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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케네스 포메란츠·스티븐 토픽 지음, 박광식 옮김)
‘유럽 중심주의’를 거부한다 -교역사로 본 세계사
우리는 유럽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럽 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있다. 세계사를 은연중에 서양사와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산업화는 자체 동력으로 완성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의 자본주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 현제의 세계경제(Global Economy)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러한 유럽중심의를 여지없이 혁파한다. 유럽이 세계 경제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일 뿐이고, 그 훨씬 이전부터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의 상업망이 유럽 경제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럽인들은 이 네트워크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 났던 사람들에 불과하고…….
뿐만 아니라 저자들은 요즘 운위되고 있는 세계화가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이전에는 독자적이고 고립되어 있던 여러 사회가 유럽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비로소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여러 개의 중심을 가진 복잡한 문화간 네트워크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최소한 1400년대부터는 세계체제가 작동하고 있었고, 이 속에서 각 문화권들이 서로 협력하고 갈등했으며, 혹은 폭력으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기도 했다(주로 유럽인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세계사를 바라보는 이 책의 기본 입장이 세계체제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저자들 스스로의 언급(17쪽)을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에 소개한 저자들의 관점으로부터 최근에 번역 출간된 ?리오리엔트?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리오리엔트?의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이 책(?커피, 설탕, 그리고 폭력?)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포메란츠의 연구를 자신의 저서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으며 대체로 그와 입장을 공유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리오리엔트?가 대체로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면 이 책은 76가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예화들로 세계경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크의 책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이민자와 상인, 무역업자와 수액 채취인, 해적과 사략선(약탈을 합법적 허가받은 배) 선장, 발명가와 생산업자, 뱃사람과 노예, 기업가와 기술자, 모험가와 광고주, 가우초(팜파스의 목동)와 구아노(칠레 해안에 쌓여 있던 새들의 배설물) 선적인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세계경제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배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서 거래되는 품목 역시 설탕과 커피, 차, 담배, 코코아, 면화, 감자, 땅콩, 쌀, 비단, 은, 금, 연지벌레, 노예, 무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모두 세계경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중요 소품들이다.
일테면 루이 14가 귀족들과 커피를 마시는 궁정 연회에서도 세계경제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커피는 예멘의 주요한 항구 도시 모카에서 사온 것이고, 여기에 치는 설탕은 아프리카의 상투메 섬이나 남미의 브라질에서 운영되는 노예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가톨릭 국가의 왕궁에서 음미되던 이 무슬림들의 음료가 중국 도자기에 담아져 있었으니, 세계경제는 이미 일정한 단계에 진입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교역과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지금 사용되는 철도 궤간이 왜 로마 시대의 도로 폭과 같게 되었는지, 깡통이 만들어지고 나서 깡통따개가 만들어지기까지 왜 6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최초의 주식회사가 사실은 해적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 표준시가 정해지는 험난한 과정, 타자기 자판이 일부러 느리게 쳐지도록 고안된 사정들도 알려준다.
이와 같이 이 책은 기존의 세계사 서술이 안고 있던 유럽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징한 사례들로 세계경제의 형성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대중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중심의 세계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을 강조함으로써 현금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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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두보를 만나다
이백, 두보를 만나다
이백과 두보의 삶, 그리고 이들의 문학은 어디에서 만나고 갈라지는가
“이백과 두보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시기에 살았다. 똑같이 당시 중국의 언어와 시적 형식을 이용하여 선비 세계에서 시를 지었으며, 마찬가지로 각지를 방랑하다 생애를 마쳤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의 시는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로 각각 전혀 다른 경지를 전개하고 있다.”(321쪽)
1. 이백과 두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동양 문화의 자장 안에 있는 사람치고 이백과 두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나라 중기에 활약한 이 두 시인은 시선(詩仙), 시성(詩聖) 등으로 불리며 천 년이 넘도록 큰 영향을 미쳐 왔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 두 인물의 이름은 매우 친숙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술을 좋아한 이백의 시가 호탕하고 환상적인 데 비해 두보의 시는 사회현실을 극명하게 담아냈다는 정도, 그리고 그들이 남긴 몇 수의 시를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이백과 두보가 갖고 있는 그 대중적인 명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독서계는 이제껏 그들을 거의 무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백, 두보를 만나다?는 이백과 두보의 삶, 그리고 문학을 매우 세밀하게 짚어 내는 한편, 일반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이백과 두보에 대한 어렴풋한 짐작이 사실은 상당 부분 근거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던 이백과 두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이백과 두보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호방하고 은자적 풍류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는 이백, 그리고 국가와 민중의 안위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두보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젊은 날 관직을 구걸하기 위해 세력가들의 집에 드나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불세출의 시인 두보가 사실은 산문에는 전혀 무능해서 시 외에는 다른 글을 거의 쓰지 못했음도 알게 된다.
물론 ?이백, 두보를 만나다?는 이백과 두보에 대한 기괴한 정보를 모아 놓은 책이 전혀 아니다. 전반부에서는 이백과 두보의 삶을 철저히 고증, 복원해 냈고,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시편들을 섬세히 검토할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시형에서 더 두각을 나타냈고 어떤 형식에서는 다소 뒤처지는가 하는 점까지 밝힐 정도로 깊이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고체시, 근체시, 가행, 악부, 율시, 절구, 배율 등 당시(唐詩)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백과 두보의 삶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당나라 중기의 역사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후와 중종 시대를 마감한 현종과 그의 아들 숙종 대의 정치 상황, 당시의 관리 등용 제도, 도교와 황실의 관계, 안사의 난의 전개 과정, 당나라의 이민족 정책 등이 두 시인의 삶 혹은 문학과 교차되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좀 더 여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 실린 이백?두보 관련 지도를 직접 더듬으며 이 두 시인이 살아낸 삶의 족적을 그 현장에서 직접 되짚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이백과 두보가 만나는 곳과 갈라지는 곳
이백과 두보가 만나는 곳 ―
?이백, 두보를 만나다?는 실제로 이 두 시인이 낙양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거대한 두 봉우리가, 그것도 삶의 대부분을 방랑 생활로 보낸 두 사람이 광활한 중국 대륙의 한 지점에서 딱 마주쳤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꼭 이런 구체적인 대면이 아니고도 이 둘의 삶에서는 여러 접점이 발견된다.
두 시인 모두 일찍이 관직에 뜻을 품고 고관이나 실력자의 집에 드나들며 시를 지어 바쳐 눈에 띄기를 고대했다. 비굴하게 세력가들을 터무니없이 높여야 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는데, 자신을 앵무새에 비유하기도 하고(이백, 92쪽), “아침에는 부자의 문을 두드리고, 저녁에는 귀공자의 말에 묻은 먼지를 털며, 남은 술과 식은 고기, 어디를 가나 괴로운 심정”(두보, 138쪽)이라고 노래하기도 했던 것이다.
10여 년 만에 어렵사리 관직을 얻게 되지만 처세가 서툴러 곧 관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는 것도 매한가지다. 이로 인해 둘은 10여 년 동안 여러 지역을 방랑하게 되는데, 이들은 정작 어느 한곳에도 안주하지 못하면서 중국 전역이라 할 정도의 머나먼 거리를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도 포부도 없이 헤매고 다닌다. 관직을 얻기 전에는 중앙 고관들에게 벼슬을 구걸했다면, 관직을 잃고 난 후에는 지방 관리들에게 생활을 의지하는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또 그들의 삶이 안사의 난이라는 당시의 엄청난 역사적 소용돌이에 본의 아니게 휘말려 들어갔다는 것도 동일하다. 이백은 방랑중에 안사의 난을 만나는데, 촉으로 도피한 현종의 16번째 아들 영왕의 군대에 참여했다가 반역의 무리로 지목당해 죽을 고비를 맞기도 한다. 두보의 경우에는 어렵사리 관직을 얻은 후 가족을 데리러 간 사이 안사의 난이 발발하는데, 그 와중에 반군에 의해 장안에 억류되기도 하고 현종 계열로 분류된 방관 일파로 지목되어 관직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된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현종으로서도 숙종에게 양위를 할 리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두보의 삶도 예상치 못하게 굴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방랑중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백은 술에 취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고 하고, 두보는 오랜만에 얻어걸린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만 배탈이 나 죽었다고도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백은 방랑 끝에 신세를 지기 위해 찾아간 당도현 현령의 집에서 옆구리가 썩어 들어가는 병으로 객사한다(서기 762년, 향년 62세). 학질과 천식, 중풍 등으로 고생하던 두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배를 타고 상강을 내려가다 악주 근처에서 생애를 마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770년, 59세).
이백과 두보가 갈라지는 곳 ―
이백과 두보는 (잠깐이기는 하지만) 실제 만나기도 하고 서로를 격려해 주기도 했으며, 또 위에서 본 것처럼 유사한 형태의 삶을 살았지만, 실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그 출신이 달랐다. 두보는 대대로 관리를 지낸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이백은 그 가계가 불분명하다. 아버지는 성도 이름도 확실치 않은 상인으로, 이백이 4~5세 무렵 서역에서 촉으로 이주해 성을 이씨로 바꾸었다고 한다(이 때문에 이백의 아버지가 이민족 출신이거나 수배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계층상의 차이는 두 사람의 인생의 향방과 구체적 모양새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우선 관직에 나가기 위해 두보는 당연히 과거를 염두에 두게 되지만, 이백은 가계가 불명확해 과거를 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백은 처음부터 유력자의 추천(몇 번 시험에서 낙방한 두보 역시 이 길을 택하게 된다)이나, 왕실과 유착되어 있던 도교 교단을 통해 조정에 진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결국 이백은 도사 오균의 추천으로, 따라서 도사의 신분으로 천자를 알현하게 된다.
이 가계의 차이는 단지 조정 진출 과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평생 이루고자 한 꿈과 희망에서부터 서로 큰 차이가 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출신의 상이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민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백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화려한 옷을 입고 퇴청하여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호사스런 생활이었다(?고풍? 제18수, 265쪽). 또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 선비의 세계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그에게, 왕실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무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로 왕실을 섬겨온 관료 가문 출신의 두보는 달랐다. 왕조의 성쇠가 그의 집안 및 자신의 성쇠와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와 인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가 꿈꾸었던 삶은 전쟁의 참화가 없는 평화로운 사회와 그 속에서 유지되는 행복한 가정이었다(?위팔처사에게 드림?, 274쪽). 이백이나 두보 모두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 그 목적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백과 두보는 가족을 대하는 모습도 전혀 달랐는데, 예를 들어 이백은 네 명의 아내를 두었으나 모두에게 냉담했고 두보는 단 한 명의 아내만을 두어 평생 소중히 아꼈다. 이는 주위 사람에 대한 태도로도 연결된다. 이백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하나뿐이었지만, 두보에게는 주위 사람도 자신 못지않게 소중했다.
하지만 이 역시 둘의 개인적인 인격과는 관계가 없다. 두보는 극소수의 혜택 받은 선비 가문의 출신으로서 일족도 모두 나름의 지위를 가진 관리들이었으므로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에 비해 이백은 애초부터 서로 이끌어줄 친척도 동료도 없이 끝까지 고군분투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교유관계도 달랐는데, 이백은 가는 곳마다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지만 또 금방 헤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에 비해 두보는 교제의 범위는 좁지만, 몇 안 되는 벗들과 깊은 친교를 유지했거나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백과 두보의 관계에서도 그런 각자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이백은 두보를 곧 잊은 듯하지만 두보는 두고두고 이백을 떠올리며 전달될 가망성이 없는 편지를 시로 짓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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