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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탈출기
서평. 백승주,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탈출기>, 은행나무, 2019.
1.
그는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의 최전선에 있었던 언어교육학자이다.
그리고 기호학과 언어심리학, 혹은 심리언어학에 조예가 깊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특히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지 않은 타자의 입장에서 겪은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학자로서 상하이에서 보낸 1년을 소개한다.
상하이의 뒷골목과 박물관, 백화점을 걷던 그는 느닷없이 신촌의 지하철과 이대역 근처의 자취방, 그리고 제주의 풍광과 역사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오와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국가주의를 되돌아보게 하고, 상하이에 만난 기괴한 건축물을 통해 그의 일가가 겪은 4.3의 비극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2.
그와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휴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강의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우리는, 96년 '연대 사태' 덕에 지어진 건물을 빠져나와 뒷산의 오솔길로 산책을 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별로 기억에 없다.
다만, 선배도 동기도 모두가 떠나고 없던 그 대학원에서, 가끔 만나 술한잔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는 기억은 선명하다.
그의 결혼식에 갔고, 얼마 후 술취한 그를 이끌고 그의 신혼방에까지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난입했고, 그의 딸 이현이의 돌잔치에 (맨정신으로) 갔댔다.
이제 그는 광주에 나는 원주에 있다.
전화로 가끔 안부를 묻는다.
3
그는 언어학자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내 공부는 언어학자들이 벌여놓은 일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언어학이 기본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정치학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물론 실제로는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이상적으로나마 평등하다고 믿게끔하는 여러가지 정치적 이데올로기/제도/장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어학이라고 생각한다. (촘스키)
민족의 구성원은 물론 현실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공유한다고 가정하는 '국어문법'은 그들의 평등성을 가상적으로 입증한다. (주시경/최현배)
나는 내 공부의 의미를 (옳고 그름을 떠나)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공부를 이해한다고 믿고, 심지어 내 공부를 지지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가 그이다.
물론 그 이해와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특히 그가 종종인용하는 진화생물학(에 기반한 심리학)을 우려하는 편이다.
그러나 오랜 동안 그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래 그를 '동지'로 생각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4.
작년 여름에 받은 책을 이제서야 다 읽고 한두마디 적어둔다.
페이스북에서 대략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펼쳐 읽다보니, 새롭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때론 날렵하고, 때론 시니컬한 그의 문장은 매혹적이다.
술자리에서의 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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