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분 고이치로, <중동태의 세계>, 동아시아에 대한 메모

1.
고대 그리스어에 남아 있던 중동태라는 동사의 굴곡 범주를 통해 논의를 전개.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아르가논)>에서 구분한 10개의 범주 중에 1~6은 명사, 7~10은 동사에 관한 것. 7, 8번은 그 가운데 중동태에 관한 것.
에밀 방브니스트는 아리스토텔레서의 이 범주 구분은 그리스어 있던 문법 형태에 의해 영향 받은 것이라고 주장(<일반언어학의 제문제>). 이에 대한 데리다의 반박, 혹은 트집잡기.
중요한 것은 인도유럽어에는 원래 능동-중동의 구분이 기본이었다가 중동이 쇠퇴하여 능동-수동의 이분법이 주가 되었다는 것.
지금 일반화된 능동-수동의 아니라, 본래의 능동-중동의 관점에서 사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
2.
중동은 주어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가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
푸코의 권력과 폭력의 구분. 권력은 본질은 양생. 직접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행위하게 하는 것.
과연 인간의 행위는 주체의 의지에 의한 것인가. 그때의 의지는 어느 정도나 말 그대로 주체의 의지인가.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사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주체의 의지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자로서의 그에게 근대적 의미의 '책임'을 묻고자 할 때 비로소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3.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데리다와 들뢰즈를 거쳐 이 논의의 최종 도착점은 스피노자의 존재론-윤리론.
신 즉 자연. 개체는 신적 속성의 표현.
개체의 변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외부 자극에 의한 변양. 2)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양. 정동의 문제.
2-1) 개체 자체의 본질을 넘어서는 변양(수동/슬픔=코나투스 상실/저하) 2-2) 개체 자체의 본질을 넘어서지 않는 변양(능동/기쁨=코나투스 보전/향상)
이는 결국 자유VS.강제의 문제에 연결됨.
4.
행위를 주체의 의지로 파악하는 근대적인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
약물을 끊지 못하는 것은 의지박약이 원인인가?
의지의 문제와 관계 없는 중동태적 사태에 주목해야 할 필요. 그리고 그것을 스피노자적 존재론/윤리학으로 해결하자는 것으로 해석됨.
기본적으로 의지의 문제에 대해 아렌트(과거와 단절된 순수한 의미의 의지 강조)와 대립하면서도 결국 아렌트에 크게 의지하는 논지 전개가 매우 인상적임.
그러나 이 책에서는 능동-수동 / 타동-자동 / 주동-사동-피동 등의 몇 가지 문법적 층위의 문제들이 구분되지 않고 뒤엉켜 있음.
5.
수행성(발화에 수반하여 솟아오르는 행위/사건/의미)이라는 주제를 스피노자 철학과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데 의미를 두고 싶다.
발화수반력은 결국 신체의 변양 능력과 겹쳐지는 것이 아닐까.
약속/사과/명령/저주/주술/애도에 의해 너와 나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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