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과 소세키

책일기 2011. 7. 1. 10:58


1.

<동양적 근대의 창출 - 루쉰과 소세키>(이야마 이사오, 정선태 역, 소명출판, 2000).

이 책의 첫 장에다 나는,맘에 퍽 들지 않는 글씨로, 아래와 같은글귀를 써놓았댔다.

일본어 공부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며.

뜻하지 않게 체육복에서 튀어나온 돈 만 원으로

구내서점에서. 2002.3.26.

2002년 3월이면 처음으로 취직했던 ‘테헤란 벨리’의 어느 벤처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학교를 어슬렁거리던 때다. 물론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낙방한 뒤, 엄청난 낭패감 속에 다음 해 정초부터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게 되지만, 아무튼 이 책을 살 때쯤이면 그래도 다시뭔가를 읽고 공부하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을 때이다.

2.

얼마 전 우연히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을 샀을 때 얼마만큼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곳저곳을 그저 떠들쳐 보다가, 이내 자세를 바로하고 찬찬히 읽어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한 개인이 어찌 해볼 수 없는, ‘근대’라는 이름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고뇌하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 속에서 마침내 나름의 자기 입장을 정리해 내는 소세키와 루쉰을 보며 조선의 주시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성향과 이력에서 소세키와 루쉰이 서로 차이 나는 것만큼이나 주시경 역시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논쟁적인 싸움꾼 루쉰에게서 혁명가의 냄새가 난다면 소세키에게서는 댄디한 느낌의 ‘도련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에 비해 주시경은 왠지 답답한 시골 면서기가 떠오른다.(아마도 주시경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남기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셋은 모두 말과 글의 영역에서 ‘근대’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가 없다.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었고, 거의 모든 것이 부정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자기본위’의 근대를 제출했다. 그들의 작품으로, 또 그들의 삶으로.

3.

그런데 이 책의 말미(<사진으로 보는 루쉰과 소세키> 바로 앞에 있는 빈 공간)에서 아래와 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물론 내 글씨다.

책을 처음 샀을 때의 기대와

너무도 다른 내용이다.

중도에 읽기를 그만 둠.

2002.3.27.

그러니까 책을 산 바로 다음날, 이 책은 영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내던져 버린 것이다. 3분의 1쯤은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땐 무엇을 바라고 이 책을 샀던 것이고, 또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조금은 당혹스러웠지만, 생각해 보니 아마 그때도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심지어 지금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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