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요즘에도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나?

pourm 2025. 11. 19. 19:49

"요즘 어떤 소설을 읽으세요?"
그의 질문이 나는 사실 별로 탐탁치 않았다. 요즘에도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나? 20년쯤은 소설을 읽지 않은 것 같았고, 그런 스스로를 어쩌면 나는 좀 대견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소설을 열심히 읽었더랬으나, 언제부터인가 작가들이 시덥지 않은 소리만 쓰고 있는 것 같아 소설을 읽지 못하겠다는 어느 원로 선생의 말씀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인지, 얼마 후부터 자꾸만 요즘 읽은 소설이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이 내 귓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신경숙, 은희경이 내가 읽은 마지막 소설인 것 같은데? 라는 내 대답이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사실 예컨대 <외딴 방>이후 소설을 전혀 안 읽은 것은 아닐 터다. 그러나 손에 꼽을 정도임에는 분명하고, 의식적으로도 소설을 멀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소설을 다시 읽으려고 마음 먹은 게 꼭 그의 질문 때문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이 그의 질문이 있은 얼마 후부터였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 시작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와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였던 것 같다.
그 뒤로 국내 작가의 이런 저런 소설(주로 단편집),,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 대만, 미국 작가의 소설(주로 장편소설)을 끊지 않고 계속 본 것 같다. 그 와중에 한강의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도 있었다.

그런데 돌고 돌아 온 곳은 이기호의 소설이다.
돌고 돌았다는 얘기는, 요즘 어떤 소설을 읽냐는 그의 질문에 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면, 아마도 이기호의 소설을 얘기했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의 질문 이후 오늘까지 두 권 이상 읽은 책이 이기호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원주에 오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우연히 읽은 소설이 이기호의 <원주통신>이었다. 원주출신인 그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박경리를 외할머니라고 허풍을 떨었다가, 호되게 당하는 내용의 단편 소설이다. 박경리의 <원주통신>을 빌리러 갔다가 우연찮게 동명의 소설까지 덤으로 들고 나왔던 것.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단계 택지에 새로 차린 룸살롱 <토지>와 마담 서희, 웨이터 길상이라는 설정에 배꼽을 잡았던 게 꼭 7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의 소설집 두 권을 더 읽었다. 


타고난 이야기꾼, 이라는 식상한 표현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이야기를 참으로 맛깔나고 재미있게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들려준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너무나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약한 자들의 헤어날 수 없는 고단한 삶, 치욕과 모멸감... 그리고 그에 연민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위선 혹은 자기 만족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끊없는 질문, 혹은 자책.
특히 서울경찰청 7층 조사실에서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진술서를 작성하는 김숙희 씨의 이야기(<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그리고 후진이 되지 않는 3도어 프라이드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간 삼촌의 이야기(<밀수록 가까워지는>)는 내내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처연하기도 하고 또 가슴을 저리게 한.... 


또 소설을 읽을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누군가 다시, 요즘 어떤 소설을 읽느냐고 물어 볼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요즘 작가들도 시덥지 않은 글만 쓰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연하기도 하고, 또 .... 

2025.10. 倡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