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관련 결정에 부쳐

삶읽기 2020. 3. 16. 12:15

녹색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정의당의 선겨연합정당 불참 결정을 듣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원 투표 끝에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하여 유시민+이정희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한 투표.
누군가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투표.
선거연합정당의 명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지하는 이에게 투표하고 싶다.
심지어 선거연합정당은 사실상 촛불을 앞세워 집권한 이들이 주도하고 있고, 그들은 견재 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주요한 정치세력이지 않은가? 이명박-박근혜가 다시 돌아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이 이상한 정당, 가설정당의 정당성은 충족되는 것인가?

그러나 아,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여전히 강고하다.
아니,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비판적 지지, 이명박근혜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녹색당이 원내정당이 된다면? 이 정부의 실책을 가리는 역할을 할 민주연합론에 가담하여 녹색당이 의회에 진입하게 된다면?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녹색당까지 저들의 전리품이나 악세사리가 될 것인가?

정세에 따라서는 전선을 긋고 거기에 제 세력이 결합하는 운동은 물론 가능하다.
그런데 전선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정부, 집권여당이 있는 그런 정세는 배우지 못했다.
단순한 정부여당이 아니라 거기에는 재벌과 자본이 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박근혜와도 거래했지만, 문재인과도 한배를 탔다.
지배블록 내의 지분 싸움에 진보정당이 개입하며 오히려 전선을 완전히 착각하게 하고, 그리하여 결국 지배블록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게 하는 형국 아닌가?
이 정권은 검찰과의 요란한 내전을 치루는 것으로 개혁 의지를 뽐냈지만, 그런 힘의 반에 반도 재벌 개혁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선은 다시 그어져야 한다.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은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 정당의 하위 종속변수로 자신을 위치 지우면서 생존해 왔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그 진보정당의 운동이 오늘 파국에 처했음을 본다.
지배블록의 한 편에 섰을 때에만이 생존이 가능한 진보정당이란, 더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깨고 나간 이래, 거의 한번도 심상정(과 노회찬)을 응원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정의당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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