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혁명은 자연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중심 범주를 본질 대신 변이로 대치한 것이다. ...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변이가 우연한 것이고 본질이 더 높은 현실이었지만,
다윈의 혁명에서는 오히려 변이가 확고한 현실로서 가치를 갖고,
기술적으로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던 평균은 추상적인 것이 되었다."
(스티븐 J. 굴드, 이명희 옮김, <풀하우스> 사이언스북스 67쪽)
역사비교언어학의 많은 개념들은 예컨대 퀴비에의 비교해부학 같은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언어학의 중요 분야 가운데 하나인 '형태론 morphology'은 생물학의 한 분야를 이르는 명칭이기도 한데,
여기서 등장하는 변이 variation라는 개념 역시 언어학이 생물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변이 가운데 하나의 종, 또는 형태를 확정하는 것은 생물학의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언어학에서 역시 변이는 대표형을 추출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실체라는 식의 접근은 별로 없었다.
예컨대 '국어문법'은 한국어의 온갖 변이들 가운데 '국어'의 본질(이론에 따라 무엇을 본질로 볼 것인가는 달라지겠으나)이라고 가정되는 추상적 체계를 추려낸 것이다.
자연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중심 범주를 본질이 아니라 변이로 본 것이 다윈의 공헌이라는 게 굴드의 주장인데,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본질로 환원되지 않는 전체 변이들의 시스템, 즉 풀하우스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나 변이의 다발만으로는 실체의 기술도 설명도 불가능한바, 역시 '특이점'이라는 구조주의적 관점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회언어학의 요체는 변이의 복권이다. 그리고 그 변이는 '사회적' 실체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자연과학 모델(자연 법칙처럼 인간이 어찌해볼 수 없는 언어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소쉬르는 언어를 사회적 실체라는 뒤르케임의 사회학 모델, 즉 상품의 가치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지듯 한 단어의 가치 역시 발화자와 청자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회학적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그러한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변이가 '사회적' 실체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라면, 랑그의 언어학을 넘어설 열쇠 역시 소쉬르에게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 우리가 소쉬르를 잘못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소쉬르가 말한 '사회'를 자동적으로 '민족=국가'와 연결시킨 우리의 몰이해. '민족=국가'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듯이 '사회'는 결코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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