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삶읽기 2005. 1. 14. 11:48

월요일, 점심을 푸지게 먹고 신발을 질질 끌며 미용실에 갔다.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곳이라 근 2년이 다되어 가니 단골이라면 단골.
내 머리를 전담 마크(?)하고 있는 아자씨께 대가리를 디밀고 여지없이 병든 닭 모드로 졸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아지씨 왈...

"손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머리가 많이 빠지셨어요. 머리숱이 굉장이 많은 편이셨는데..."

한 오년 전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학기를 꽉 채우고도 쩔쩔매던 논문 학기 중이었는데, 머리를 깎으러 갔더니 원형탈모증이라며 병원엘 가란다.

졸업하면서 군데군데 흉찍하게 빠졌던 머리터럭들은 제모습을 갖추었지만,
얼마 후 난 듬성듬성 잡풀이 삐죽이 제멋대로 솟아난 아버지의 무덤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깟 논문 쓰느라고 빠지던 머리가, 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중이던 아버지 옆에서는어찌 그리씩씩도 하게 잘도 꾸역꾸역 자라났는가.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혹 하셨을까. 그랬다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다시 머리가 빠진단다.
이깟 두려움과 긴장으로 머리가 빠진다면, 앞으로 펼쳐질 ... 짜릿한 인생 어이 버틸고.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엘 가련다. 천천히 허위허위 오르며 어머니 손을 한번 잡아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