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피라미드: 그 영원의 시공간을 탐사한다]
[피라미드: 그 영원의 시공간을 탐사한다]
미로슬라프 베르너 지음, 박희상 옮김, 심산문화
보통 이집트 피라미드 하면 사막에서 쓸쓸히 모래바람을 맞고 있는 사각뿔 모양의 구조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여러 면에서 사실과 다르다. 우선 피라미드의 형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각뿔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단독 건축물이 아니라 여러 건축물로 이루어진 전체 묘역의 일부분일 뿐이다. 게다가 피라미드는 죽은 자를 위한 쓸쓸한 공간이 아니라 일년 내내 축제로 떠들썩했던 활발한 삶의 장소였던 것이다.
나일 강변 문화와 델타 문화의 통합이라 할 수 있는 상(上)/하(下)이집트의 통일은 중앙집권을 통해 일대 국력의 신장을 가져왔고, 이는 거대한 건축 사업의 정치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또한 유목 문화와 농경 문화의 결합이라 할 이 상/하이집트의 통합은 세계관, 종교관, 내세관의 상호 틈입을 의미했고, 자연스레 아비도스 형과 사카라 형으로 대별되는 두 개의 무덤 형태는 점차 통합되어 갔다. 이런 과정에서 제3왕조의 2대왕 조세르가 그의 명재상 임호텝에게 자신의 무덤을 짓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이전부터 내려오던 마스타바를 확대 변형시킨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였다.
그 후 한동안 이 ‘계단형 피라미드’가 만들어졌으나 제4왕조 중기에 건설된 스네페루의 피라미드에서 그 형태가 혁명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꺾인 피라미드’라 불리는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피라미드의 모양과 유사한데, 특이한 점은 55도로 매끈하게 올라가던 경사면의 각도가 지상 45미터 높이에서 43도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축조상의 문제가 발생해서 처음의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관 등의 이유 때문에 애초부터 설계를 그렇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스네페루는 또 하나의 피라미드, 일명 붉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형태의 피라미드로는 최초의 것이다.
이와 같이 형태의 변모를 거듭해 온 피라미드는 또한 다른 여러 건축물과 함께 하나의 커다란 묘역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피리미드 자체가 이 복합체의 가장 중요한 건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과 유기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신전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피라미드는 대체로 나일 강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실은 이 나일강 서안에서부터 묘역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하안 신전이 그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죽은’ 왕이 ‘살고’ 있는 사후 궁전의 입구인 셈인데, 커다란 인공 운하가 파여 있어 나일 강과 연결되는 선착장 구실을 했다. 이 하안 신전으로부터 서쪽으로 오르막길 즉 참도(參道)가 이어지는데, 이 길은 장제 신전에 가 닿는다. 이 장제 신전은 입구에 마련된 커다란 홀, 제물을 바치는 널찍한 마당, 왕과 신들의 조각상을 모신 공간, 제수 용품과 제물을 보관하는 저장소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밖에도 피라미드에 따라서는 다른 용도의 신전들이 더 지어지는 경우가 있었고, 심지어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피라미드가 딸려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피라미드 모역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를 최근 정밀히 해독한 결과, 하안 신전의 주변에는 피라미드 관리를 책임지는 행정 기관 및 관리들의 숙소, 세탁소, 빵집, 정육점, 시장터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또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레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매달, 특히 나일 강 범람 후에는 대단히 흥겨운 축제를 벌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피라미드 묘역과 그 주변 지역은 뜨거운 모래바람이나 부는 사막의 죽은 도시가 결코 아니었다. 이곳은 활달한 삶의 현장이었고, 늘 제사와 축제가 열리는 시끌벅적한 장소였다.
이 책 [피라미드: 그 영원의 시공간을 탐사한다]는 이와 같은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피라미드를 그 구조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지하 구조는 어떠했는지, 묘실은 어디에 마련되었는지, 도굴 방지용 시설물은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전체 묘역의 구성은 어떠했는지, 또 그 거대한 건조물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쌓았으며, 그 자재는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등등을 저자의 발굴 경험을 토대로, 또 앞선 연구자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피라미드에 관심을 가졌던 앞 세대들이 남긴 탐사 일화도 마치 논픽션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여기에는 ‘람세스’의 이름을 토대로 로제타 석판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해석해 낸 샹폴리옹의 감격적인 순간도 있고, 세켐케트 피라미드 발굴 과정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동료학자들의 몰이해와 오해로 인해 나일 강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고네임의 비극도 있다. 또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쿠푸의 대피라미드 꼭대기에 자국 국기를 꼽고 “프로이센이여 고결하라!”고 외친 프로이센 탐사대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으며, 개 몇 마리의 싸움이 카이로에 모여 있던 고고학자들의 패싸움으로 번진 서글픈 이야기도 있다.
피라미드 한 기의 측량자료만 모아 놓아도 새로운 피라미드가 생길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모든 피라미드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말일 터이다. 그러나 이 책 [피라미드: 그 영원한 시공간을 탐사한다]는 긴박감 넘치는 발굴의 역사를 기대하는 독자도, 또 나름의 안목을 갖추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전문가도 두루 만족시킬 것이다. 이는 수십 년간 탐사대를 이끌고 직접 발굴 작업에 참여해 온 저자의 강한 집념, 그리고 당시의 축조 상황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미술의 특수 기법 등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도판을 담고 있는 피라미드 연구의 결정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밥벌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량화혁명, 앨프리드 크로스비, 김병화 옮김 (0) | 2005.09.16 |
---|---|
이미지의 문화사: 역사는 미술과 어떻게 만나는가, 피터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심산문화 (0) | 2005.01.14 |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 (0) | 2004.09.21 |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 (0) | 2004.09.13 |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 - 영국 동인도회사 1600~1858 (0) | 200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