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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을 위한 짧은 조사
월요일자 한겨레 궂긴소식란에서 정운영 선생(사숙,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그의 글을 내 선생들의 글보다 더 찾아가며 읽었기에 이렇게 부르고 싶다) 기사를 보았다. 순간 아, 하고 외마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인가 한창 한겨레 칼럼에 재미를 붙이던 시절, 정확하진 않지만 화요일엔 정운영 선생의 경제칼럼을 읽었고 목요일엔 고종석의 언어 관련 칼럼을 읽었다. 그리고 나중엔 김선주의 글도 (이때는 눈물을 훔칠 때가 꽤 있었다) 챙겨 읽었더랬다.
정운영 선생의 해박함과 유려한 문장에 정말이지 나는 압도당했었다. 강준만을 필두로 해서 조롱조로 그 기름진 문체를 나무라는 이들이 없었던 건 아니나, 그는 이론적 현실 참여에도 활발한 편이었기에 결코 ‘버터 바른 좌파’가 아니었다.
대중적으로도 꽤 성공한 경제서들(그 중에서도 <광대의 경제학>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같은 초기 저작이 더 믿음직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외에도 나는 그의 <노동가치이론연구>의 열혈 팬이었다.
비록 지금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라는 거의 환의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던 개념 몇 가지만 거칠게 부여잡고 있지만. 그리고 대개 우리가 이해했던 그 ‘노동가치이론'이 맑스 이전, 그러니까 애덤 스미스나 리카르도의 이야기이지 그들을 비판한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는 게 요즘 유행하는 정치경제학의 설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명 정운영이라는 이름은 좌파 경제학자라는 소개말에 어울리는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였다. (당시 나와 있던 대부분의 정치경제학 책들이 자본론 1권과 2권을 요약, 해설한 수준이었던 데에 비해 정운영의 <노동가치이론연구>는, 비록 논문집이기는 하나, 당시의 개론적 정치경제학 저서들과는 분명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90년대 초(?) <출판저널>을 통해 복거일과 벌인 자유주의 논쟁도 나로서는 매우 인상적이었고(고종석은 이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몇 안 되는 품위 있고 제대로 된 논쟁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이론>에 삼회분으로 연재한 인터내셔널 약사(?)는 무식쟁이 나에게 퍽 유용했다.
하지만 한참 후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읽게 된(중앙일보로의 이동이 사실은 되돌아 간 것이라는 걸 이제사 알았다) 그의 글에서는 왠지 뭔가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콤플랙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의 날 선 칼날이 때론 방향을 잘못 잡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산 (그리고 읽은) 그의 책 <중국경제산책>에는 정운영의 글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듯이 자리잡고 있었다. 좌파 경제학자로서의 시각이란 것이 과연 이런 것이구나! 연작 기행문의 형식을 띤 이 책은 중국혁명사와 사회주의 중국이 안고 있는 그리고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모순(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자본주의적 모순이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들을 특유의 필치로 거침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제 그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
2005.9.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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