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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에 대한 단상

대학 때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지지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대학 1학년 시절. “아아, 민주정부 사천만의 희망이여~ 살아도 죽어도 피우리라 꽃피우리라” 운운의 노래를 즐겨 부르기는 했어도 이것이 비판적 지지 노선의 엔엘 노래지 ‘우리’ 노래는 아니라고 속으로 되내이곤 했다. 대신 더 후지고 촌스럽기는 해도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권력은 민중에게’라는 구호로 시작하는 ‘민중권력 쟁취가’가 ‘우리’ 노래임을 곱씹곤 했다.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일 수밖에 없는 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계급 정당의 건설이 당면 과제였고, 오세철 선생을 중심으로 한 민정련이나 노회찬을 앞세운 진정추가 그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97년 국민승리 21..

삶읽기 2012.12.20

선운사_격포_내소사

1. 세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선운사는 입구부터 흥청댔다. 빼곡한 장어집들 사이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두서없이 늘어서 있고, 일주문까지는 모시송편과 복분자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한결 같이 등산복을 빼입은 이들은 달려드는 날벌레를 쫓느라 바빠 이른 단풍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당연히 붉은 동백꽃을 기대하고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운사 마당은 왠지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사람들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스산해 보였다. 안내사의 썰렁한 농담에 등산복들이 답으로 건낸 박수소리가 헐렁한 산사에 흩어질 뿐이었다. 오래 전부터 무르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솜사탕을 받아들고 좋아했다. 해질녘 도착한 숙소에서 ..

삶읽기 2012.10.26

루쉰과 홍기문, 그리고 비국민에 대한 잡감

1.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린비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노신 전집 1권 을 펼쳐들었다. 사실은 지젝이 쓴 ‘How to Read' 시리즈의 을 잡았댔으나, 대타자 운운하는 예의 그 장광설에 아침부터 심란해질까봐, 끊어 읽기 좋은 노신의 ’잡문‘으로 대신한 것이다. 를 (박이정, 근간) 해제에서 ‘표상’ 문제와 연결 지어 볼 요량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매끄럽게 풀리지 못해 결국 포기한 게 4월경이니까, 아마 작년 연말이나 올 초에 읽다가 말았던 것 같다. 다시 읽으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통 갈피가 잡히지 않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그 앞의 , , 등을 다시 읽고 말았다. 은 일본 유학 시절의 작품(루쉰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논쟁적인 성격의 ‘잡문’이 아니라 논문 성격의 글들)과 5...

책일기 2012.09.21

녹색평론 125호

1. 구독료가 밀렸다는 메모지와 함께 우송된 이번 호 에서, 김종철은 72년 로마 클럽의 그 유명한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40년이 지나 되돌아 보니, 당시에 예측했던 각종 데이터 들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것. 1인당 식량, 1인당 산업생산, 환경오염, 비재생에너지자원(석유 등), 세계인구 등의 예측치가 현재까지 거의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단다. 그리고 가 성장의 한계점으로 예상한 시점이 대략 2030년. 우리는 경제를 경제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그 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면? 석유 네 드럼으로 곡물 한 가마를 생산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생활 모든 것이 그렇지만, 석유가 없으면 농사도 지을 수가 없다. 이란 것 자체가 바로 이 값싼 에너지, 석탄과 석유 없이..

책일기 2012.07.15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해제3

3.이른바 근대계몽기에 ‘국문, 국어’와 관련된 담론들이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또 일반화되었는가 하는 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에 이 『역주 국문론집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가 ‘다시 한 번’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데에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지 않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형성했던 그 대상과 개념과 주체 등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이 책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민수․고영근 편의 『국문론집성』에서 출발한다. 1880년대부터 1910년에까지 신문 잡지에 실린 ‘국문, 국어’ 관련 글을 모은 『국문론집성』이 처음 나..

책일기 2012.05.30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해제2

2.1890년대 중반 이후의 각종 신문과 잡지에는 ‘국문’과 관련된 글들이 제법 눈에 띈다.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편리하도록 만들겠다’는 『독립신문』의 그 유명한 창간사에서부터 ‘기자(箕子)가 전해준 한문뿐만 아니라, 우리 성왕이 창제하신 국문도 함께 사용하겠다’는 『황성신문』 창간호까지 국문에 대한 논의가 백출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그 내용은 한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그 때문에 더 빨리 지식을 습득하여 ‘실상사업’에 나갈 수 있는 ‘국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 주이고, 이와 더불어 이 ‘국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졌는지 그 ‘연원’을 따지는 글, 그리고 그 사용 방법에 대한 의견(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동음이의어 구별을 위해 방점으로 장단을 구별해야 한다) 등..

책일기 2012.05.30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해제1

1.손금이나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삶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손금의 모양이나 얼굴의 생김새에 ‘표상’되어 있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사주팔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사주에 한 사람의 운명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기호를 해석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듯, 사주팔자를 해석해 내면 그의 인생이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이름을 적절히 지어 사주에서 음양오행상 모자란 기운은 보충하고 너무 과한 기운은 눌러 줄 수도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는 모두 ‘목화토금수’의 오행 가운데 하나에 배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한자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적’..

책일기 2012.05.30

이른바 `당권파`에 대한 단상

(나꼼수처럼) 이명박을 똘아이로 치부하는 것이 마음은 편하고, 심지어 즐거울지 모르지만,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못하듯이 (진중권처럼) 통진당 당권파를 똘아이로 몰아가는 것 역시 현명한처사는 아닌 듯하다.문제의 근원은 의석수를 늘리고 (연립)정권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에 목을 메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유시민 등과도 거리낌 없이 진보정치를 논할 수 있다는, 통진당 주류의 정치의식에 있지 않은가?진보정치에서 대의제는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대의제에 모든 정치활동을 몰아넣고야마는 부르주아 정치와 달리 진보정치의 중심은 의회가 아니라, 현장이어야 한다. 제도정치가 진보정당의 최대강령이 되었을 때, 스캔들은 언제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삶읽기 2012.05.10

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2012

"세 번째 받아든 녹색평론에 다시 설렌다. 마치 10여 년 전 정치경제학을 읽고 그랬던 것처럼. 2008.1.30. kbm." 한가한 틈을 타 요즘 다시 읽고 있는,박이문 선생의 맨 앞장에 꼭 4년전 쎃넣었던 글귀.엊저녁 받아든 정태춘의 새 앨범을 들으며 밤새 설렜다. 과학이 아니라, 시적 언어가 존재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에 비로소 공감. 그러나, 이 시인의 노래는 늘 외롭다.10년 전의 는 가 되어 돌아왔고 는 로, 는 로 다시 왔다. 그리고, 그 슬픔은 몇 곱절이다. 외로움이 더 깊어진 때문일까.밤새 설레던 마음은 어느새 울렁거림으로 오늘 아침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2012.2.9. 倡優

삶읽기 2012.02.09

길을 잃다

어제 아침 매일같이 드나들던 학교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순간 당황해서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 건가, 무서웠다. 책을 읽고 뭔가를 끄적대는 데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여길 나가는 길이 있기는 한건가. 아득하고 암담하다. 곧 끝날 것 같던 길은 다시 미로로 이어지고, 주위는 온통 낯선 풍경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줄기 불빛을 의지해서 더듬거려야지. 아마도 출구란 처음부터 없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삶이란 끝까지 이렇게 더듬거리며 쩔쩔매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뭔가 대단한 것을 본 것처럼 득의에 찼던 순간순간. 그러나 그 치기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터.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립다. 오늘 다시..

삶읽기 201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