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언어학’을 찾아서- 언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사회언어학

책일기 2021. 5. 25. 09:44

1.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가장 난감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질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상황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저 “국문과 나왔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로 대답이 가능할 수도 있다. 또 역사나 철학, 문학 전공자의 질문이라면 ‘어학’이라는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예컨대 국어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내 대답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때는 ‘사회언어학 전공’이라는 대답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 적도 있다. 처음 학술발표를 한 곳도 한국사회언어학회였고, 난생 처음 학술논문을 게재한 곳 역시 <<사회언어학>>󰡕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내 전공이 과연 사회언어학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또 사회언어학 전공을 자임하는 분들한테서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언어학은 고사하고 그 상위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언어학의 세부 전공 어디에서도 내 공부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낭패감에 휩싸였던 적이 여러 번이다.

석사 논문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나의 문제의식은 근대적인 언어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데에 있었다. 물론 이 테마를 풀어내기 위해 주로 살핀 곳은 한반도 안쪽이었으나 때로는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서구 유럽의 ‘근대성(modernity)’이란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시경을 비롯해서 대체로 전문적인 한국어 연구자와 그들의 저술을 연구 대상으로 했지만, 당대의 주요한 역사 문학 철학 텍스트 역시 검토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석박사 두 번의 학위논문 심사 때마다 가장 대응하기 힘들었던 지적은 사회학, 역사학, 문학 전공의 심사위원들이 하는 문제제기가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어학 논문인지를 설득해보라’는 어학 전공 심사자들의 요구였다. 사회언어학이 내 전공이라는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언어학은 고사하고 ‘어학’인지도 의심스러운 내 연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관심사는 ‘언어’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언어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담론과 인식의 문제였다.

 

2.

이제 막 공부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석사 과정 시절,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내 전공은 사회언어학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작 그것이 어떤 학문인지도 잘 모르면서, 음운론이나 통사론은 물론이고, 의미론이나 화용론보다도 더 진보적인 학문이라며 으스댔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어느 세미나 자리에서 그러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평소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선배 하나가 아주 냉소적인 어투로 ‘대체 사회언어학이란 게 뭐냐?’고 내게 물었다. 일관된 연구 대상과 방법론이 부재한 사회언어학이 과연 제대로 된 학문이기나 하냐는 힐난이었는데, 지금이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반박을 했겠지만, 달랑 번역된 두 권의 개론서를 읽은 것 말고는 사회언어학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었던 나로서는, 분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워드워프(Wardhaugh)와 파솔드(Fasold)의 개론서를 읽으며 나 역시 여러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논의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테면 2014년과 2020년에 한국사회언어학회에서 출간한 총서 1, 2권을 읽어보면 한국의 사회언어학 연구가 얼마나 깊이 있고 수준 높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루어진 10개 내외의 주제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연구 방법론이나 대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일정한 연관성은 있고, 그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임즈(Hymes)가 구별한 것과 같은 방식의 분류(Socially Realistic Linguistics, Socially Constituted Linguistics, Social as well as Linguistics)가 아마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지역이나 계층에 따른 변이 연구와 의사소통 민족지학, 그리고 이중(다중)언어 상황 및 언어계획의 문제 등이 그 구체적 주제일 텐데, 여기에는 상호작용 이론에 근거한 대화분석 같은 것이 추가되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너 가지의 분야로 정리한다고 해서 사회언어학의 일관된 연구 방법론이나 대상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의 학문적 배경이나 관점의 상이함이 도드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공통점을 아예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균질적 언어공동체’라는 가상의 실체를 전제하고 있는, 이른바 ‘순수 언어학’에 대한 문제제기. 이것이 바로 모든 사회언어학적 연구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아닐까?

 

3.

비판적 담화분석의 이론가로 잘 알려진 페어클라우프(Fairclough)는 소쉬르의 ‘랑그’라는 개념이 ‘국어(national language)’의 신화가 정점에 달한 20세기 초에 등장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겠는가, 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순수 언어학’은 지역과 계층과 세대와 젠더의 차이에 따른 무수한 변이와 변종을 간단히 무시하고 ‘균질적 언어공동체’를 가정한다. 그리고 그 ‘균질적 언어공동체’라는 이론적 가정은 의도치 않게 근대 ‘국민국가(nation-state)’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소쉬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자연과학적 모델에 입각했던 선배 세대와는 달리 ‘사회’라는 관점을 언어 연구에 도입한 인물이다. 그가 ‘사회적 사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학을 정초한 뒤르켐(Durkheim)의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소쉬르의 ‘사회’를 간단히 ‘민족’ 혹은 ‘국가’와 등치시켰던 그의 후예들에게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와 젠더에 따른 다양한 ‘사회’와 그 수만큼의 다양한 ‘랑그’의 존재를 언어학은 짐짓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가.

사회언어학은 단지 언어학을 보완하거나 보조하는 학문이 아니라, 기존 언어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불온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음운론과 형태론, 통사론과 의미론의 옆에 얌전히 앉아 언어학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언어학의 근본 가정을 의문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사회언어학의 역할이 아닐까.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했던 공동체에 내재한 차이와 이질성의 확인,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랑그’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다양성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는 데에까지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언어학은 ‘순수 언어학’에 대한 비판 정신 못지않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언어 연구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성찰, 그 자체를 사회언어학의 한 분야로 설정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전공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나도 더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

(<사회언어학회소식지>57호. 202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