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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외의 언어사상
1.
이연숙은 <국어라는 사상>의 머리말에서 근대의 독특한 언어 인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소박한 화자’는 단지 ‘말할 뿐’이지 ‘어떤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마치 모어의 규칙에 맞추어 가며 발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런데 ‘말한다’는 행위에 어떤 근거가 요구되거나 어떤 목적의식이 생기면 그때부터 ‘언어’는 우리들의 ‘말한다’는 소박한 행위에 앞서 존재하는 실체로서 군림하게 된다. 이는 곧 ‘인간으로부터의 말의 소외’라 부를 만한 현상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전달의 수단이자 도구라는 인식도, 또 언어를 민족정신의 정수로 간주하는 언어 내셔널리즘도 모두 이런 ‘말의 소외’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연숙은 이를 “동일한 언어 인식 시대의 쌍생아”라고 했다. 언어를 단지 도구로 보는 관점과 언어를 민족의 얼과 관련짓는 태도. 서로 적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듯한 이 둘이 사실은 같은 언어 의식의 소산이라는 이 입장은 ‘언어적 근대’를 규명하는 데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발화 상황과 조건으로부터 독립해서 자립적인 체계를 가진 ‘언어’를 ‘발견’해 내고야 만 근대 언어학 역시 이 ‘소외의 언어 사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기대고 있음은 물론이다.
2.
이와 같은 이른바 ‘소외의 언어 사상’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이때의 전제라고 하는 것들이 반드시 ‘소외의 언어 사상’에 앞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전제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발화 조건과 상황으로부터 독립된, 그리고 스스로 자립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 ‘언어’를 발화/사용할 주체가 필요하다.
이 발화 주체는 계층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또는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가정되)는 균질적인(평등한) 사람이다. 또는 그렇게 교육되어야 하고 취급되어야 하는 그 ‘누구’이다. 그런데 이때 이들을 교육하고 취급하는 것은 국가/민족이다. 따라서 자율적인 이 ‘언어’를 발화하는 주체는 특정 국가와 민족에 의해 주체화되는 균질적 시민인 것이다. 또한 이 균질적 시민들에 의해 보장 받는 것이 근대적 주권 국가이다.
3.
이와 같은 설명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소외된 주체’가 ‘자율적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즉 근대적 주권을 가진 국가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다른 국가가 가진 것과 조금도 차별 없이 동등한, 동시에 국경 내에서는(그리고 거기에서만) 어느 지역에서나 어느 사람에게나 균질적으로 작용한다는 주권은 매우 새로운 개념이었다. 중세적인 권력은 서구에서든 동아시아에서든 제국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옅어지는 것이고 그 경계도 희미했다. 그러나 근대 국가에서는 어느 공간에서든 주권이 균질적으로 작용해야 하고, 이러한 곳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라야 비로소 ‘사회’라는 말로 개념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쉬르의 언어학(랑그)이 뒤르케임의 사회학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앞서 언급한 새로운 개념, 즉 균질적 공동체로서의 사회와 이를 보증하는 국가라는 개념이 ‘소외의 언어 사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소쉬르의 랑그는 근대적인 사회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보편어 - 속어’의 구도가 중세적인 사회 질서를 바탕으로 유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4.
이러한 요소들을 관통하는 일정한 흐름이 있으니, 이는 대상을 균질화하여 사고하고 측정하고 의미부여 한다는 것이다. 주체 역시 균질한 주체이고(근대적 시민),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 및 시간도 균질적인 것이어야 하며(대수학적으로 계량화한 시공간), 또 언어도 자체로 균질적이어야 한다.(고전어의 우위는 인정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바로 근대를 특징짓는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근대의 여러 담론들이 특정 자리에 배치되고 다른 것들과 연관 지어지는 과정에서 매우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는 곧 근대의 담론을 분배하고 절단하고 배치하는 심급에 이 ‘균질화’라는 전략이 존재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근대적 담론에서 새로 발견되고 고안된 주체, 개념, 전략 들을 분석해 낼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고찰하려는 담론의 대상, 즉 ‘자율적 실체로서의 언어’가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담론 분석에서 고려해야 할 것으로 꼽은 것이 바로 이 네 가지, 즉 대상, 주체, 개념, 전략이다. 이 연구가 담론 분석에 그 기반을 두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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