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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
1.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틀이 필요하다. 그것이 프레임이든 담론이든.
<대학>에서 얘기하는 <格物致知>의 <格>도 <物>에다가 일정한 격자를 가져다 댄 후에 <앎>이 가능해진다는 것 아닌가.(물론 한유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자에 이르기까지 정통학설은 <격물>을 <물에 다가간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라지만.)
칸트의 선험적 범주 역시 그것이다. 이를 두고 러셀은 빨간색 안경을 쓰면 빨갛게, 파란색 안경을 쓰면 파랗게 세상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주명리학 역시 세상을 읽고 나의 삶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해석해내는 하나의 틀이다.
온 세상을 하늘에서 땅 끝까지, 인간이든 사물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모두 화폐, 교환가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물론 하나의 해석이다.
민족이나 신, 또는 과학이나 아름다움 등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진 해석의 틀 역시 자고이래로 무수히 많다.
요컨대 사주명리학 역시 그런 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타로점이나 별자리점도 비슷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주명리학은 우주적 배치와 관련을 맺는다.
목화토금수라는 오행과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입계), 지간(자축오미진사오미신유술해)이라는 순환적 시간관념이 결합하여 완성되는 것이 사주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의 우주적 배치가 내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
그리고 이 사주명리의 기본 개념은 인간의 신체에도 그대로 결부된다.
예컨대 사주상 일간이 木인 나는 간의 기운이 좋다. 간-심-비(위)-폐-신의 오장은 목-화-토-금-수의 오행과 같이 연동되기 때문이다.
2.
사주명리학을 운명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고 인생에 대한 해석으로 본다는 말은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일간이 木(그 중에서도 乙木)인데 나의 다른 사주 가운데 (木이 극剋하는) 土가 있어야 재물운이 있다. 그런데 나는 土가 하나도 없다. 재물운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원래 돈을 벌 팔자가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土가 없는 대신 다른 것들이 골고루 있다. 4주8자이므로 한 사람의 사주에는 오행이 8개가 있는데, 하나는 일간(자신을 뜻함)이고 나머지가 7개가 이 일간과 관계를 맺으며 운명을 결정한다. 내 경우에는 일간이 木이고, 그 외에 金이 둘, 水가 둘, 木이 둘, 火가 하나씩 있다.
水는 木을 生하는 것으로 공부운에 해당한다. 아 그렇구나, 돈 생길 데는 없어도 공부는 평생할 수 있겠구나! 대체로 예의바르다는데, 뭐 그건 그냥 그렇고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는단다. 사주명리학에서는 본인(의 일간)을 生하는 것으로 공부와 부모 그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를 꼽는다. 그래서 공부과 어머니가 같이 간다.
金은 木을 극(剋, 이기다)하는 것으로 관운에 해당한다. 어느 조직에서 잘 버텨날 팔자라는 것. 또는 (옛날 말로) 의식화 조직화를 잘 한다는 것. 은근히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것은 그래서...
木이 生하는 火는 기본적으로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서 이런 운이 있으면 말을 잘하거나 끼가 있고, 아니면 먹을 복이 있다. 그리고 자식운이 함께 간다. 나는 火가 하나 있으니 뭐 그럭저럭...
나의 일간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木인데 이 木이 다른 사중에 있으면 친구나 경쟁자, 혹은 형제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경쟁자가 많은 것으로 나온다. 라이벌들이 즐비해서 괴롭기도 하지만, 어쨌든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두고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니까....
재미있는 것은 재물운, 공부운, 관운 등등이 가족 관계와 함께 간다는 것.(육친법)
예를 들어 남자는 재물운과 배우자의 운이 같이 간다.
그리고 여자는 관운과 배우자 운이 같이 간다.
예전에 결혼은 남자에게 노동력 하나가 생짜로 생기는 것이므로 재물운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또 여자가 새로운 조직에 가서 잘 적응하냐, 그 조직이 쓸만하냐 하는 것은 관운이면서 배우자 운일 수밖에 없다. 대갓집 살림을 좌지우지하던 안주인은 전통사회 여성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
3.
사주상으로 나는 서른아홉에 대운(帶運)이 있다.
인생살이가 크게 바뀐다는 것.
서른아홉 초에 학위를 했고 그해 말에 지금의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몸에 침과 뜸을 놓고 있다. 처음에는 수태음폐경을 다스리는 데 주력했고 오늘 아침에는 족삼리에 침을 꽂았다.
나는 지금 삶의 한 문턱을 넘고 있는가.
스무 살 언저리에 정치경제학과 우리말본을 읽으며 발견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격자 속으로 들어가는 문턱. 그때는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앞에서 멈칫거리고 주저하고 있는 것인가.
육친법으로 봤을 때, 일간을 生하는 인성(印星)의 운이 있다지 않은가. 내 사주에는.
자꾸 공부하여 새로운 틀을 끝없이 접하는 것이 내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2013.3.29. 昌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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