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 위화 <인생> / 서동욱 <차이와 반복의 사상>

pourm 2025. 8. 5. 18:02

1.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2019
세련되고 깔끔한 문체는 젊은 직장 여성을 상징하는 듯한 세련되고 깔끔한 시선의 주체와 동형적이다. 
그 주체의 시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세련되지도 깔끔하지도 못한 한국사회의 추접스러움, 혹은 너저분함. 매끈하게 마름질하고 싶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 지저분한 얼룩과 울퉁불퉁한 표면들...

대체로 주체의 시선에 의해 남성의, 상사의, 대표의 우스꽝스러운 너스레와 몸짓이 냉소의 대상이 되지만, 
의외로 주체의 시선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통제 가능하거나 한수 아래로 보이던 이들의 역습.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쯤은 이제 잘 안다는, 세련된 매너로 그것을 손수 실행하고 있다 믿고 있던 순간, 내가 모르던 전혀 다른 진실이 있다는 깨달음에 무장 해제.

여기저기서 이름이 들리는 작가라 그의 대뷔작을 읽었다.
흔히 하는 애기로 재기발랄한 문체와 감각에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면 '지금 소설' 읽기에 성공한 느낌.


2.
위화, <인생>, 백원담 옮김, 푸른숲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운 적이 있던가.
안경을 벗고 짧은 소매를 잡아끌며, 또는 주머니에 구겨진 손수건을 찾아 연신 눈가를 훔쳤다.

국공 내전과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중국인들의 처연한 삶이 펼쳐진다.
소를 데리고 논을 갈며 낭랑하게 소리치던 푸구이의 모습이, 그리고 하나 같이 그의 손으로 묻어준 그의 가족들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푸구이의 부인 자전과 그의 딸 평샤, 아들 유칭과 사위 얼시, 그리고 외손자 쿠건.

이 소설은 마오 치하에서 중국 인민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고 부수어지는 것으로 그린다.
푸구이의 아들이 헌혈하러 갔다가 온몸의 피를 남김 없이 빨려 죽어가는 모습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의 사위는 시멘트판 사이에 끼어 납짝하게 눌려 죽고, 배곯던 그의 손자는 갑자기 많은 양의 콩을 먹고 배탈이 나 죽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은 그러한 절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삶을 긍정한다. 

마오의 공과를 공7 과3이라고 한다던가?
그러나 이 소설은 마오에게 도무지 공이라는 게 있는가, 라고 묻는 것만 같다.
90년대에 나왔다는 이 소설은 마오 치하를 황당하고 어이없는 시절로 그리는 꼭 그만큼 마오를 극복한 덩사오핑 이후의 중국을 무한히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록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것은 마오 치하 중국 인민의 그 어처

3.
서동욱, <차이와 반복의 사상 -  들뢰즈와 하이데거>, 서강대학교출판부, 2023
코기토라는, 주체의 이성(동일성)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데카르트주의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부정을 통한 지양을 거부한다는 반헤겔주의를 공유한다.
하이데거와 들뢰즈의 이러한 두 가지 공통점이 전자는 '차이', 후자는 '반복'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된다.
기대를 갖고 펴들었으나, 아무래도 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2025.7. 倡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