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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실체로서의 언어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결코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된 적이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는 노동(인간),토지(자연), 화폐(매체!)가 상품으로서 시장에 편입되기 시작하는 19세기에 ‘자율 시장’이라는 관념이 나타났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의 영역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제, 다시 말해 스스로의 조절 기능으로 작동하는 자율적인 시장이란 개념이 얼마나 새롭고 기발한 것이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포트래치에 관한 말리노프스키의 설명과 같은 인류학적 연구를 토대로 시장의 등가 교환이 유일한 또는 주요한 거래의 방식이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며 또한 보편적인 것은 더더욱 아님을 설명한 폴라니는, 각종 역사적 사건과 자료를 통해 18세기까지도 노동이나 화폐, 토지와 같은 것을 시장에 전적으로 내맡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이들을 가급적이면 시장으로부터 멀찍이 떼어 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사실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의 주요한 이념이었던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이 스스로의 메커니즘을 자율적으로 조절한다는, 다시 말해 정치의 영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시장이 그 내재적인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 화폐, 토지가 상품으로서 시장에 완전히 편입됨으로 해서 완성된 이 ‘자율 시장’(이라는 개념)은, ‘사탄의 맷돌’이 되어 사회의 모든 요소를 갈아 버리는 절망적인 결과를 초래했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오언을 시초로 하는 사회주의 운동이나 금태환 중지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이 자율 시장이라는 맷돌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때에 비로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사회’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에 대한 폴라니의 언급은 언어에 대한 근대적 인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근대 언어학의 기본 가정은 언어에 내재적인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고(그것을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가 ‘랑그’이든 아니면 ‘컴피턴스’이든), 그 내적 규칙을 규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기본 과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들 자율언어학이라고 부른다. 이 자율언어학에서는 화자나 청자, 발화 상황이나 사회적인 맥락 등과 같은 요소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고려함 없이 언어의 자율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 보다 ‘과학적’인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언어를 자율적인 무엇으로 보기보다는 철학이나 논리학, 또는 문헌학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했고, 동아시아에서 역시 언어가 그 자체로 탐구 대상이 된 적은 없고, 경전 해석학인 대학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근거를 부여 받을 수 있었다. 즉 훈고학이나 문자학, 성운학, 더 나아가 고증학이라는 소학의 맥락에서야 비로소 언어에 대한 논의는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는 언어에 자체적인 메커니즘이 있어서 자율적인 그 무엇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논의 자체가 애시 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19세기 후반,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기가 되면 이러한 인식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자율언어학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이 타나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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