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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분 고이치로, <중동태의 세계>, 동아시아에 대한 메모

고쿠분 고이치로, , 동아시아에 대한 메모1. 고대 그리스어에 남아 있던 중동태라는 동사의 굴곡 범주를 통해 논의를 전개.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서 구분한 10개의 범주 중에 1~6은 명사, 7~10은 동사에 관한 것. 7, 8번은 그 가운데 중동태에 관한 것. 에밀 방브니스트는 아리스토텔레서의 이 범주 구분은 그리스어 있던 문법 형태에 의해 영향 받은 것이라고 주장(). 이에 대한 데리다의 반박, 혹은 트집잡기. 중요한 것은 인도유럽어에는 원래 능동-중동의 구분이 기본이었다가 중동이 쇠퇴하여 능동-수동의 이분법이 주가 되었다는 것. 지금 일반화된 능동-수동의 아니라, 본래의 능동-중동의 관점에서 사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 2. 중동은 주어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가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 내부에..

책일기 2026.04.22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팬하우어>, 이화북스

이 달의 책 (4월) , 뤼디거 자프란스키, 이화북스 칸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감각의 형식과 오성의 범주)을 정초함과 동시에 인간 이상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선험적 조건 저 너머에 있는 '물자체'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물자체'는 따라서 말끔히 해결할 수 없는 일종의 '잔여물' 같은 것이다. 체계가 결코 해명할 수 없으나 그것 없이는 체계가 와해되는 핵심적인 요소. 그러나 칸트의 후계자들, 즉 독일 관념론을 이끈 피히테, 셀링, 헤겔은 이 잔여물을 철학의 체계에 남겨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자체'를 해명하고자 했다. 예컨대 피히테의 자아 철학. 피히테는 칸트의 날카로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의 '자아'는..

책일기 2026.04.06

마르셀 모스 / 앙리 위베르, <주술론>, 파이돈

이 달의 책 (3월) 마르셀 모스 / 앙리 위베르, , 파이돈 프레이저는 에서 주술의 본질이 (초자연적현상/신을) 강제하고 속박하는 데 있다면, 종교는 (신을) 달래고 회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비해 마르셀 모스는 에서 주술의 본질이 (대체로 비밀스러운) 저주에 있고, 종교는 공적/제도적으로 신적 존재를 숭배한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주술 역시 종교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공동체의 집합적 표상이 전제된다. 강제나 속박도, 달래기나 회유하기도, 또한 저주든 숭배든 그러한 행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의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와 결합된 특정한 언표(utteranc)가 전제된다. 조건을 갖춘 사람(주술사/성직자)과 미리 정해진 의례. 특정한 조건과 결합된 언표. 그때 저주와 기도는..

책일기 2026.04.03

애나 로웬하울트 칭,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이 달의 책. (2월) , 애나 로웬하울트 칭, 현실문화 왜 버섯인가? 버섯과 나무가 맺는 상리공생의 관계. 염색체의 유전자를 찾아 떠난 진화생물학의 성공은 독립된 개체를 의심할 수 없는 기본 단위로 삼게 했다. 그러나 버섯의 생태는 독립된 개별 단위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사유를 대체하기 위해 들뢰즈/가타리가 뿌리줄기(리좀)를 강조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송이버섯과 소나무가 주변 환경과 맺는 생태적 관계. 특히 폐허에서 돋아나는 삶의 관계.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인간에 의해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더 나아가 송이버섯과 관계 맺는 채취인의 삶. 미국 북서부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송이를 채취하는 아시아계 이주민들. 인도차이나 전쟁의 트라우마와 자유, 시민권이 송이 ..

책일기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