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의 노래, 정태춘 작사작곡

삶읽기 2005. 3. 30. 14:10

1.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프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자그만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가끔
한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피거나 깜박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한 막대기 정 가운데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또가끔
기털을 고르고 부리를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 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돌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마 날지마 그건 자학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 없지만 가끔 화장실의
폭포수 소리 어쩌다 창밖 오스트레일리아 초원 굵은 빗소리에
환희의 노래처럼 또는 신음처럼 그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내게 말한다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빙빙돌고

내일 아침도 그는 나와 함께 조간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를 그도 잘 알것이다
우린 서로 살가운 아침인사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가족 누군가
새장 옆에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아치의 노래는 ...

2.
2002년 봄, 정태춘과 노찾사가 연대 노천에서 공연을 했다.
정치색이 있었고, 명계남이 설레바리를 치고 다녔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자리였다.
얼마 후 게서 들은 정태춘의 노래가 음반으로 나왔다고 해서 씨디를 샀다.
그리고 한참 후(뭔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어느어느 자리에서 나는,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음악이라며, 주책을 떨었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치'는 연예시스템에 결박당한 철부지 가수이고 '나'는 연예자본이라고. 그러나 곧 '아치'가 정태춘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아치'와 '나'는 분열되었으되나뉘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며 또한 이 노래를 듣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기도 하(며 이 글을 읽는 당신이기도 하)다.
새장 속에 갖힌 아치/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똥을 치우고 사료를 준다.
날려고 애쓰지 말라고 그건 자학일 뿐이라고 그리고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라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도 모두 '나'이고 '아치'이다.

3.
내 삶의 백터는 종종 밖으로 향하곤 했지만, 그래서 울타리를 넘어 갈듯 주춤거리고 웅성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안으로 수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내 아침마다 가라앉았고, 또 오래 혼자였다.
내 노래 역시 새장 주위로만 빙빙 돌기가 쉽겠지만, 또 그것이 헛된 이념이고 나를 깊이 상처낼 뿐이라 할지라도 나,
아치가 되련다.
때때론 양아치라고도 불리는

4.
이 유쾌한(?) 선은 한편으로는 2003년 8월의 어느 비 오던 밤에 '예정에도 없이' 올라 탄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1999년 봄, 도서관 4층 창가에서 외친 딴스홀을 허하라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2002년 4월, '언어가 왜 의사소통의 도구냐'라는 이연숙 선생의 도발적 질문으로 이어진 그 선은 2004년 가을 북한산의 어느 능선에서 생뚱맞게도 '언어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근대적 관념에 포섭된 문제 설정이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5.
내 욕망의 흐름들은, 그 우발적이고 불퉁거리는 가닥들은 지금 숨을 고르고 있다.
알튀세의 우울한 눈빛이 그날 내리던 비와 포개진다.
우발적 유물론을 위하여.
무한한 자기언급, 그 모순의 언어학을 위하여.
pou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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