안 할 때도, 심지어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의식이 모든 걸 합리화해 주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헛된 망상을 붙들고 있기가 민망해졌을 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허위의식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만 주저앉고만 싶어졌다. 왜 나는 <일하는 사람>, 노동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공부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느끼곤 한다. 대개는 그들의 거대한 이론이나 날카로운 분석 때문이지만, 사피어-워프 가설의 워프로부터 받은 위화감의 이유는 좀 달랐다. 내가 처음 그에 대해 알고 놀랐던 것은 워프가 직업적인 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소방안전기사였다. 그의 언어학은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혹은 부업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일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둘 다였을 수도 있겠다. 스승의 이름을 집어넣어 더 유명해진, <인간의 사고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의 야심찬 가설은 사실 전문적인 학자라면 감히 내놓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누구나 가볍게 비판하고 넘어가는 그런 것이 되었지만, 그러나 조금만 진지하게 언어와 인간, 그리고 사회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고마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이 생각은 물론 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에네르게이아로서의 언어를 말한 훔볼트도 있고,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하이데거도 있다. 그러나 실제 문법체계를 가지고 이를 논한 경우는 별로 없다. 워프는 아메리카 인디언인 호피족의 언어와 일반적인 인도유럽 어족의 시제체계를 비교하여 이들이 서로 다른 시간 관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간을 호피족은 과정과 방향성의 문제로 보는데 반해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은 고정된 점, 즉 시점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보았을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호피족의 시간 관념이라는 것은 대개 전근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것이고(심지어 서구유럽의 전근대 사회에서도), 또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의 시간 관념이라는 것은 균질적 시간 개념이 일반화된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언어권과 상관없이 일반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언어와 사고를 단선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예컨대 <음양><오행>으로 질병을 파악하고 이를 치유하는 사람과 <바이러스><세균>, <면역> 같은 것으로 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사뭇 다를 것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개념>은 사회의 구조와 배치를 결정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개념이지 언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념은 언어 이외에 그 무엇으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말=로고스=빛인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가설의 가장 큰 문제는, 이 가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사고의 구조를 가진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서로 같은 사고의 구조를 가진다는 것인데, 워프에게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이 가설은 따라서 내셔널리즘과 너무나도 쉽게 결합할 수 있다. 사실 한 언어와 다른 언어를 가르는 것 자체가 정치, 국민국가라는 이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언어학적으로만 보자면 제주도말과 서울말은 다른 언어로 분류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반대로 언어학적으로만 보자면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는 한 언어의 변이(방언)로 볼 수 있으나 서로 다른 언어로 카운팅한다. 유고연방 시절 하나의 언어(세르보-크로아티아어)였던 것이 이제는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크로아아티어라는 별개의 세 언어로 취급된다. 군대를 보유하느냐가 언어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우스개가 있지만, 언어를 가르는 기준 자체에 정치가 개입하는데 언어와 사고를 연결 짓는 워프의 가설은 이 정치, 정확히 말하면 국민국가라는 이념의 힘을 극대화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겨레말은 겨레얼입니다.”)

정치를 배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모든 것을 집어 삼겨버리고 마는 저 가공할 국민국가라는 이념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소장문법학파의 자연과학 모델 대신 소쉬르가 제시한 것은 사회학적 모델이다. 그러나 그 사회를 우리는 손쉽게 국민국가로 대체했다. ‘국어학이 탄생한 것은 사회’=언어공동체를 국민국가로 대체하는 바로 그 순간이고 국어학국어(라는 사상)’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다시, 국가에 맞서 사회를 복원해 내야 한다. 칼 폴라니는 토지와 노동력, 그리고 화폐라는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함으로써 완성된 자율 시장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이라 했다. 그리고 이 악마의 맷돌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갈아치웠을 때 비로소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절히 파괴된 사회. 따라서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은 바로 사회를 복원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브렉시트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국민국가 넘어서기는 단일시장(EU는 결국 단일시장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따위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번 사태가 웅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테면 세계시민주의는 국민국가 이념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둘은 동일한 이념의 변주일지도 모른다. 국민국가 역시 박애, 우애라는 깃발 아래서 피어나지 않았던가. 국민국가=시장이 파괴한 사회를 유럽단일시장은 더욱 잘게 촘촘히 갈아버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시장=국민국가가 아닌 사회를 복원/재구성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업 없이는 이 임박한 파국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