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잭 구디, <야생 정신 길들이기>, 푸른 역사

pourm 2026. 2. 3. 19:16

1.
'야생 정신 길들이기'라는 이 책의 제목은 명백히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겨냥해 지은 것이다. (한국어판의 '정신', '사고'는 모두 'mind'에 해당하는 단어를 번역한 것)
기존의 인류학이 '원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자신(문자 사회)의 범주와 개념, 지식의 체계를 활용하였다는 점, 그리하여 실체에 완전히 잘못 접근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그 비판이 향하는 과녁에는 뒤르케임과 레비스트로스는 물론이고 말리노프스키, 모스와 같은 이들도 포함된다.
독필 사회의 특징인 도표, 도식, 리스트를 활용한 구술사회 이해는 과연 정단한 것인가?

2.
구술성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예컨대 호메로스 서사시의 이른바 '공식'은 그러나 문자사회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 (왈터 옹 역시 구술성의 특징이라고 본 서사시의 공식) 
구술 서사시의 공식이 문자로 기록된 서사시에 그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니라, 문자로 읽고 쓰기가 가능해지면서 생겨난 사고체계가 그런 공식에 반영된 것일 수 있다는 설명. 
일정한 발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분석하고 거기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고 표준화시키기란 문자로 읽고 쓰는 문화에서나 가능하다는 것.

3.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적인 업적 중의 하나인 논리학, 수사학, 그리고 그 이후에 발달한 문법(학)은 문자가 지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 발달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서의 문자에 대한 관점, 태도의 차이.

4.
"우리는 앞에서 입말 문화의 개념 체계들을 분석하기 위해 도표를 사용하는 것의 한계점들을 알아보았는데, 그런 한계점들은 도표 자체가 독필 문화의 산물인 동시에 독필 문화가 형성되는 데 이바지했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도표는 종렬들(또는 목록들)과 횡렬로 이루어진 고정된 모형이다. 이것들의 표면적인 배치 관계들은 흔히 동일성(유사성이나 등가성)이나 대립성(이나 양극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것들의 가능성은 병치된 항목들의 극단적인 관계들을 재현할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문자 기록의 공식은 발언의 유동성을 조롱하는데, 왜곡함과 동시에 증식하는 방식으로 조롱한다." (235쪽, 맨 첫 부분 약간 수정. "도표의 한계점"->"도표를 사용하는 것의 한계점")
발언의 유동성을 조롱하는 문자 기록의 공식: 발화심급 소거로서의 언문일치체

5. 
서아프리카 로다가어에는 '단어'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옐비에yelbie라는 말. 어린이, 또는 씨앗을 뜻함. 현대적인 학교의 교사들이 이 말을 '단어'라는 용어로 사용.
발언의 어떤 파편들을 뜻하기도 하고 노래, 문장 주제의 '형태원소'(형태소?), 문구, 구문을 지시하기도 함.
발언의 조각. 
애초부터 단어라는 개념도, 발언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 발언의 흐름을 조각들로 분리할 수 있을 뿐. 
"문자 기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발언을 분석, 분해, 해체하여 전체적으로 유형별로나 범주별로 재조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유형이나 범주들은... 의식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언 자체에 대해 피드백 효과를 발휘하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은 단어들로 ... 말하고 주어, 동사, 목적어로 구성되는 문장 ... 같은 문법과, 동사와 형용사 같은 품사들을 자각한다." (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