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에그베이컨

pourm 2007. 10. 19. 23:09

1.
맥도날드에서 애그베이컨이란 놈으로 해장을 하고 조계사 앞에서 그를 태워 보낸 후,
나는 오랜 동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왼쪽 뺨에 남아 있는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내내 나는, 사람 없는 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10/5)


2.

참치는 입에서 겉돌았고, 후배는 편안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그가 이미 오래 전에 강을 건넜다는 걸 알았고, 나 역시 /도강/을 감행했다.
인적 없는 밤거리는 차가웠으나, 그의 발걸음은 뜻밖에도 들떠 있었다.
애그베이컨 해장은 두번 째만에 제법 익숙해졌고, 돌아오는 길 내내 읽히지 않는 책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10/12)


3.

하늘공원에서 야경을 볼 수 있는 건 일년 중 열흘 정도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으나 즐거웠고, 날씨는 예상보다 시렸으나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한대수의 갈라진 목소리를 잠시 들었다.
그는 크림트의 그림을 뵈주었고, 나는 콜비츠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아마 절대로 한대수같은 히피가 되지는 못 할 거다.
하지만, 한대수와 콜비츠 사이 그 어디에 크림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10/14)


4.

친구들은 진정으로 즐거워했다. 맥주 맛은 여전히 좋았고, 적당히 소란했다.
그의 당돌함에 친구들은 속수 무책이었고, 나는 즐거웠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닭도리탕이 조금 달았는지 어땠는지도 모르고 히죽거렸던 것 같다. 내내.
벌써 계절이 바뀌려나 아님 깊어 지려나, 비가 내렸다. 하늘이 비치는 우산을 쓰고 걷는다. 
투명하고 맑은 그와 함께.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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