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 격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quarantine이 있다.
40을 뜻하는 quarante(불어), quaranta(이탈리아어)에서 온 말이다.
중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전염병 전파를 우려해 입항한 선박에서 40일간 선원의 하선을 금지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루즈선에서의 하선을 금지했던 일본 정부는 아마 저 중세의 전염병 대책을 본땄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문뜩 지금 우리 모두는 간절히 땅을 밟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갇혀있는 그런 신세가 아닌가 생각했다.
'31번 환자'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달 20일 전후였으니, 그리고 나서 심각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고 자발적/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 모두를 규율하기 시작했으니, 각자의 배 안에 갇힌 지 한달쯤 된 것 같다.
연기된 개학일 4월 6일은 '신천지'로 온 언론이 도배된 시점으로부터 40일쯤 되는 날이지 않을까.
40일이 지난다고 이 배에서 내리는 것이 허락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학교도 학원도 교회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고립된 아이들에게 개통해 준 핸드폰 덕에 처음으로 가족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예정대로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배우고 있었을 둘째는 아직 한글을 못깨쳤고 글도 모르며 단톡방에서 맹활약중이다.
컴퓨터 화면과 마이크를 상대로 한 독백의 강의는 벌써 3주차 녹화/녹음을 마쳤다.
노아의 방주를 타고 살아남은 이들은 비둘기를 통해 바깥이 안전한 줄을 알고 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고립된 배에서 내리겠지.
그러나 이 고립을 견디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향해 반갑게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붙잡고, 얼싸안을 수 있을까?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환대할 수 있을까?
아마 중세의 저 40일을 견단 이들은 분명 그랬으리라.
우리의 고립이 우울한 것은 지금의 고립감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가 더 무섭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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