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유감

삶읽기 2009. 5. 26. 16:20

1.

'殺'. '죽일 살'이다. 그러나 왕을 죽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는 '시'로 읽는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라고 하지 않고 '시해'라고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따라서 이런 투는시대착오적인 어법이다.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폐하 밑에 전하, 전하 밑에 합하, 그 밑에가 각하란다. 더없이 봉건적 어법이다.)

‘노 전 대통령 사망’에서 ‘서거’로 바뀌는 순간, ‘서거’ 역시 그런 봉건적 유습인가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그냥 높임말이란다. 따라서 이 말법에는 유감이 없다. 물론 누구의 죽음은 높이고 누구의 죽음은 그러지 않는가, 잠깐 서글펐으나, 문제는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낮추는 데 있는 것.

2.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1년 반 전 모두가 노무현을 욕했다. 노무현을 욕하는 것이 마치 유행인 듯. 또는 그래야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앞을 다투어 그를 조롱하고 놀려먹었다. 그리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 소동의 절정은, 맙소사! 이명박의 당선이었다. 경쟁적으로 노무현에게 돌팔매질 하던 상황이 정상이 아니었듯,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온 나라가 울부짖는 지금의 상황 역시 상식적인 모양은 아니다.

3.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직후 나는 거실 티브이에서 그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검사와의 대화에서이고, 또 한 번은 오일팔 기념식에서였다.

그는 검사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이야기했듯, 변형된 기자회견에 불과했다.'노무현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오일팔 기념식에서 그는 아주 늦게 나타났다. 한총련 및 광주지역의 몇몇 단체에서 그의 출입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만난 부시로부터 ‘이지맨’ 소리를 듣고 막 귀국하던 참이었다. 한총련은 그 당시 이적단체 규정이 철회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아, 이 상황에 나설 곳은 한총련밖에 없는가, 서글펐다. 93년 한총련 출범 이후 처음으로 그들에게 미안했고, 그들이 대견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들의 행위를 난동이라 표현했다. 혹시 그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혹시 80년 광주와 미국의 문제를 몰랐던 걸까? 설마.

4.

그 뒤로 이어진 파병, 비정규직법, 한미에프티에이 등은 그가 진보적 가치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이 사회에 형성된 주류의 카르텔을 깨고, 그 균열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청껏 외치다 갔다. 우리의 주류 엘리트 사회가 얼마나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는지를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남은 것은 그의 스타일뿐이다. 그를 욕한 사람들도 대부분 그것에 치를 떨었고, 그를 따랐던 이들도 대부분 그것에 매달렸다. 떨어질 줄 알면서 부산에? 그건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소리다. 몸소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그가 부산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던들, 시장이 되었던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대통령이 되어서도 못했던 일을 국회의원이나 시장으로서 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이 되어서 지역주의를 깬다고 했던 여러 가지 정치공학적 짓거리들은 지금 생각해도 욕지기가 치민다) 당선 그 자체가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5.

노무현이 무비스타인가?

지금 우리가, 그에게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던 우리가 지금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비운의 무비스타처럼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하염없이 우는 일일까?

노무현적 가치, 만약에 그런 것이 있었더라면, 그에게 그것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를 지지했던 이들이 분명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길은, 아마도 이명박 시대에 ‘서거’한 예컨대, 용산의 철거민들과 화물연대 조합원의 죽음에 과연 참여정부는책임이 없는지 고심하는 일이 아닐까. 다시 말해 구조화된 야만과 억압의 원인이 진정 어디에 있고(오로지 이명박 때문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명박만 욕하면 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으로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추모하는 일이 아닐까.

마치 이명박이 노무현에 대한 공분으로 간단히 대통령이 되었듯,

이명박에 대한 공분을 타고 간단히 노무현을 복권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권되는 노무현은 ‘역시’ 실체 없는,

이미지와 스타일만 허전하게 흩날리는 노무현일 뿐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