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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와 맥주를 한잔 했다. 지도교수 흉을 한참 보다가, 또 그이에 대한 서글픈 변호를 서로에게 나누었다. 그 친구나나나 그이가 없으면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고 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전혀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거나. 맥주는 배가 불렀고, 훈제맛이라던 닭은 기름냄새가 역했다. 그래도 수업 끝내고 그것도 같은 처지에서 지도교수 흉을 봐가며 술을 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 행복이다. 그럴 수 있는 이들이 제법 많던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수요일
베트남에서 온,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선배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했다. 외국인이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 그도 한국인 친구는 처음이라고 한다. 삼겹살은 달았고 쏘주는 입에 붙었다. 나만큼이나 시골틱하게 생긴 그는 나와 동갑이다. 갑 친구를 대학원에서 만난 건 참으로 오랫만이다. 둘이 술을 먹다 하나가 졸면 나머지 하나는 황당하다. 내가 그를 황당하게 했다. 다음날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우린 친구니까 괜찮소.
목요일
점심. 일본에서 온 친구와 중국에서 온 친구와 교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은 한없이 늦었고, 우리의 얘기는 한없이 이어졌다. 그 둘은 나보다 많이 어리지만, 그래서 나한테 존대를 하지만, 하나는 나의 선배고 하나는 한참이나 후배지만,나를 거침없이 놀려 먹는 내친구들이다. 인문관 앞에서 자지러지던 그들의 웃음만큼이나 나도 들떴다.
저녁. 한 칠년 전쯤 부천의 논술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한 놈은 나를 형이라고 불렀고, 다른 한 놈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 친구들은 당시의 내 나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이었고 그들은학부를 이제야 막 졸업했거나 심지어 아직 졸업도 못한 상태다. 대학을 입학한 지 7년이나 되었자만. 군대도 아직 안갔다 왔는데 말이다. 한 놈은 사회대 학생회장을 하고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돕다가 이제 좀 한가해졌다고 한다. 9학긴데 이제 곧 졸업이란다. 또 한 놈도 역시 운동을 하다가 다 늦게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2월 시험은 제법 봤단다. 한 놈은 부천에서 지역 운동을 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을 친구로 둔 게.
금요일.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동기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어찌나 울분을 토해 놓던지, 나도 왈칵 성을 냈다. 버스를 태워 보내고는 조금 씁쓸해졌다.내 삶도 잘 추스르지 못하면서 어째 오지랖 넓게 넘의 일에서 허우적거리는가. 내코가 석잔데. 그를 만났을 때의 설렘도 그가 타고 떠난 버스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술없이 먹은 갈비찜은 달기만 했고,비싸기까지 했다. 당장 생활비가 없고, 언제까지 내가 앞을 볼 수 있을지도알 수 없는데. 의사가 절대 입에 대지 말라는 담배는 술만 먹으면 뻐끔거리고 있다. 내 두 눈은그야말로 내가 꼴보기 실을거다.필경 버스 에서 보냈을 문자에서 동기는 나를 앞으로 오빠라 부르겠다고 너스레를 떤다.조금 생뚱맞기는 했지만, 마음이 다시 달떴다.
월요일. 토요일.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 양반과 저녁을 먹었다. 하루는 회를 떠다가 소주를 먹었고 하루는 갈비탕을 앞에 놓고 맥주를 먹었다. 엄니는 술을 거의 안 하신다. 아들이 혼자 먹을 수 없으니 기꺼이 반 잔을 받아 놓으실 뿐. 엄니는 나에게 온갖 푸념을 늘어 놓으신다. 말동무라고는 나밖에 없다. 직장도 다니시고 교회 활동도 열심이시지만,'괴팍한' 어머니는 나말고 친구가 없으신 것 같다.묵묵히 듣던 나는 엄한 소리를 한다. 엄니, 진지는 자셨슈?
내 친구들은 다 어니로 갔는가.
어떤놈은 남해 농협에서 돈다발을 세고 있고,어느 놈은 정치를 공부한답시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고, 또 한 놈은 영국에 가더니 영 무소식이다.다른 하나는 학교 뒷산에 뿌려졌고. (물론 이이는 나보다 선배지만, 이제 내가 그가 산 삶보다 더 많이 살았으므로 감히 친구라 부르겠다. 그가 들으면 헛웃음을바람빠지듯 흘리며 내 뒷통수를 야무지게 갈기겠지만.)
내 친구들은 어디에도 있다.
학교에도 집에도 신촌의 거리에도 영국에도 일본에도 미국에도 중국에도 프랑스에도....아 그리고 아마 대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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