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51

아치의 노래, 정태춘 작사작곡

1.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프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자그만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가끔 한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피거나 깜박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한 막대기 정 가운데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또가끔 기털을 고르고 부리를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 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삶읽기 2005.03.30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

저녁 먹다가 얘기가 나와, 마침 사순절 기간이기도 하고 해서 를 빌려 보았다. 역시 예수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만 그렸을 뿐, 그가 무엇을 했는가에는 관심이 없는 영화였다. 어느 누가 악(?)에 의해 고통 받았다고 해서 그가 곧 바로 선이 될 수는 없는 법. 그의 십자가형을 가지고 인류(물론 기독교신자들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만)에게 끝없는 죄의식을 심어준 행위가 기독교의 여러 잘못 가운데 으뜸이리라(물론 그 부분이, 신의 아들이 인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그 사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기독교의 종교성이겠지만). 그 죄의식은 나만 들볶는 게 아니라 주위의 멀쩡한 사람들까지 죄인으로 만든다. 기독교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한 저 숱한 살육은 모두 이 죄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해 ..

삶읽기 2005.03.30

기묘한 이야기

라는 일본 비디오를 빌려 봄. 세 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옴니버스. 첫째 이야기는 비행기 사고로 조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포/심리극. 둘째는 한 사무라이가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되며 벌이는 소극. 무척 비중 있는 (걸로 보이는) 사건과 인물에 관한 애교 있는 비틂. 일본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낌. 세 번째는 결혼 생활을 컴퓨터를 통해 가상체험하는 이야기. 첫째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계속 남는다. 등산대가 조난을 당해 둘만 살아남는다. 한 사람이 다쳐 텐트를 치고 구조대가 오기까지 기다리게 된다. 식량이 남아 있었으나 성한 사람은 이를 부상자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는 밖을 살피고 온다며 하루에 세 번씩 텐트 밖으로 나가 배를 채우고 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친 사람은 ..

삶읽기 2005.03.21

2005.3.5.

사무실은 난방이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 드디어 엘엔지 가스 난로를 발견(?!)했고, 이르면 월요일에는 배달이 된다는 사장님의 말씀, 은 여전히 미덥지가 않다. 편도선이 부었고, 무르팍이 시리다. 점심 후 최실장님과 권팀장님은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업무상 추위를 피했다고나 할까. 좋은 꿈을 꾸었다며, 실장님이 로또 한장을 쥐어 주셨다. 십만원 이하는 모두 술사고 그 이상은 반절을 드리기로 했다. 몇년 학비 정도는 빠질 것 같다. ^^경준이 형이 논문을 전해주러 (김석득 선생님 댁께 가는 길에 ) 친히 홍대역으로 왔다. '의 점토석독구결의 해독 방법 연구' 웬만한 국어학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다. 우선 문헌이 고려때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고 구결중에서도 점을 찍어 읽는 방법을 표현한 점토구결..

삶읽기 2005.03.05

친구의 결혼식

결혼식은 결혼하는 당자보다 그로 인해 모인 이들이 오히려 즐거운 날이다. 정말 오랫만에 많은 친구들을 보았다. 하나 혹은 둘 심지어는 셋 씩이나 새 식구를 달고 나온 친구들도 있었고, 나처럼 여전히 혼자 온 이들도 있었으나, 기분은 예전 같았다. 놀리고 치대고 히히덕거리고 쑥스러워하고.... 여전히 서툴게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여전히 고맙고 미쁜 친구들이다.

삶읽기 2005.01.26

도쿄, 간다에서의 3박4일

1. (2005.1.17.월) 10시 비행기에 대느라 5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환전을 하고 신발까지 벗어가며 출국 심사를 받았다. 비행기의 기내식은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맥주도 한 잔했다. 나리타에서 내렸고, 스카이라이너를 탔다. 일본 농촌의 풍경은 아담하고 평안해 보였다. 우에노에서 내렸고 우에노 공원에 들러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길을 재촉했다. 제이알선으로 아키하바라역까지 간 후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스이도바시역에서 내렸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니 3시 반경. 기내식 이후로 아무것도 못먹어 배가 고팠다. 라멘을 사 먹었으나 너무 느끼했다. 식권을 자동발매기로 사야하는 집이었는데 말을 못알아 들어서 잠시 고생했다. 첫 행선지는 동경당서점. 1층에서 문고본 , 현대사상 20..

삶읽기 2005.01.22

탈모

월요일, 점심을 푸지게 먹고 신발을 질질 끌며 미용실에 갔다.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곳이라 근 2년이 다되어 가니 단골이라면 단골. 내 머리를 전담 마크(?)하고 있는 아자씨께 대가리를 디밀고 여지없이 병든 닭 모드로 졸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아지씨 왈..."손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머리가 많이 빠지셨어요. 머리숱이 굉장이 많은 편이셨는데..."한 오년 전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학기를 꽉 채우고도 쩔쩔매던 논문 학기 중이었는데, 머리를 깎으러 갔더니 원형탈모증이라며 병원엘 가란다. 졸업하면서 군데군데 흉찍하게 빠졌던 머리터럭들은 제모습을 갖추었지만, 얼마 후 난 듬성듬성 잡풀이 삐죽이 제멋대로 솟아난 아버지의 무덤 앞에 앉아 있..

삶읽기 2005.01.14

남해금산, 그리고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4.11.3)

버클리풍의 사랑노래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없이. 몇 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와 헷갈려, [뒹구는 돌]을 황..

삶읽기 2004.11.09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2004. 10. 21)

1.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센트럴시티에서 쇠고기 국수 전골과 하얀 밥을 먹었다. 감기가 심했는지, 그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커피숍은 조금 시끄러웠고, 커피 타는 양인(洋人)은 "투모카?"하고 내게 물었다. 고속터미날 앞을 걸었고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가 된 기분이었다.2-1. 언제였던가, 황지우는 장정일을 약간은 경멸스러운 어투로 '댄디'라고 했다. 아마도 주간을 맡고 있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장보다 황이 더 댄디라 할 만하지 않았던가 생각된다. 화장실 낙서와 신문의 티비 프로그램 소개란을 몽타주한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는 여적 신선하다. 하지만, 연극원에 다닌다는 후배가 전한 그의 강의실 언행은 나를아찔하게..

삶읽기 2004.10.25

소렌토에서 2004.10.13

1.C'etait bien에서 차를 마시고 소렌토에서 스파게티, 그리고 빨간밥을 먹다.돌아오는 전철에서, 지리산, 별소리 베고 누었을 때처럼 설랬다고 했다.아마 처음 먹은 스파게티의 느끼함 때문이었나 보다. 이런미끄덩한 소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감남행 전철과 홍대행 전철의 느낌과 무게가 달랐다.2.이제하의 소설은 {소렌토에서}가 처음이었다. 2001년 동인문학상은 김훈에게로 넘어갔지만, 주제넘게 한마디 하자면, 이제하의 {독충}이 받았어야 마땅하리라.김훈은 이제 출판인들이 뽑은 제일 영향력있는 '문필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전거 여행 2}를 살 꿈도 꾸지 않고, 고통스럽게 산 {칼의 노래}도 집어들지 못한다.속물근성은 나에게 있는가, 아니면 김훈과 그의 친구들에게 있는 것인가.3.그..

삶읽기 2004.10.14