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 - 영국 동인도회사 1600~1858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
― 영국 동인도회사 1600~1858?]
(하마우즈 데쓰오 지음, 김성동 옮김/ 도서출판 심산문화 )
주식회사의 기원, 동인도회사를 찾아서
개미 투자자들은 항상 손해만 보게 되어 있다는 게 증권가의 상식처럼 이야기된다. 하지만 주가(株價)의 오름내림에 평범한 대부분의 봉급쟁이들이 일희일비, 노심초사할 정도로 주식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다. 꼭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매일 주가의 변동을 상세히 보고 받는다. 심지어 바다 건너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주가도 매일매일 체크된다. 주식회사 아니고 다른 어떤 회사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현대의 자본주의는 주식회사가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이 주식회사는 언제, 어떤 이들에 의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을까? 놀랍게도 최초의 주식회사는 17세기 초반에 설립된 네덜란드나 영국의 동인도회사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업 형태는 그 후로 200년이 더 지나도록, 즉 1830년대 철도 건설 붐이 일기 전까지는 다른 분야에서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인도회사가 다른 기업들은 채택할 필요가 없던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으고, 새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분배하고, 사원 채용에 전에 없던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근대적 기업체와 식민지배체의 기묘한 결합 ― 동인도회사
동인도회사 이전에 대규모 합자회사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전의 합자회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얼굴을 아는 투자자들이 모여 설립한 것이지만, 동인도회사는 낯선 사람들과 사업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했다. 여기에 더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결정은 선출된 이사들이 내렸고 대부분의 투자들은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주식을 팔거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투자의 익명성’이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주식회사와 다른 형태의 합자회사를 구별해 주는 것은 바로 회사의 ‘영속성’이다. 이전의 합자회사들은 처음부터 해산일을 정하고 시작했다. 정해진 몇 년이 지나면 회사의 모든 재산은 정리되어 투자자들에게 분배되었고, 그러면 회사는 자연스레 사라지는 게 통례였다. 그러나 동인도회사는 기한을 정해 놓고 출발하지 않았다. 일정 기간 후에 회사를 몽땅 처분하여 이를 투자자들에게 나눠 주는 대신 동인도회사는 자본을 계속 축적해 나갔다.
이는 그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혁신’이었다. 산업혁명 후 대량 생산 체제를 도입한 철강, 면방직, 석탄 회사들조차도 가족 기업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드는 사업이란 없었다. 그렇다면 동인도회사는 왜 이렇게 많은 자본이 장기간 필요했던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이는 외국과의 전쟁, 그리고 식민지 건설이라는 거의 주권 국가가 할 법한 일들을 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식회사는 전혀 근대적이지 않은 기업 형태 때문에 생겨났던 것이다.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 ― 영국 동인도회사 1600~1858]는 바로 이 대단히 이른 시기에 출현한 근대적 기업 형태가 식민 경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꼼꼼히 고찰한 수준 높은 연구서이다. 이 책은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영유하기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회사의 인도 통치, 본국 정부의 인도 통치 개입, 인도 통치를 담당한 총독 관료 등 ……에 초점을 맞추었다. 간단히 말하면 기업통치(corporate governance), 즉 정치적 측면에 중점을 둔 동인도회사의 통사(通史)인 것이다.”(10쪽)
인도 통치의 첨병 ― 영국 동인도회사
인도는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획득하고 지배하는 데 전진 기지이자 관리 센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실론(스리랑카), 버마(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은 모두 인도의 군사력이나 인도정부의 외교력으로 영국이 획득한 아시아 식민지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인들은 이러한 영국의 식민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이들 지역의 차?고무?사탕수수 농장 및 논의 개간은 인도인들의 노동력이 아니었으면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영국은 인도인들을 군대에 편입시켜 적절한 때에 이를 가동했다. 동인도회사는 독자적인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장교를 제외한 병사의 대부분은 인도인이었다. 이들은 국내 전쟁뿐만 아니라 버마,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 벌어지는 해외 전쟁에도 파견되었다. 영국이 인도인으로 구성된 군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전쟁은 아무래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00만 명 이상,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200만 명 이상의 인도인이 영국의 승리를 위해 전쟁에 동원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이러한 영국의 인도 식민 통치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기업 시스템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일례로 사원 채용 방식을 들 수 있다. 영업과 행정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던 동인도회사는 자체적으로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의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도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던 공개 시험을 실시해 직원을 채용하기까지 했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확립한 각종 행정 시스템 역시 나무랄 데가 없어서, 이후 영국 정부가 직접 인도를 통치할 때도 그대로 유지되었을 정도다. 또 군사 면에서도 선진성이 두드러져 영국 본토의 해군보다도 앞선 기술을 보유하기도 했다.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 ― 영국 동인도회사 1600~1858]는 이렇듯 영국의 인도 통치에 없어서는 안 될 회사, 영국 동인도회사를 고찰하고 있다. 1601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받은 동양 무역 특허장을 품고 아시아로 향했을 때 동인도회사의 자금력은 겨우 5척의 선박을 보유할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120여 년 만에 세계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0년 후에는 인도에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는 역사상 최강의 상사로까지 발전했다.
'밥벌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라미드: 그 영원의 시공간을 탐사한다] (0) | 2004.11.04 |
---|---|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 (0) | 2004.09.21 |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 (0) | 2004.09.13 |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1) | 2004.09.04 |
이백, 두보를 만나다 (0) | 200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