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과 고립, 그리고 40일

삶읽기 2020. 3. 27. 12:13

검역, 격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quarantine이 있다. 
40을 뜻하는 quarante(불어), quaranta(이탈리아어)에서 온 말이다.
중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전염병 전파를 우려해 입항한 선박에서 40일간 선원의 하선을 금지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루즈선에서의 하선을 금지했던 일본 정부는 아마 저 중세의 전염병 대책을 본땄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문뜩 지금 우리 모두는 간절히 땅을 밟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갇혀있는 그런 신세가 아닌가 생각했다.
'31번 환자'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달 20일 전후였으니, 그리고 나서 심각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고 자발적/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 모두를 규율하기 시작했으니, 각자의 배 안에 갇힌 지 한달쯤 된 것 같다.
연기된 개학일 4월 6일은 '신천지'로 온 언론이 도배된 시점으로부터  40일쯤 되는 날이지 않을까.

40일이 지난다고 이 배에서 내리는 것이 허락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학교도 학원도 교회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고립된 아이들에게 개통해 준 핸드폰 덕에 처음으로 가족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예정대로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배우고 있었을 둘째는 아직 한글을 못깨쳤고 글도 모르며 단톡방에서 맹활약중이다.
컴퓨터 화면과 마이크를 상대로 한 독백의 강의는 벌써 3주차 녹화/녹음을 마쳤다.

노아의 방주를 타고 살아남은 이들은 비둘기를 통해 바깥이 안전한 줄을 알고 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고립된 배에서 내리겠지.
그러나 이 고립을 견디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향해 반갑게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붙잡고, 얼싸안을 수 있을까?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환대할 수 있을까?
아마 중세의 저 40일을 견단 이들은 분명 그랬으리라. 
우리의 고립이 우울한 것은 지금의 고립감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가 더 무섭기 때문은 아닐까.

녹색당/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관련 결정에 부쳐

삶읽기 2020. 3. 16. 12:15

녹색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정의당의 선겨연합정당 불참 결정을 듣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원 투표 끝에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하여 유시민+이정희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한 투표.
누군가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투표.
선거연합정당의 명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지하는 이에게 투표하고 싶다.
심지어 선거연합정당은 사실상 촛불을 앞세워 집권한 이들이 주도하고 있고, 그들은 견재 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주요한 정치세력이지 않은가? 이명박-박근혜가 다시 돌아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이 이상한 정당, 가설정당의 정당성은 충족되는 것인가?

그러나 아,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여전히 강고하다.
아니,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비판적 지지, 이명박근혜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녹색당이 원내정당이 된다면? 이 정부의 실책을 가리는 역할을 할 민주연합론에 가담하여 녹색당이 의회에 진입하게 된다면?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녹색당까지 저들의 전리품이나 악세사리가 될 것인가?

정세에 따라서는 전선을 긋고 거기에 제 세력이 결합하는 운동은 물론 가능하다.
그런데 전선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정부, 집권여당이 있는 그런 정세는 배우지 못했다.
단순한 정부여당이 아니라 거기에는 재벌과 자본이 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박근혜와도 거래했지만, 문재인과도 한배를 탔다.
지배블록 내의 지분 싸움에 진보정당이 개입하며 오히려 전선을 완전히 착각하게 하고, 그리하여 결국 지배블록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게 하는 형국 아닌가?
이 정권은 검찰과의 요란한 내전을 치루는 것으로 개혁 의지를 뽐냈지만, 그런 힘의 반에 반도 재벌 개혁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선은 다시 그어져야 한다.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은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 정당의 하위 종속변수로 자신을 위치 지우면서 생존해 왔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그 진보정당의 운동이 오늘 파국에 처했음을 본다.
지배블록의 한 편에 섰을 때에만이 생존이 가능한 진보정당이란, 더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깨고 나간 이래, 거의 한번도 심상정(과 노회찬)을 응원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정의당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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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통신: 제1신

원주통신 2019. 11. 26. 12:22

원주세브란스에서의 일주일

 

1.

지난주 금요일(11/15).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대학 동기들과 잠깐 만났다. 대학 때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놈들인데 이제 서울서 창원서 원주서 제각각이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모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토요일(11/16)에는 김장을 하러 어머니가 계시는 충주엘 갔다. 이모와 이모부님이 벌써 영동에서 와 계셨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제 일을 찾아서 모두 분주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일요일 하루 종일 쉬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에 살펴보니 오른쪽 고환이 꽤 붓고 딱딱해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방광염 때문에 몇차례 다녔던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비뇨기과를 찾았다. 의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방광염이 다른 곳으로 옮아서 염증이 생겼을 수 있다며 항생제, 소염 진통제를 처방하고 5일 후에 보자고 했다. 그러나 화요일 아침에는 상태가 더욱 심해져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짜증을 내며 2, 3일 정도는 지나야 나아진다고 했다. 내가 차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하자 그럼 큰 병원으로 가야지 뭐.” 하며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진료의뢰서를 떼주며 나를 내보냈다.

원주세브란스는 지난 여름 건강검진을 하고 처음이었다. 업무과에서 접수를 했더니 오후 4시 10분에 오란다. 학교에 들어와서 요즘 읽던 최남선의 <살만교차기>를 얼마간 읽고 요약했다. 수업준비를 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확인했다. 점심으로 싸온 고구마와 김치를 먹고 수업에 들어갔다. 몸이 몹시 좋지 않았는지, 두 시간 수업이 끝나고 아주 녹초가 됐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3시 40분. 5시가 될 때까지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거의 맨 마지막으로 만난 비뇨기과 담당 의사는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고민을 한 끝에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4시경에 와서 입원을 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엘 들어가는데 그 전부터 묵직한 게 미심쩍었던 배가 말썽을 일으켰다.

엄청난 복통이었다. 약을 간신히 타서 택시를 탔지만, 택시에서 거의 데굴데굴 구르는 수준으로 몸음 가눌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 안방에 누웠는데 산통 하는 여인처럼 연신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지켜보던 아내는 당장 응급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애들은 알고 지내던 집에 맡기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응급실로 가는 길 내내 뒤로 젖힌 의자에서 복통으로 찢어지는 듯한 배를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했다. 응급실을 거쳐 52병동에 입원했다. 역시 복통으로 잠을 자지 못했고 진통제를 맞아도 누워있기가 힘들어 병동 복도를 밤새 배회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간호실에 가서 진통제를 더 놔달라고 했지만, 두 번에 한 번은 ‘아직 시간이 안 됐어요. 한두 시간 더 있다 오세요.’ 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결국 금요일(11/21) 오전. 의사로부터 들은 진단명은 부고환염과 장염. 부고환염은 고환 뒤쪽의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통증이 극심하고 치료 기간도 최대 4주까지 간다고 한다. 게다가 장염이 심하게 와서 장폐색 수준이고 CT 촬영 결과 대장이 부어있다는 것. 심한 복통도 이 때문이었다. 담당 의사말로는 장염이 먼저였을 것이라는데 순서가 무엇이 중요하랴. 직접적인 원인은 단지 불을 붙인 부싯돌 같은 것일 뿐, 불이 붙을 환경을 조성한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금요일 저녁. 병원에 입원한 화요일 저녁부터 아홉 끼를 거르고 열 끼 만에 금식이 해제되어 죽을 먹는 순간을 그야말로 감개무량. 생각만큼 먹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흰죽이 그렇게 맛있는 줄음 미처 몰랐다.

 2.

이 병원은 강원도 전역, 제천 단양 충주 같은 충북 북부, 영주를 비롯한 경북 북부권 방언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금요일 오후까지 있던 병실은 주로 대장암 등 소화기 계통의 수술 환자들이 있던 8인실이었는데, 아주 친근한 고향 사투리를 밤낮 들을 수 있었고(충주에서 들을 때는 제천 말이 강원도 말처럼 들렸는데 강원도에서 들으니 제천 말은 영락없는 내 고향 말이었다), 아직은 귀에 선 강원도 영동 사투리도 물론 들렸다. 강원도의 병실에서도 익숙한 경북 말은 서울에서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충남이나 호남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아픈 배를 부여잡고 누워 있는 동안에도 다채로운 말의 향연에 귀가 쫑끗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든 노인과 젊은 여성 간호사 간의 듣기에도 아슬아슬한 반말 대화며(반말은 대체로 노인이 먼저 시작하고 이에 대응하는 간호사는 대체로 ‘하셔’ 꼴의 명령형을 사용해 소변량을 체크하라는 둥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이것저것 시키고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노부부의 싸우는 것인지 상의하는 것인지 모를 긴장감 넘치는 대화에서(할아버지는 혼내는 것 같은데, 그걸 받는 할머니는 전혀 혼나는 것이 아닌 태연자약하고 여유로운 말투다), 그리고 다 큰 고등학생 아들과 그 엄마, 그리고 누나 삼자의 <82년생 김지영> 감상평 토론회 같은 지역은 도저히 알 수 없고(분명 서울말과 구별되지 않았다. 서울말로는 화자의 지역을 알 수 없다.) 연령대와 세계관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대화까지, 그리고 간병인 ‘여사님’과 70대 후반의 남성 노인 간에 벌어지는 어색한 첫인사와 바로 이루어지는 깊숙한 생활상의 필수적 대화까지. 게다가 단정한 표정에 감추어진 간호사들의 엄격한 위계가 드러나는 정담까지. 8인실 병동에서의 말의 향연은 어지간한 진통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3. 

박경리 선생은 3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여 내려온 원주에서 원주통신이라는 글을 썼다. 나는 25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올해 초 느닷없이 원주로 내려오는 바람에 고향에서보다 오래 산 서울, 신촌 생활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 스무 살 이후의 나의 삶은 늘 오리무중의 안개 속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몇 가지 방향이나 경향성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믿겨지지 않지만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중년의 나이. 그간의 내 삶, 생활, 습속을 한번쯤 점검해 봐야 할 때가 온 것도 같는 생각을 원주 기독교 병원의 침상에 누워서 하게 되었다.

푸코를 엉터리라도 읽은 이상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병원이 역시 ‘정상인’ 혹은 ‘일반인’을 만든다는 점에서 학교, 교도소와 사회적으로는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물론 의사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 염증 수치에 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 이후의 삶, 서울 생활 25년에 그대로 포개지는 이 시절의 삶을 줄곧 생각했다. 특히 섭생의 문제에 대해 돌아봤다. 스트레스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푼 것은 아닌지, 결국 그래서 몸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지.

푸코는 권력의 특성이 ‘억압’이 아니라 ‘양생’이라고 했다. 욕망을 일정한 배치 안에 가두고 일정한 흐름으로 규격화한다는 것. 그러나 이 권력에 균열을 내는 것 역시 삶의 의지, 욕망. 물론 이는 삶 자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좋은 삶’ 혹은 ‘윤리적인 삶’에 대한 성찰에 기반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일 터. 마침 늘 나에게 계발적 관점을 주는 작가 김태권의 신작 <먹히는 것들에 대한 예의>라는 책을 소개 받는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육식 문화사라고 한다.

이제 일요일(11/24) 아침. 아마 내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리라. 하지만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4주간 금주(禁酒)>라는 듣도 보도 못했고 스무 살 이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형별. 그러나 퇴원하는 월요일이면 이미 지난주 화요일부터 6박 7일의 절식 및 금주 훈련을 마친 상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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