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51

사주명리

1.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틀이 필요하다. 그것이 프레임이든 담론이든. 에서 얘기하는 의 도 에다가 일정한 격자를 가져다 댄 후에 이 가능해진다는 것 아닌가.(물론 한유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자에 이르기까지 정통학설은 을 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라지만.) 칸트의 선험적 범주 역시 그것이다. 이를 두고 러셀은 빨간색 안경을 쓰면 빨갛게, 파란색 안경을 쓰면 파랗게 세상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주명리학 역시 세상을 읽고 나의 삶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해석해내는 하나의 틀이다. 온 세상을 하늘에서 땅 끝까지, 인간이든 사물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모두 화폐, 교환가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물론 하나의 해석이다. 민족이나 신, 또는 과학이나 아름다움 등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

삶읽기 2013.04.01

2012년 대선에 대한 단상

대학 때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지지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대학 1학년 시절. “아아, 민주정부 사천만의 희망이여~ 살아도 죽어도 피우리라 꽃피우리라” 운운의 노래를 즐겨 부르기는 했어도 이것이 비판적 지지 노선의 엔엘 노래지 ‘우리’ 노래는 아니라고 속으로 되내이곤 했다. 대신 더 후지고 촌스럽기는 해도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권력은 민중에게’라는 구호로 시작하는 ‘민중권력 쟁취가’가 ‘우리’ 노래임을 곱씹곤 했다.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일 수밖에 없는 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계급 정당의 건설이 당면 과제였고, 오세철 선생을 중심으로 한 민정련이나 노회찬을 앞세운 진정추가 그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97년 국민승리 21..

삶읽기 2012.12.20

선운사_격포_내소사

1. 세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선운사는 입구부터 흥청댔다. 빼곡한 장어집들 사이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두서없이 늘어서 있고, 일주문까지는 모시송편과 복분자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한결 같이 등산복을 빼입은 이들은 달려드는 날벌레를 쫓느라 바빠 이른 단풍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당연히 붉은 동백꽃을 기대하고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운사 마당은 왠지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사람들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스산해 보였다. 안내사의 썰렁한 농담에 등산복들이 답으로 건낸 박수소리가 헐렁한 산사에 흩어질 뿐이었다. 오래 전부터 무르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솜사탕을 받아들고 좋아했다. 해질녘 도착한 숙소에서 ..

삶읽기 2012.10.26

이른바 `당권파`에 대한 단상

(나꼼수처럼) 이명박을 똘아이로 치부하는 것이 마음은 편하고, 심지어 즐거울지 모르지만,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못하듯이 (진중권처럼) 통진당 당권파를 똘아이로 몰아가는 것 역시 현명한처사는 아닌 듯하다.문제의 근원은 의석수를 늘리고 (연립)정권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에 목을 메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유시민 등과도 거리낌 없이 진보정치를 논할 수 있다는, 통진당 주류의 정치의식에 있지 않은가?진보정치에서 대의제는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대의제에 모든 정치활동을 몰아넣고야마는 부르주아 정치와 달리 진보정치의 중심은 의회가 아니라, 현장이어야 한다. 제도정치가 진보정당의 최대강령이 되었을 때, 스캔들은 언제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삶읽기 2012.05.10

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2012

"세 번째 받아든 녹색평론에 다시 설렌다. 마치 10여 년 전 정치경제학을 읽고 그랬던 것처럼. 2008.1.30. kbm." 한가한 틈을 타 요즘 다시 읽고 있는,박이문 선생의 맨 앞장에 꼭 4년전 쎃넣었던 글귀.엊저녁 받아든 정태춘의 새 앨범을 들으며 밤새 설렜다. 과학이 아니라, 시적 언어가 존재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에 비로소 공감. 그러나, 이 시인의 노래는 늘 외롭다.10년 전의 는 가 되어 돌아왔고 는 로, 는 로 다시 왔다. 그리고, 그 슬픔은 몇 곱절이다. 외로움이 더 깊어진 때문일까.밤새 설레던 마음은 어느새 울렁거림으로 오늘 아침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2012.2.9. 倡優

삶읽기 2012.02.09

길을 잃다

어제 아침 매일같이 드나들던 학교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순간 당황해서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 건가, 무서웠다. 책을 읽고 뭔가를 끄적대는 데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여길 나가는 길이 있기는 한건가. 아득하고 암담하다. 곧 끝날 것 같던 길은 다시 미로로 이어지고, 주위는 온통 낯선 풍경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줄기 불빛을 의지해서 더듬거려야지. 아마도 출구란 처음부터 없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삶이란 끝까지 이렇게 더듬거리며 쩔쩔매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뭔가 대단한 것을 본 것처럼 득의에 찼던 순간순간. 그러나 그 치기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터.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립다. 오늘 다시..

삶읽기 2011.12.16

긴 하루

슬프고 힘든 하루다.나의 녹내장은 호전의 기미가 없고 (오늘 6개월 만의 검사. 왼쪽 눈이 안 좋단다) 아이는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악을 써가며 울고 (애 엄마는 오랫 만에 학교를 갔고, 나는 오랫 만에 집이다) 나의 '버릇없음'에 내 상급자는 스트레스라, 못해 먹겠단다. (10년 전쯤 내 '선생'들이 침해 당했다던 '교권'이 생각난다.)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2011.6.16.KBM)

삶읽기 2011.06.16

고공 농성

지금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의 고공 크레인에서는 조선소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었던 김진숙이 지난 1월 6일부터 농성중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귀와 함께. 그녀가 오른 곳은 2003년 120여 일간 농성을 벌이던 김주익이 목을 멘 바로 그 크레인이다. 그렇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러나, 고용되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이 거대한 삶의 배치는 차라리, 지옥이다.기침이 통 떨어지지 않아, 가슴 통증이 심한 날, 우울히. kbm

삶읽기 2011.05.26

탈진

1.딱 일 년 간격으로 같은 병원 같은 침상에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고 봄을 맞아 바야흐로 따뜻한 기운을 자곡차곡 그러모아야 하는 시기, 나는 용을 쓰고 기운을 소진했던 모양이다. 물론 작년은 식중독, 올해는 감기몸살이었지만 고열로 맥없이 나가 떨어진 것은 매한가지였다.2.월요일 아침부터 동내 내과 침대에 누워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속절 없이 쳐다보다가, 띁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역시 여자는 강한 종속이구나.' 작년 2월부터 시작한 고향집 공사는 뜻밖에도 송사에 걸려 면사무소와 시청을 쫓아다니는 등 이만저만 속을 썩은 게 아니다. 게다가 서울집 수리도 간단치가 않았던 데다, 막판 결혼 준비로 거의 녹다운이 다 되었던 ..

삶읽기 2011.05.24

오월

올해는 유난히 목련이 오래 버팁니다. 벚꽃이 무너지기 시작한 지 한참이지만, 꿋꿋하게 화사한 봄을 메달고 있는 목련이 도처에 보입니다. 올해는 당신이 황망히 떠난 지 꼭 십 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때마다 당신을, 나도 모르게 찾곤 했습니다. 저 꽃들이 다 지고, 억센 잎이 아우성칠 때쯤이면, 올해도 반쯤은 지나간 거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 아우성 속에서 또 당신은 잊혀지겠지요. 그래도 서러워는 마요. 그것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길인 걸."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삶읽기 201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