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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탈출기

서평. 백승주, , 은행나무, 2019.1.그는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의 최전선에 있었던 언어교육학자이다.그리고 기호학과 언어심리학, 혹은 심리언어학에 조예가 깊다.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특히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지 않은 타자의 입장에서 겪은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그리고 언어학자이자 언어교육학자로서 상하이에서 보낸 1년을 소개한다.상하이의 뒷골목과 박물관, 백화점을 걷던 그는 느닷없이 신촌의 지하철과 이대역 근처의 자취방, 그리고 제주의 풍광과 역사로 우리를 안내한다.마오와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국가주의를 되돌아보게 하고, 상하이에 만난 기괴한 건축물을 통해 그의 일가가 겪은 4.3의 비극을 차분히 이야기한다.2.그와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책일기 2020.08.11

원주통신: 제2신

민주제와 열린사회의 적들을 다시 생각한다1. 작년 11월 정태춘의 원주 공연이 있었다. 여름쯤 그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티켓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10월부터는 공연을 관람할 수 없는 어떤 불가피한 일을 만들고만 싶어졌다. 다행히도(?) 어머니가 잡은 김장 날이 공교롭게도 바로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고, 그날 우리 가족은 충주에서 저녁까지 먹고 밤늦게 원주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공연장에서는 정태춘의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 처음은 93년 가을 경희대 농민대회였고, 마지막은 2002년 대선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가을께 연대 노천에서였던 것 같다. 정태춘의 노래를 객석에 앉아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그 공연 며칠..

원주통신 2020.07.17

검역과 고립, 그리고 40일

검역, 격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quarantine이 있다. 40을 뜻하는 quarante(불어), quaranta(이탈리아어)에서 온 말이다. 중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전염병 전파를 우려해 입항한 선박에서 40일간 선원의 하선을 금지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루즈선에서의 하선을 금지했던 일본 정부는 아마 저 중세의 전염병 대책을 본땄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문뜩 지금 우리 모두는 간절히 땅을 밟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갇혀있는 그런 신세가 아닌가 생각했다. '31번 환자'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달 20일 전후였으니, 그리고 나서 심각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고 자발적/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 모두를 규율하기 시작했으니, 각자의 배 안에 갇힌 지 한달쯤 된 ..

삶읽기 2020.03.27

녹색당/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관련 결정에 부쳐

녹색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정의당의 선겨연합정당 불참 결정을 듣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원 투표 끝에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하여 유시민+이정희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한 투표. 누군가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투표. 선거연합정당의 명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지하는 이에게 투표하고 싶다. 심지어 선거연합정당은 사실상 촛불을 앞세워 집권한 이들이 주도하고 있고, 그들은 견재 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주요한 정치세력이지 않은가? 이명박-박근혜가 다시 돌아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이 이상한 정당, 가설정당의 정당성은 충족되는 것인가? 그러나 아, 비판적 지지의 망령..

삶읽기 2020.03.16

원주통신: 제1신

원주기독교병원에서의 일주일 1. 지난주 금요일(11/15).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대학 동기들과 잠깐 만났다. 대학 때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놈들인데 이제 서울서 창원서 원주서 제각각이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모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토요일(11/16)에는 김장을 하러 어머니가 계시는 충주엘 갔다. 이모와 이모부님이 벌써 영동에서 와 계셨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제 일을 찾아서 모두 분주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일요일 하루 종일 쉬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에 살펴보니 오른쪽 고환이 꽤 붓고 딱딱해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방광염 때문에 몇차례 다녔던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비뇨기과를..

원주통신 2019.11.26

친일과 반일, 그리고 '앙가주망'의 사이에서

1.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말고 맞서야 한다, 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결연한 멘트에 소름이 돋는다. 마치 집회를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가기 직전 울려 퍼지던 투쟁결의문 낭독의 시간인 것만 같다. ‘앙가주망’을 외치는 대통령의 비서와 ‘더이상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듬직한 혹은 섬뜩한 국무회의 발언은 이들이 혹시라도 박정희나 전두환과 싸우던 시절의 기분으로, 아니면 의열단 단원의 심정으로 이 사태를 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분노의 땔감을 있는 대로 그러모아 불길을 지피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진보의 자리가 아니다. 2.최고 권력자의 수석비서관 노릇이 ‘앙가주망’이라면 전두환을 찬양한 서정주는 참여 시인이란 말인가. 명민한 그가 그리 생각했을 리야 없을 것이..

삶읽기 2019.09.16

뜨거운 여름, 그리고 <아함경>

1.뜨거운 여름이었다.40도를 넘나들던 2018년 8월.마흔다섯의 생일을 전후로 열흘 남짓.왠지, 나는 내 인생의 반환점을 그때 돈 것만 같다. 2.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 이상은 버틸수가 없다, 고 중얼거렸다.아내에게 사표를 내겠다고 말한 후, 출근해 보니 이미 10시가 넘은 상황. 예정된 부서회의가 있었고 회의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부장 책상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다. 부장, 실장과 몇차례 메일을 주고 받았고처장이 집앞으로 찾아왔다. 꺼진 전화기에는 많은 동료들이 걱정의 말들을 남겼다.괜히 눈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다시 회사에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다짐만 굳어졌다.부이사장이 불렀을 때도, 한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내 손을 잡고 내..

삶읽기 2018.10.08

『공자와 논어』

1. 조국 노나라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한 공자는 위나라를 시작으로 14년 동안 자신을 팔기 위해 각국을 떠돌았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沽之哉 沽之哉 我待價者也 ) 56살부터 14년, 70여 명의 군주를 만나고 다녔지만,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정치를 맡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70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오경을 다듬으며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어찌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으랴. (“군자는 일생을 마치도록 이름이 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人不之不溫, 不亦君子乎 ) 를 펼치자마자 만나는, 필시 말년의 어록임이 분명할 이 대목은 그래서 차라리 처연하..

책일기 2018.01.12

『언어 · 헤게모니 · 권력』서평 (4)

언어적 근대의 극복을 위하여– 가스야 게스케의 『언어 · 헤게모니 · 권력』(고영진 · 형진의 옮김, 소명출판, 2016) 서평 (4) 4. 언어적 근대의 극복을 위하여4.1.애석하게도 필자는 가스야 게스케의 『언어 ․ 헤게모니 ․ 권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문제를 제기할 만한 능력이 없다. 애초부터 그보다는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15편의 논문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 대부분이 국내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은 주제와 시각들이라 가급적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핵심을 추려내려고 노력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지만, 재독 삼독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문제의식..

책일기 201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