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68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스티븐 컨, 박성관, 휴머니스트----1

내가 읽은시공간에 대한책은 대개 근대의 특징으로 균질성(uniformality)을지목했다.근대에 접어들면서 시공간의 질적 차이가 무화되어 단일한 단위로 환원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생활 역시 균질한 행위로 절단 채취된다.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가 그 극단일 터이다. (이런 논의의 대표적인 예로 이진경의 , 푸른숲을 들 수 있다.)그런데 이 책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이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루는 시기부터가 매우 최근(1880년부터 1918년까지)이다. 크로스비의 같은 책은 13세기와 14세기에 이루어진 시공간 인식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채롭다고까지 할 만하다.이 책은 과학혁명 시기가 되면 거의 완성된 시공간 인식의 변화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변이되었는가 하는 데..

책일기 2005.01.04

열하일기

1. 다산과 연암. 얼핏 이 두 이름이 갖고 있는 울림의 폭과 깊이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실학, 조선 후기의 개혁.... 중앙 정계에서의 밀려남....(사실 이 말들은 대개 다산에 해당되는 말들이다. 우리는 어지간히도 다산으로 연암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진폭과 주파수는 너무도 달라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 두 이름이 남겨놓은 흔적을, 그 형태와 색감을 옳게 구별해 낼 수 있다면,한때 크게 유행하던 '자생적 근대' 논의를, 그때와는 전혀 다른 눈매로이기는 하겠지만, 다시 주억거릴 수 있으리라.이인화는 에 대해 에코의 (과 그 밖의 몇가지 책)을 혼성모방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의 '희극'편을 두고 벌이는 중세와 이제 막 태동하는 근대의 싸움이듯, 역시 라는 허구의 책을 두고..

책일기 2004.12.01

베토벤

윤소영이 번역한 솔로몬의 베토벤을 (거의 다) 읽었다. 나중에 박홍규가 쓴 베토벤 평전을 읽다 알았지만,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쓴 유일한 베토벤 관련서가 이것이라고 한다. 97년 처음 샀을 때는, 물론 부록 ‘피디의 진실2’를 읽기 위해 산 것이기도 했지만, 어렵고 투박하게만느껴졌었는데, (물론 여전히 힘겹기는 하다. 이는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내가 서양음악의 습속에 전혀 익숙하지가 않을 뿐더러 그것을 다시 맑스-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도 역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이제 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이 책이 꽤 잘 짜여진 구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역자가 이것저것을 들춰보면서 적성한 연보의 완성도가 높다. 물론 베토벤의 삶과 그의 음악을 충분히 아는..

책일기 2004.11.17

정재서, 이야기 동양 신화1(황금부엉이)

정재서, 이야기 동양 신화1(황금부엉이)를 읽다. 언제였던가, 학교도서관 4층 참고열람실 창가에서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곰브리치도, 하우저도, 아렌트도 그때서야 처음으로 차분하게 읽었다. 때론 여덟시 반 폐관 시간에 쫓겨 후루룩 책장을 넘기기는 했어도, 여적 그때의 행복감은 학교 도서관의 즐거움으로 남아 있다. 정색하고 앉아서 책장을 넘기다가 지루해지면, 때로는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문학 계간지들을 심심풀이로 읽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권말 부록 형식으로 한동안 도정일 선생이 썼던 신화 이야기. 아버지 우라노스를 죽이고 제왕이 되었던 크로노스는 그 역시아들에게 살해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인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냉큼냉큼 먹어 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특한 아들 제우스는 가이..

책일기 2004.10.15

안도현, [그리운 여우](창비); [서울로 가는 전봉준](문학동네)

1. 어떤 이에게 해 줄 멋진 말이 없을까 하고(멋진 말이란 게 대개는 돌아보면 십중팔구 유치한 말이 되어 버리지만) 눈을 희번뜩이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어느 시인의 시집을 한권 빼어든다. 문학동네에서 [포에지 2000]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으로 벌린 기획 시리즈 중 한 권. '우리 시문학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절창을 복원해 낸다'고 출판사는 책날개에서 기염을 토한다. 사십대 중반이 넘었을 이 시인의 20대 사진이 표지에 걸려있다. 정말 비린내가 난다, 고 할 정도로 애띤 얼굴이다. 이이도 그동안 살이 꽤나 붙었군, 하며 동류의식 비슷한 걸 느낀다. 읽히지가 않는다. 방바닥에 모래를 뿌려 놓고, 아니 자갈을 깔아 놓고 누워 있는 듯 거북했다. 누군가 90년대, 특히 중반 이후의 ..

책일기 2004.09.16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

여름휴가 기간(8.27~9.2), 지리산 여행을 다녀와 유종호 선생의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를 읽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가소롭게도 나는 어느 때인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무엇은 기억되고 무엇은 잊혀지는가, 기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였을 터이다. 아마 술먹은 다음날 끊어진 필름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맞추다가 문뜩,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기억은 분열의 소산이다, 라는 게 그날의 생뚱맞은 결론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의 행동을 치어다 봤을 때 기억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 생각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어제의 행동이 분열되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의 행위였다고 자위할 수 있게 해 주는 편리한 방법이었다. 가소롭기도 하고 생뚱맞기도 한 이날이 결론은 그러나 전사(前史)가 있..

책일기 2004.09.15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 문학과지성사

내가 좋아 하는 글쟁이는 셋이다. 김현, 김훈, 고종석. 그러나 셋의 글쓰기 스타일은 모두 다르다. 김현은 나를 힘들게 하고, 김훈은 나를 화나게 하고, 고종석은 나를 긴장시킨다. 그러나 고종석이 제일 편하다. 긴장시키는데도 제일 편하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나랑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 하면 아주 우스운 얘기가 될 터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글을 보면 마치 내가 쓴 글을 보는 것처럼 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헐거운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특히 김현이나 김훈과 다르다. 이네들의 글은 꽉 짜여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알이 꽉 박힌 어떤 열매처럼 과육이 삐져나오는 어떤 열매처럼 나를 흥분시킨다. 그러면서도 김현은 신체적 조성이 맘껏 높아지는 기분을 선사하고(물론 가끔 책을 집어 던..

책일기 2004.09.06

마루야마 마사오, '원형, 고층, 집요저음' ([일본문화의 숨은 형] 중에서)

[일본문화의 숨은 형](소화) 중 마루야마 마사오의 '원형, 고층, 집요저음'을 읽다. 재미있게 읽었다. 일본의 특수한 집단의식, 문화적 원형은 무엇인가... 하는 어찌 보면 좀 고리타분하고 더욱이 위험스러울 수 있는 논의지만, 그리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루야마의 글은 방법론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법론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일본만의 특수한 무의식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용어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용어가 바로 그 개념을 말해 주는 것이니, 주변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융 또는 정신분석학적인 냄새가 나는 원형(Archetypes), 지질학 용어 高層, 음악 용어라는 執拗低音으로 마루야마는 일본문화의 숨은 형을 (이미) 설명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들뢰즈 가타리의 논의를..

책일기 200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