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산과 연암. 얼핏 이 두 이름이 갖고 있는 울림의 폭과 깊이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실학, 조선 후기의 개혁.... 중앙 정계에서의 밀려남....(사실 이 말들은 대개 다산에 해당되는 말들이다. 우리는 어지간히도 다산으로 연암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진폭과 주파수는 너무도 달라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 두 이름이 남겨놓은 흔적을, 그 형태와 색감을 옳게 구별해 낼 수 있다면,한때 크게 유행하던 '자생적 근대' 논의를, 그때와는 전혀 다른 눈매로이기는 하겠지만, 다시 주억거릴 수 있으리라.
이인화는 <영원한 제국>에 대해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그 밖의 몇가지 책)을 혼성모방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이 <시학>의 '희극'편을 두고 벌이는 중세와 이제 막 태동하는 근대의 싸움이듯, <영원한 제국> 역시 <금등지사>라는 허구의 책을 두고 벌이는 중세와 근대의 싸움인가.
그러나 정조와 더불어 노론과 각을 세웠던 다산은 아직도 철저한 중세인이었던 데 비해
노론의 자식 연암은 이미 중세를 넘어선 근대인이었다.

2.
근대적 시공간은 균질적이다.
그러나 중세적 시공간은 비균질적이다.
지구 위 어느 곳도 특별히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장소가 없고, 동일한 물리적 법칙을 따른다는 생각이, 그리고 유사 이래의 모든 시간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근대적 시공간 의식이고, 지금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중세의 시공간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주의 어느 한 곳, 그것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루살렘이 되었건 아니면 천자가 앉아 있는 장안이나 낙양이 되었든, 어느 특정한 곳이 세계의 중심적 의미를가지며 거기서 멀어질 수록 신성함과 경외로움은 점차 엷어진다.
또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시간, 그것이 원죄 이전의 시간이든 그리스로만의 시간이든 아니면 삼황오제의 시간이든,
순수한 시간에서 멀어질 수록 인간의 삶은 타락하게 마련이고 이상사회에 대한 소망은 더 커져만 간다.
왜 나는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 왜 하필 지금 이러고 있는가....라는 파스칼적 질문은 따라서 다분히 근대적 질문인 것이다.
중세의 여기와 저기, 지금과 그때는 각각 제각기 다른 의미(신이 부여한)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질문/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3.
반정(反正)이라 하면 옳지 못한 것을 바로 세움을 뜻한다.
조선에는 세번의 반정이 있었다. 중종반정, 인조반정, 문체반정.
앞의 두번은 신하들이 옳지 못한 군주를 몰아낸 사건이다.
그러나 뒤의 것은 군주가 옳지 못한 문체를 몰아낸 사건이다. 누구의 어떤 문체를 대상으로 했는가. 정조(와 다산)는 연암의 못된 소품식 문체를 반정했던 것이다.
연암의 손끝에서 나온문장은 고전과 중원을 상대화했기에, 이상화된 시공간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기에반정의 대상이 되었다.
다산은 주자를 의심하고 상대화했다. 그러나 그는 요순우탕문무주공이라는 이상회된 시간에 여전히 강력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언어를 조선후기에 되살리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수행한 경학의 의미이고 <아언각비>의 목적이다.

4.
<열하일기> 완역되어 나왔다.이전에도 완역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지금은 구해 볼 수가 없다.
더구나 북에서 번역한 것을 남에서 출판해 낸 것이라 더 미덥다.
박지원에 관한 단행본 자체가 많지 않던 터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늘, 손에 쥐고 보니 벌써 다 읽은 것처럼 뿌듯하다가도 하루라도 빨리 읽어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이 난다.
연암은 내가 본 누구 보다도, 훈민정음을 언급한 실학자들이 대부분 중세적 말/글 담론을 견지하고 있었던 데 비해, 근대적 언어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 공부의 한 축은 그리하여 연암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여기에 표지 그림을 올린 책들의 제목은아래와 같다.
박지원, <열하일기>(상/중/하), 보리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박종채,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이 밖에도 박지워의 산문을 뽑아 실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태학사가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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